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뤽아우프회에 고한다 2

글뤽아우프회에 고한다 2

                                                                                                                                        홍  종  철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라는 격언이 있다.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 관습, 전통 등을 존중하고 주어진 규정대로 행동하라는 교훈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화, 고충, 말썽 등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독일에 살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이 독일 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재독한인 글뤽아우프회가 운영하고 있는 한인문화회관(Koreanisches Kulturzentrum)이 독일 법을 따르지 않아 Essen시 당국으로부터 계속 제재를 당하고 있으며 그래서 문화회관은 지금 문화회관으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문화회관은 우리 재독교민들이 만남을 통하여 상호 친목을 도모하고 각종 문화행사를 통하여 향수를 달래며 또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독일인들에게 소개한다는 취지로 마련 된 공간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이 공간을 독일 법에 따르지 않고 한국식으로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시 당국으로부터 공간 사용 금지 처분을 받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국정부로부터 거금의 지원을 받아 어렵게 마련된 이 공간이 이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비통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사실은 Essen시에서 발간되는 WAZ(Westfälische Allgemeine Zeitung)신문이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독일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Essen, Meistersinger Str. 90 에 위치한 카톨릭교회 소속 회관건물을 422.000 유로에 구입하였다. 이들은 여기서 대소 문화행사(Veranstaltungen)를 치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 시 건물감독청(Bauaufsichtsamt)으로부터 경고통보를 받았다.

  내용은 한국인들이 행사 때 마다 너무 소란(Lärm)을 피우고 주차위반(Falschparker)을 하며 또 누군가가 회관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이웃사람들로부터 항의가 쇄도하였고 관청의 관계자들이 여러 차례 검증차 내방하였다.

  이에 따라 관청지시가 내려졌는바, 앞으로 건물을 사용하려면 정식으로 공인 건축기사를 통한 건물사용변경신청(Bauantag zur Nutzungsänderung der Räumlichkeiten)을 하여 해당 건축공사를 한 연후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자동차를 공공도로(öffentliche Strassen)상에 함부로 주차하지 말고 자체 구역 내에 주차장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글뤽아우프회가 ‘전에 카톨릭회관에 적용하지 않던 규정을 왜 우리한테만 요구하느냐’ 고 항의를 하자, 건물감독청은 ‘규정이라는 것은 항상 바뀔 수 있는 것이며 그런 큰 건물을 비싼 값에 구입하려면 사전에 해당 관청에 건물에 관하여 조회를 하는 것이 상식인데 아무런 확인도 없이 구입한 당신들이 오히려 경솔했다’ 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문화회관측에서는 한 독일인(한 한국인 간호사의 남편)을 통하여 관청과 접촉, 문제해결을 시도하였으나 이 사람이 6개월간이나 병원생활을 하는 바람에 많은 시간을 잃었고 그 동안 이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관청서류들이 책상 위에 쌓였다고 한다. 그래서 문화회관은 지금 한국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잔치행사 하나 치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인들이 너무 소란(Lärm)하다”라는 관청의 지적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화상을 본다. 이 소란과 관련하여 한국인과 독일인의 사고와 행동이 어떻게 다른지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국인들의 전통문화행사에 빠질 수 없는 악기가 있으니 이게 바로 꽹과리, 장구, 북 등이다. 한국인들은 꽹과리, 장구, 북을 치면서 신명나게 춤을 추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여기에는 고성방가, 소란, 야단법석 등이 따르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통한다 하더라도 독일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다. 문화회관에서 이런 잔치행사를 자주하니 인근주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들의 항의에 관청이 대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독일인들도 요란스러울 때가 있다. 카니발 시즌이 바로 그것인데 그러나 이것은 종교적인 전통행사로서 1년에 한 번 3-4일 동안 정해진 일정에 한한다. 독일인들은 참으로 조용히 사는 민족이다. 이웃에 폐가 안 되도록 생일파티도 조용히, 결혼식도 조용히 한다. 정원 풀 깎기도 소음방지 시간인 13-15시와 안면시간인 20시 이후를 피해서 한다. 이웃집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도 한 동안 모를 때가 많다.   

  연전에 한 교민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여기에 한국에서 온 사자의 누나라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하관식을 할 때 이 여인이 갑자기 “아이고, 아이고, 내 동생 가면 안 돼, 못가!” 라고 공동묘지(Friedhof)가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관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장례위원들이 이 여인을 부축하며 진정시키려 했으나 그녀의 대성통곡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것은 물론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사자에 대한 애정의 표시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 한국식이다. 독일 땅에서 또 많은 독일 사람들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독일인들의 장례식은 엄숙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사자가 평소에 좋아했던 음악이 조용히 흘러나오고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기도하며 애도한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크리스마스시즌을 예로 들어보자. 독일의 크리스마스이브는 어떤가? 이들은 촛불을 켜고 가족끼리 조용하게 지낸다. 그야말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반면에 한국의 크리스마스이브는? “요란한 밤, 떠드는 밤”으로 점철되어 있다.

  문화회관이 대형 잔치행사를 하자니 많은 한국인들이 모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건물 주위와 공공도로변에 까지 무질서하게 주차를 한다는 것이 관청의 지적사항이다. 경찰이나 관청에서 묵인할 수 없게 되어있다.

  관청의 요구사항은 “공공도로상에 주차를 하더라도 일단 자체 주차장을 확보한 연후에 하라.”는 것이다.

  자체 주차장 건설에만 40.000 여 유로가 든다고 한다. 그 외에도 문화회관이 오래 된 건물이어서 지붕교체가 불가피하며 이에 드는 경비도 140.000 유로에 달한다고 한다.

  글뤽아우프회는 이 많은 돈을 무엇으로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건물 내에서 사람이 잠을 잔다.”는 관청의 지적이 있었는데 이것도 한국식의 숙직(宿直)개념 정도로 생각하는 경솔에서 온 소치인 것 같다.

  독일에는 숙직 시스템이 없다. 큰 건물에 고용되어 있는 건물관리인(Hausmeister)도 별도로 주거(Wohnung)시설이 되어 있어야만 거주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주거시설이 없는 회관건물에서 사람이 잠을 자니 지적을 받을 수밖에.

  모든 것을 한국식으로 판단하는 사고방식은 독일에서 통할 수 없게 되어있다.

  문화회관에서 한국인들이 행사를 할 수 없다면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이에 대한 답은 하나 밖에 없다.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건물을 매각처분하는 일이다. 건물은 쓰지 않고 가만히 세워 놓아도 매월 경상비(laufende Ausgaben)가 발생한다. 처분하지 않고 놓아두면 둘수록 부담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글뤽아우프회는 관청에 제대로 조회도 하지 않고 부랴부랴 낡은 건물을 비싼 값에 사들였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로써 구 건물주인 카톨릭교회에게만 좋은 일 해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글뤽아우프회는 2009년도에 400.000 여 유로에 이 건물을 구입하였다. 이 중에는 노동부로부터 받은 200.000 유로, 재외동포재단으로부터 받은 100.000 유로가 포함되어 있다. 고국의 국고에서 300.000 유로가 투입된 것이다.

  당시 글뤼아우프회는 우리 재독교민들에게 청구권이 없는 파독광부적립금 잔액 중 200.000 유로를 떼를 쓰다시피 하여 노동부로부터 받아 내었던 것이다.

  건물매각대금은 어차피 우리 교민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없는 돈이다. 그러니 이 돈은 우선적으로 노동부에 반납되어야 한다. 부당하게 받은 돈이니 깨끗이 반납하여 고국의 국고에 보탬을 주자는 말이다.

  옛날 광산근로자 시절에 우리들이 생활비를 아껴가며 열심히 송금한 돈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종자돈이 되어 흐뭇해했듯이 이 돈을 국고에 반납하면 이 또한 보람된 일이 아닌가?

나랏돈이 들어 있는 문화회관 문제이니 공관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에 적극 대처해 주기를 바란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는 되새겨 보아야 할 금언이다. ◈

(2014년 1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