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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해산과 민주주의,그리고 헌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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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국가에서 헌법재판소의 기능은 대법원이 담당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1987년 개헌을 통해서 헌재가 독립기관으로 설치되었다. 과거 대법원이 권위주의 체제의 시녀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즉 대한민국 헌재는 민주화 운동이 낳은 옥동자이다. 

사실 초기에는 헌재가 퇴임 법관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짙었다. 그러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기화로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판결과 올해 선거구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르는 동안 헌재의 위상은 비상하게 강화되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으로 헌재의 권능은 정점을 찍었다.

헌재의 막강한 위상과 권능은 불행히도 한국정치의 무능을 역설한다. 정치권의 문제해결 능력이 바닥을 기는 탓에 헌재의 권위는 천정부지로 솟아올랐다. 서민의 세상살이에도 법대로 하자는 으름장이 빈번하게 오가지만 대개 참고 조율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반면 정치권은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사로 문제를 헌재에 떠맡기는 버릇에 젖어 있다. 정치적 무능이자 사법 만능에 다름 아니다. 정치의 사법화, 통진당 해산 심판이 한국정치에 아로새긴 첫 번째 오명이 이것이다.

8대 1의 압도적 결정에도 불구하고 통진당 해산은 반론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한 정치행위이다. 

우선 서울고법이 실체로 인정하지 않은 RO를 헌재가 기정사실화했다. 가장 중요한 전제가 법리적으로 모순된 것이다. 그런 RO가 통진당을 좌우했다는 것도 추론을 넘지 못한다. 일개 종북 무리들이 대다수 당원들을 허수아비로 전락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10만 명에 이르는 당원 전체가 거대한 종북 암세포였던 셈이다. 

또한 통진당의 강령이 체제전복적이라는 결정은 과도하게 자의적이다. 기실 진보적 민주주의는 진보진영이 입버릇처럼 올리는 보편 언술이다. 이런 식이라면 북한과 짝을 지을 수 있는 금칙어를 한국 정당 강령에서 모두 삭제해야 마땅하다. 

사법의 정치화, 통진당 해산 심판이 한국정치에 아로새긴 두 번째 오명이 이것이다.

대한민국은 절차적 민주주의 사회이다. 합리적인 게임규칙과 공정한 게임관리 그리고 결과에 대한 승복이 제도화되었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선거는 대체로 순리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4반세기를 경과하도록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절차를 넘어 민주주의를 내면화, 공고화하는 단계로 도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숙의, 토론, 관용 같은 덕목들이 체질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정치문화를 기대하기란 요원하다. 특히 우리 사회의 매우 큰 약점 중 하나가 차이에 대한 차별이다. 이런 풍토에서는 다수는 옳고 소수는 그르다는 우매한 다수결 논리가 민주주의로 둔갑하기 십상이다. 

헌재가 그토록 강조한 민주적 기본질서와 패권적 다수결 논리를 분간하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 결정을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역사적 결정으로 칭송한다. 여기에서 자유는 시민 일반이 누려야 할 보편적인 기본권을 뜻하지 않는다. 통진당 강령에 동의하거나 반공보수 신념이 투철하지 않으면 제약당하는 자유이다. 

한국의 보수 위정자들이 해외에서는 잘 쓰지 않는 자유민주주의 개념을 전유물로 삼는 이유가 이 대목에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지향은 이 틀을 벗어나야 한다. 다원적인 사상 스펙트럼이 무지개 빛깔처럼 펼쳐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주장들이 경합하고 시민의 힘으로 질 나쁜 사상을 시장에서 퇴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의 요체이다.

통진당이 선거가 아니라 사법적으로 해산된 것은 유감 천만이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워 먹었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문제해결 선례를 남겼다. RO와 이석기를 통진당과 동일시한 여론재판의 승리가 곧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우리 사회를 좀먹는 지루한 이념전쟁이 개막될 것이다. 통진당 후신의 복권운동과 정부의 공안 대응이 눈에 선하다. 양극의 대결은 이 정부 임기를 넘어 지구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통진당 문제의 해결은 유권자의 몫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헌재가 더 이상 민주화의 옥동자도 사상과 정파를 초월한 민주주의의 보루도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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