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우리나라 기자의 와인 기행
프랑스 와인 자습서 제5장 샹파뉴(Champagne) - 8
싱싱한 굴과 샹파뉴.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굴처럼 날로 먹는 조개류와 잘 어울리는 와인의 대명사는 역시 부르고뉴 지역의 샤블리다. 그리고 저렴하지만 굴의 바다내음을 저 멀리 날려주는 루아르 지역의 뮈스카데도 훌륭하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 왕 '루이 시리즈' 가 궁정에서는 굴을 먹을 때 마신 것은 역시 와인의 왕, 샹파뉴였다.
루이 15세가 베르사유 궁정 식당을 장식하기 위해 주문한 그림인 쟝-프랑수아 드 트루아(Jean-François de Troy)의 '굴이 있는 점심식사(Le Déjeuner d'huîtres)' 를 봐도 지체 높으신 분들이 게걸스럽게 굴과 샹파뉴를 흡입(?)하고 있다. 정말 맛있나 보다. 보통 이 그림에서 사람들은 굴을 좋아하는 신분 높은 남성들만 본다. 하지만 우리는 굴과 함께 등장하는 샹파뉴에도 집중해보자. 그럼 우리도 프랑스 왕과 귀족처럼 먹고 마셔볼까?
쟝-프랑수아 드 트루아, 굴이 있는 점심식사(일부)
Jean-François de Troy, Le Déjeuner d'huîtres, 1735, Musée Condé, Chantilly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12월 21일 일요일 아침, 보르도 와인계의 핫플레이스인 와인숍 "카브 드 뤼니베르(LA CAVE DE L`UNIVERRE)"에서는 보르도 인근 아르카숑의 유명 굴 생산자 샤를르 로장(Charles Rozan)의 굴과 샤를르 아이직(Charles Heidsieck) 샹파뉴를 맛보는 작은 시음회가 열렸다. 샹파뉴 브랜드 이름인 샤를르에 운을 맞춰서 굴 생산자를 고르는 센스!
날씨는 춥지만 굴과 샹파뉴는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하다.
아! 굴 싱싱하다. 함께 간 한국인 중 비린내 때문에 굴을 못 먹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 굴은꿀꺽꿀꺽 잘 먹었다. 그리고 샹파뉴를 한 모금 삼켰다. 입에 남아있던 약간의 바다내음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고 한다. 필자도 먹어봤다. 맛있다. 굴은 탱탱한 살이 매끄럽게 목으로넘어가고, 샹파뉴는 시트러스 계열 과일의 향과 맛이 상큼함을 더해줬다. 그리고 작고 섬세하지만 힘찬 거품이 입속을 개운하게 씻어내 준다. 바다에서 치는 파도의 포말이 굴을 감싸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상쾌한 일요일 아침이다.
이날 굴과 함께 마신 샹파뉴는 샤를르 아이직의 기본 등급인 브뤼트 레제르브(Brut Réserve)였다. 더 고급 라인도 많이 있지만, 기본 등급과 매칭시킨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맛있어서다. 비싼 샹파뉴를 여는 것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빈티지 샹파뉴, 블랑 드 누아, 로제 샹파뉴 등 더 비싼 샹파뉴는 많지만, 이와 함께 생굴을 먹으면 굴의 생기가 죽고 비릿한 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고 샤를르 아이직 브뤼트 레제르브는 양조 시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아서 생굴과 조화가 좋다. 묵직한 고급 샹파뉴의 대명사 볼랑제, 크뤼그를 생굴과 잘 마시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샤를르 아이직의 보르도 지역 담당자 스테판 씨.
바야흐로 굴의 계절이다. 그리고 샹파뉴의 시기다. 주변에 찾아보면 굴과 샹파뉴에 관한 행사가 많이 있다. 한 번 둘러보자. 그리고 굴과 샹파뉴를 함께 즐기는 것이 몇백 년 전에는 왕과 귀족들이나 누리던 호사였지만, 지금은 우리 같은 서민들도 한 번은 누려볼 만한 사치다. 길 것 같지만, 겨울도 곧 가고 굴의 계절도 금방 지나간다. 이 겨울에 프랑스에 있다면, 사치 한 번 부려보자.
프랑스 유로저널 박우리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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