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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유럽 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 들은 실제 새로운 바다, 새로운 섬, 새로운 땅을 발...
by 유로저널 / on Mar 12, 2008 20:46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유럽 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 들은 실제 새로운 바다, 새로운 섬, 새로운 땅을 발견했고 그리하여 이 시대를 ` 지리상의 발견` 또는 대항해 시대라 한다. 이 시대에 발견된 땅에는 발견자의 이름을 붙이거나 발견자가 명명한 이름을 붙였고 그 지명들은 아직도 쓰이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 봉`이다. 희망봉을 발견한 것은 푸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뮤 다아스 (Bartholomeu Dias, 1450~1500)인데 이 때가 1487년이었다. 포르투갈이 가장 의욕적으로 새로운 땅, 새로운 항로를 찾아 나선 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후추를 비롯한 각종 향료는 지중해를 통한 동방 무역의 주요 상품이었는데 이것은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이탈리아 도시들은 이 무역을 독점적으로 장악함으로써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동방과 직접 무역을 할 수 있다면 엄청난 이익을 볼 것이 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한 일이었다. 그리고 영국이나 프랑스도 이 지중해 무역이나 북해 무역을 통해 어느 정도의 이익을 보고 있었으므로 새로운 항로를 찾아 나설 절박한 이유는 없었다. 지중해 무역에서 소외되어 있던 포르투갈(그리 고 이와 경쟁 입장에 있는 스페인)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얻게 될 경제 적 이득에 대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이 국가들은 지리적으로 대 서양에 위치하고 있었다. 바르톨로뮤 디아스에 앞서 대항해 시대의 막을 연 것은 포르투갈의 엔리케 (Henrique,1394~1460)왕자였다. 그는 아프리카 서해안을 남하하여 인도에 이르는 새로운 항로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인도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죽었고 그가 죽은 후 탐험대는 적도를 넘어서 나아갔지만 거기서 탐험은 중단되었다. 1480년 국왕 조안 2세의 후원으로 탐험이 재개되었고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인 도로 가는 항로를 찾아 나섰다. 그의 선단은 아프리카의 남서부 앞바다에서 심 한 폭풍에 휩쓸려 남쪽으로 한참 흘러 내려가 약 2주간 육지를 보지 못했다. 폭 풍이 가랑 앉은 후에 동쪽으로 항해했지만 육지가 보이지 않아 다시 북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드디어 그는 곶을 발견했다. 이 앞바다에서 푹풍우를 만났기 때 문에 그는 이곳을 `폭풍의 곶`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러나 이 보고를 받은 조안 2세는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할 것을 기약하며 이름을 `좋은 희망의 곶(즉 희 망봉)` 이라고 고쳤다고 한다. 물론, 희망은 금방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의 희망은 1498년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 1469~1524)가 희망봉을 우회하여 인도에 도달함으로 비로소 이루어졌다. 희망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미래를 향한 긍정과 도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폭풍을 만나도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에서 탄생한 희망봉과 같이,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믿음을 제시하는 희망의 책이다. 그래서 성경을 바르게 아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희망으로 바꾸는 행복의 비밀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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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news-강운학 목사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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