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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블루칩 작가로 주목받는 설치미술가 이불이 이번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대형 신작 두점, ‘태양의 도시’ ‘새벽의 노래을 선보이고 있다. 9 30일부터 관람객에 선보인 이 작품들은 이불이 2005년부터 진행해 온 '나의 거대 서사(Mon grand récit)' 시리즈의 연장 작업이다.

백남준을 공백을 메꾸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는 이불(1964-)은 한국보다도 해외에 더 잘알려져 있다.


이불.jpg

 

그녀는 최근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이 시리즈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 F. Lyotard)가 모더니즘시대에서는 거대 서사가 불가능하다(Non Grand Récit)는 말을 변형한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거대 서사'가 불가능해진 시대에 보물을 쫒는 해적선을 연상케 하는 공중에 떠 있는 위성 비행선과 거대한 대지에 눈부신 태양과 같은 전구로 꽉 채워져 다양한 각도에서 비춰지는 세상을 투영하는 듯한 유리방. 이것을 통해 이불이 보여주는 유토피아가 제시하고 있는 세계를 만나보자.


이불의 빛나는 유토피아, '태양의 도시(Civitas Solis)Ⅱ'

이불 태양의 도시.jpg  

▲  이불 I '태양의 도시(Civitas Solis)' II 폴리카보네이트 아크릴 거울 LED조명 전선 330×3325×1850cm 2014


길이 33m, 18m, 높이 7m 규모의 전시실 벽면과 바닥을 온통 거울로 채운 설치작업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철학자이자 공상적 공산주의자인 톰마소 캄파넬라(T. Campanella)의 저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르네상스가 아닌 바로크시대의 전환기의 몽상가였다. 아무튼 이불은 그의 사상과 이념과 상관없는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작품 상단에 설치된250개의 발광다이오드(LED) 전구들은 거울 면을 통해 형태가 반전돼태양의 도시(CIVITAS SOLIS)’라는 단어를 들어내며 점멸을 반복한다. 왜곡된 표면의 굴절과 반사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공간확장과 풍부한 시각적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사방의 거울에서 반사되는 불빛과 퍼즐처럼 맞춘 거울같은 아크릴 조각 미로가 파도처럼 출렁이며 마치 위태로운 현대문명과 그 속의 우리 운명을 생각하게 한다. 여러 각도의 일그러진 관객 자신의 모습을 통해 근대 메카니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시대에 대한 불안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심지어 공포까지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관객마다 다양하고 훨씬 더 강력한 다른 무언가도 전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는 불빛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환희와 기쁨보다는 절망과 공포를 안겨주는 빛나는 유토피아, 태양의 도시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는 듯 하다.


이불의 신비한 유토피아, 새벽의 노래 Ⅲ’

이불 새벽의 노래.jpg 

▲  이불 I '새벽의 노래(Aubade) III' 알루미늄, 폴리카보네이트, 메탈라이즈드 필름, LED 조명, 전선, 스테인리스 스틸, 안개분무기(fog machine), 가변설치 2014


15m 높이의 전시실을 맘껏 활용한 수직의 대형 설치작업이다.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뿜어져 나오는 연기로 가득한 공간 위쪽에서는 밝은 빛들이 반짝인다. 이 새벽의 노래는 '오바드(Aubade)'라는 16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연가형식으로 연인들이 밤새 깊은 사랑을 나누다 새벽녘에 떠나야 하는 슬픔과 아쉬움을 담은 노래이다.


그러나 그런 슬픔보다는 덧없음을 알면서도 떠나는 보물선의 희망을 쫒는 열망을 느끼게 하는 두번째 신비한 유토피아, 새벽의 노래는 허망하고 유한한 인간의 운명앞에서도 결코 신념의 빛을 잃지 않는 우리의 순수함을 반영하는 것 같다.

국립현대미술관 김형미 학예연구사는 “‘새벽의 노래 Ⅲ’는 독일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의새로운 법령을 위한 기념비’(1919) 1900년대 초반 모더니스트의 상징물인 힌덴부르크 비행선의 기체 구조 등에서 시각적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고 했다. 작가가 인간의 필멸성, 죽음이 만나는 지점을 이야기함으로써 시대에 대한 문제 제기, 발언을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불(1964~)은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내면의 에너지를 몸으로 표현하는 설치미술가이자 행위예술가로서 백남준 이후 한국작가 중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1990년대 남성 중심의 문화를 비판하고 여성 신체의 억압구조를 드러내면서 페미니즘적 21세기형 새로운 비너스 '몬스터', '사이보그' 연작을 발표하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90년대 후반부터 뉴욕현대미술관과 뉴뮤지엄, 구겐하임미술관, 베니스비엔날레, 퐁피두아트센터 등 해외 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2007년에는 파리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에서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결합한 역사적 붕괴에 대한 시각적, 미학적 연구에서 나온 대형 작품을 소개해 호평받았다.


내년 31일까지 지속되는 이번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전은 국립현대미술관이 현대자동차 후원으로 올해부터 10년간 매년 1명씩 국내 중진작가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이불이 이 사업의 첫 작가로 선정된 것이다.

이불은 자신이 경험한 기억과 추구하는 것들을 통해나의 거대 서사라는 유토피아에 대한 인류의 집단적인 열망과 좌절을 캔버스, 종이에 그린 작품들,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설치 작품 시리즈로 구현해 왔다. 드디어 이불의 이 유토피아가 이번 전시에서 증폭돼 현장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이불은 이번 전시를 통해인간이 가진 비전과 그것을 실현하려는 행위, 좌절하고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시도하는 일련의 과정을 작업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것이 이불이 구현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의 모습 자체일 것이다.

전시가 이해되느냐 마느냐보다는 관객이 자신의 인생을 배경으로 작품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이불은 관객들이 전시를 온몸으로 겪고 느끼기를, 심지어 작품과 사랑에 빠지기를 바라고 있다.


유한과 무한의 반복, 희망과 좌절의 삶 속에서 유토피아를 향한 이불의 열망이 나에게 끝까지 순수한 환타지를 갖게 한다. 단지 행복만 있는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존재하는 현실적인 유토피아이기에 더욱 와 닿는다. 그것을 향한 끊임없는 이불의 행보가 나를 그의 유토피아로 이끈다.


당신은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그것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과연 실현될 수 있는 것인가


최지혜, 미술컨설턴트, 유로저널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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