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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말부터 거의 일년간 유럽통합에 관한 칼럼을 연재했다.
통합사 (2차대전 직후의 통합초기부터 지난 2004년 서명됐지만 현재 난항을 겪고 있는 유럽헌법안까지), 유럽연합의 주요 정책 (공동통상정책, 공동농업정책, 예산, 지역정책), 주요 회원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을 분석했다.
      이번에는 칼럼을 마지막회로 유럽통합을 전망해보자.
유럽통합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경제통합은 단일화폐를 채택할 정도로 매우 진전됐다. 그러나 정치통합은 경제통합과 비교, 아직도 더디다. 공동외교안보정책이나 사법.내무분야의 협력은 많은 경우 아직도 거부권 행사가 허용되고 있다. 과연 각 분야마다 속도가 다른 통합에서 오는 문제점이 해결될 것인가? 지난 2004년 5월1일 과거 공산권에 속했던 중.동부 유럽 10개국 –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발트 3국, 키프로스, 몰타 – 이 회원국이 되었다. 또 발칸반도에 있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가 내년에 가입한다. 부국과 빈국간의 경제력 격차가 매우 심각하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양극화 문제부터 분석한다.  

1) 양극화 (경제적 격차)
      국내에서도 양극화문제가 가장 큰 이슈중의 하나이다. 1997년 11월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 (IMF)으로부터 가장 큰 규모의 긴급지원을 받았다. 이어 각 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 수십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런 가운데 ‘빈익빈 부익부’는 더 심각해졌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사회는 절대적인 평등을 추구한다기 보다 사회의 저소득층에게 기본적인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한 부, 즉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런데 유난히 우리사회에서는 이런 모범적인 부자가 적다.
      유럽연합에서도 빈국들이 신규 회원국이 됨으로써 양극화 문제가 중요한 사안으로 부상했다. 기존 15개 회원국 가운데 룩셈부르크의 1인당 국민총생산 (GDP: Gross Domestic Product)은  5만5600달러이다 (구매력 평가기준, CIA World Factbook 2005년 기준임). 반면에 내년에 회원국이 되는 불가리아, 루마니아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각각  9600달러, 8200달러이다. 부국과 빈국간의 경제력 격차가  거의 7배  정도이다. 또 지난 2004년 5월 가입한 폴란드를 비롯한 중.동부 유럽 10개 회원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 격차도 기존 15개 회원국과 비교, 최소한 1/3정도의 차이가 난다.
      이런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유럽연합 예산가운데 구조기금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 낙후지역을 지원해주는 지역개발기금, 여성과 청소년의 재취업을 지원해주는 사회기금 등이 구조기금에 포함된다. 상식적으로 보면 당연한 조치이다. 문제는 예산을 둘러싸고 각 회원국들이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 해왔고 이를 손쉽게 바꾸지 않고 있다. 또 유럽연합 예산 규모도 아주 작다.
      지난해 12월 14-15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열렸던 유럽연합정상회담에서 2007-2013년간 재정전망이 타결되었다. 이 기간동안 유럽연합의 예산규모는 전체 25개 회원국 국내총생산의 1%정도에 불과하다. 보통 선진국들의 경제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의 경우 공공지출은 국내총생산의 40%정도이다. 한 나라의 예산규모와 유럽연합의 예산규모를 비교하면 EU예산이 매우 적은 액수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회원국들의 경기가 호전된다고 해서 예산비중이 늘어나지는 않는다.
      어디서나 그렇듯이 돈주머니는 힘의 원천이다. 따라서 회원국들이 유럽연합의 예산규모를 늘리고 또 ‘자체재원’을 강화한다고 할 경우 돈주머니를 좌지우지 할 수 없게 된다. 당연히 회원국들이 이를 반길리가 없다.
      또 하나는 신규 회원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자인 기존 회원국들도 구조기금의 혜택축소를 점차 줄이려 한다는 점이다. 그리스 (1981),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각각 1986년 당시 유럽공동체 회원국이 되었다. 가난한 3개 회원국은 더 많은 지역개발기금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그동안 경제성장이 제대로 돼 이들 회원국들은 신규 회원국에 비해 아주 부유하다. 그런데도 구조기금 예산의 절반을 이들 기존 회원국들이 나누어 가지려 했다. 또 신규 회원국에 지원되는 구조기금을 점진적으로 지원하려 했다. 그만큼 기존 회원국들이 기득권을 쉽게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말로는 냉전시대 동.서로 분단됐던 유럽이 동구권의 회원가입으로 하나가 됐다라고 하지만 실제로 양극화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를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다.

2) 흡수능력 (absorption capacity)
      지난 6월  15-16일,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정상회담에서 회원국들은 ‘흡수능력을 감안, 회원국 신규가입을 검토한다’는 문구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전반기 유럽정상회담과 각료이사회 순회의장국이던 오스트리아를 비롯, 독일과 프랑스 등은 흡수능력을 고려해 회원국 신규가입을 해야 한다며 두개를 연계시켰다. 그러나 영국과 덴마크 등 몇몇 회원국들은 이럴 경우 신규 회원국 가입에 또 다른 가입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결국 정상회담 합의문은 흡수능력을 감안한다고만 명시했을 뿐 이를 충족해야 신규 회원국을 받아들인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유럽국가가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되기 위해서는 크게 정치적, 경제적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994년 코펜하겐 정상회담에서 채택이 됐기 때문에 ‘코펜하겐 가입조건’이라고 불린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 소수민족 보호, 인권보호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가입협상 때 각 분야별로 이런 기준에 맞춰 매우 상세한 점검을 받는다. 그리고 이를 통과해야 회원국이 된다. 기존 가입조건도 매우 까다로운데 일부 회원국들은 여기에다 흡수능력까지 추가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 유럽의회, 각료이사회 등 유럽연합 기구는 원래 처음의 6개 회원국을 기준으로 운용틀이 만들어졌다. 이어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이 때마다 이런 기구들이 확대된 상화에 맞게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어왔다. 물론 확대전후에 이런 기구들의 운영틀도 조금씩 변경되기는 했다. 그런데 2004년 5월 무려 10개 회원국이 새로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이 문제가 대두됐다. 사상 최대 규모의 가입으로 유럽연합의 덩치가 너무 커졌다. 기존 기구들이 이런 변화를 제대로 흡수해서 기능할 수 있을까 하는 흡수능력 문제가 자주 제기됐다.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얼버무려 졌지만 앞으로 이 문제는 계속 제기될 전망이다. 영국이나 덴마크는 주로 국가간 느슨한 협력을 선호해왔기 때문에 회원국 확대를 지지한다. 반면에 프랑스의 경우 회원국이 늘어날수록 자국의 영향력은 줄어들기 때문에 회원국 확대에 신중하거나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독일은 역사적으로 회원국 확대와 심화 (유럽연합 기구가 새 권한을 얻거나 기존 권한을 확대하는 것)를 동전의 양면으로 간주, 양자를 지지해왔다.  
따라서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독일이 흡수능력 감안을 회원국 확대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동구권 확대이후 유럽연합 기구 운영이 문제가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회원국간의 심각한 양극화 문제, 잦은 공개적인 충돌 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3) EU의 현주소와 종착역
      그렇다면 유럽연합은 현재 연방국가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영국의 정치학자 윌리엄 월러스 (William Wallace)는 유럽연합을 국가연합 단계를 지나 연방국가로 가는 전연방적 (prefederal) 혹은 원초연방적 (protofederal)단계라고 규정짓고 있다. 국가연합 단계에서 각 국가는 외교나 국방을 독점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경우 공동외교안보정책을 통해 이 부문에서 협력을 강화해왔다. 비록 회원국들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수단 등 국제분쟁지역에 대해 공동외교안보정책을 채택, 실시해왔다. 또 국가연합 단계에서 회원국들이 단일화폐를 사용한 적은 역사적으로 없었다. 따라서 유럽연합의 현단계는 분명히 국가연합을 벗어났다. 연방국가로 가는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과연 어떤 연방국가 모델에 가까운가? 독일식인가? 아니면 미국식인가? 혹은 여러가지 연방제 모델이 혼합된 독특한 모델인가?
      미국 연방제는 미합중국이라는 연방국가를 형성하면서 확립됐다. 각 주들은 연방국가가 주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을 우려, 연방정부의 전횡을 막으려고 헌법 곳곳에 견제장치를 두었다. 그러나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갈등을 겪고 있을 때 헌법은 연방정부에 우선권을 주었다. 반면에 독일 헌법은 주정부에 우선권을 주었다. 즉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권한을 명시하고 어느 정부에도 속하지 않는 권한의 경우 우선 주정부가 이를 행사한다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가까운 곳에 있는 정부 – 지방정부 – 가 시민들의 뜻을 더 잘 알고 이를 정책에 반영한다는 원칙을 깔고 있다.
      25개 회원국, 내년이면 27개 회원국으로 늘어나는 유럽연합은 결국 연방국가로 발전해 나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얼마나 걸리고 어떤 식의 연방국가일 것인가하는 점이다. 이 질문에 대해 수학의 답처럼 명확한 해답은 없다. 과거 발전경향과 현주소,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여러가지 변수를 감안해 앞날을 가늠해볼 수 밖에 없다.
      물론 프랑스나 영국 등 중앙집권적인 국가에서는 유럽연합이 상당부분 독일의 연방제 모델을 취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선하다. 독일 내부에서도 유럽연합이 독일식 연방제 모델을 많이 흡수했다고 보는 학자들이 제법 있다.
     안병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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