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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15.02.02 03:45
최지혜의 예술칼럼 (6)김구림,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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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림,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 "한국미술계는'끼리끼리'문화다…온통 학맥 인맥이 얽혀있다." 그러나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 고 말하는 김구림(79). '정신나간 이상한 놈', '천재', '장르를 초월했다', '최초' 라는 평범하지 않은 단어들을 친구처럼 동반하고 다니는 그가 소위 한국 현대 미술계를 들쑤셔 놓고 있다. 도대체 김구림, 그는 누구이며, 왜 우리는 그를 주목해야 하는가? 그는 "나는 매년 전시를 했어요. 사람들이 몰랐던 것뿐이지요…화단에서는 날 이단아 취급하지만 난 내가 뭘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작업할 뿐입니다" 라고 말한다. 전 세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잭슨 폴록, 데이비드 호크니, 니키드 생팔, 쿠사마야요이, 신디셔먼 등의 20세기 현대미술사에 획을 그은 유명 작가들과 함께, 백남준 작가 이후 2012년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 'A Bigger Splash : painting after performance' (부재 : 퍼포먼스 이후의 회화) 전에 김구림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1969년에 펼쳤던 행위예술을 담은 사진으로 당시 서울에서 여성 모델의 몸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며 시도했던 '바디 페인팅' 퍼포먼스 과정을 촬영한 것이었다. 한때 기자들이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등 언론의 관심도 받기도 했지만, 사실상 국내에서 제대로 그의 미학을 이해하고 주목한 적은 거의 없었다. 55년 동안 50차례 개인전을 열었지만,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미술사적인 전시에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그를 부르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런데, 가장 영향력있는 갤러리 중 하나인 영국 테이트모던이 그를 주목하자, 한국미술계는 그를 '한국 대표 전위미술가'라고 부르면서 다시 관심을 보이고 있다. 2013년 4월 통인화랑에서 '끝없는 여정' 이란 이름으로 작품 30여점의 개인전이 있었고, 7월 서울시립미술관의 회고전 성격의 전시가 열렸었다. 2014년 4월에는 그의 대표작 '음양시리즈'로 한국의 성형 열풍을 표현한 작품들이 대안공간인 플레이스막에서 전시되었다. 쇠가 미간에 박혀있는 얼굴부조, 그리고 모형사과와 뱀, 조각난 마네킹 팔과 머리가 잠겨있는 물이 가득찬 배 설치작품들은70대 후반의 원로 작가인 그를 도도하고 파격적인 젊은 작가로 착각하게 할 만큼의 살아있는 생선의 펄떡임이 있다. 2014년 7월 서울 아라리오갤러리에서는 과거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김 화백의 2000년대 이후 신작을 선보였다. '진한 장미'를 타이틀로, 대중 매체 속 다양한 이미지와 일상 속 오브제가 어우러지며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는 '야한 사진' 등을 콜라주한 시리즈를 비롯해 작품 160점을 소개했다. 이어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도 김구림 작가의 1960∼90년대 작업을 연대기적으로 조망하면서 '그는 아방가르드다'전을 선보였다. 기성영화의 틀을 깨고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수백 컷의 장면을 초당 24프레임으로 편집한 한국 최초의 실험 영화 '1/24초의 의미'와 일반 농기구를 해체시킨 설치물 연작(삽, 빗자루 조각과 파편으로 구성)을 선보인 '핵' 시리즈, 대지미술 '현상에서 흔적으로' 등 대표작 40여점이 소개됐다. 제주 탑동 바이크샵을 개조한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김구림 작가의 작품을 여전히 전시하고 있다. 그는 1936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손꼽히는 부잣집 외동아들로 태어나 하고싶은 것, 갖고싶은 것 모두 가졌었다. 남들이 하는 것은 무조건 싫다고 하면서 세상을 소위 삐닥하게 바라보았던 그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라이프지와 예술잡지를 보며 미친듯 전위 미술에 심취했던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 같다. 1969년 실험그룹인 <제4그룹>을 결성했고, 한국현대사회의 기성문화를 비판한 해프닝 ‘콘돔과 카바마인’, 기성문화를 비판한 해프닝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 그리고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경복궁 미술관을 흰 베로 감는 등의 충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 전위영화 '1/24초의 의미' 와 '무제', 최초 라이트 아트인<공간구조 69> 문명사회에서 미디어의 문제를 다룬 최초의 메일아트 '매스미디어의 유물' , 그리고 잔디에 불을 붙이고 이듬해 다시 새 잔디가 자라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죽음이 또 다른 소생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준 한국 최초 대지예술이자 프로세스 아트라고 할 수 있는 '현상에서 흔적으로' (1970)를 발표했다. 연극과 영화, 무용의 무대미술과 연출활동까지 장르를 초월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꾸준히 활동하면서, 1980년대 중반 시대정신과 감수성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면서 1990년대부터는 음양사상을 기초로 현대문명사회에 대한 작가 자신만의 예술적 비판과 성찰을 꾸준히 해왔다. 하지만, 그의 변함없이 타오르는 창작열에도 불구하고, 학력, 인맥을 중요시하는 한국 미술계에서는 1년만에 대학을 때려치운 고졸 출신인 그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 빨간 보자기에 쌓인 거대한 얼음덩어리 설치물 '현상에서 흔적으로' 는1970년 경복궁미술관의 전시를 위해 기획했던 작품이었으나, 당시 큐레이터의 거절로 인해 김 화백은 전시 참여 자격까지 박탈당했었다. 한국 최초 전위영화 '1/24초의 의미' 는 사실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공개 상영된 뒤 원본이 유실되었다. 또한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은행에서 그의 작품을 구입하기로 했지만, 하루 만에 취소를 하는 일도 있었다. 2012년 4월에는 심지어 경기도 장흥에 있는 화실에 도둑이 들어 그림 18점을 면도칼로 도려 가는 도난 사건도 있었다. 여러 불미스런 사건들과 대중들의 무관심으로 김구림 작가는 앞으로 한국에서 작품을 팔지 않겠다고 했다. '김구림은 정체성이 없다' 아니다! 이것은 사회적 관습과 권위주의적 관계에 얽매인 편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평일 뿐이다. 시대가 변하면 사고가 변하고 사고가 변하면 작품의 표현 방식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는 진보적인 스타일로 한국의 현대미술뿐 아니라 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뿌리 박힌 제도와 인습을 부정하고 해체하는 지치지 않는 실험정신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즉,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예술계의 변화와 현재를 함께 들여다 봐야 함을 존재와 비존재, 실재와 가상의 경계를 개념적으로 탐구하고, 작업의 양식, 제작방법, 매체 등을 모두 뒤섞는 등 끊임없는 새로운 작업으로 79세의 노장이라 믿기 힘들만큼 도전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비용 등의 문제 때문에 구상만 하고 제작이나 발표를 하지 못한 작품이 많다"며 아쉬움을 드러내며, "어느 미술관에서 마음껏 전시하라고 한다면 춤을 추죠. 그런데 안해줍니다. 해주면 하늘의 복이죠" 라고 한다. "죽을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다가 갈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꿈을 꾸고 있다. 이것이 열정이 그리운 우리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다. 최지혜, 미술컨설턴트, 유로저널 컬럼니스트 choijihy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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