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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골에 고지비투옹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숲이 울창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언덕배기에 마을이 있고 ...

by 유로저널  /  on Jan 05, 2010 19:18
깊은 산골에 고지비투옹이라고 하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숲이 울창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언덕배기에 마을이 있고 마을 앞 완만한 경사면에는 나지막한 구릉이 넘실넘실 물결치듯 부드럽게 펼쳐져 있습니다. 구릉의 중간쯤에는 맑은 물이 고인 아름다운 호수가 내려다 보이고 호수 저 멀리 산들이 굽이치고 있습니다. 일년 내내 따뜻하여 산과 들에는 먹을 것들이 언제나 지천으로 널려있습니다.

바깥 세상에서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바깥 세상이 있는 줄 모르고 자기네 마을이 전부인 줄 압니다. 그리고 조상대대로 살아온 방식대로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로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산에서 나는 눙가리라고 하는 나무열매를 씹어서 달콤한 즙을 먹습니다. 콩알만한 눙가리를 한 웅큼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어서 즙을 삼키고 남는 찌꺼기는 모아두었다가 가축 사료나 거름으로 씁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눙가리 즙을 먼저 먹이고 어머니 젖을 물립니다. 마을 사람은 남녀노소 누구나 하루 종일 눙가리를 씹습니다. 죽을 때까지 씹습니다. 숨을 거둘 때에는 눙가리 즙을 입에 부어넣습니다. 눙가리를 씹지 않으면 엉뚱한 세상에 살게 되고 죽어서도 엉뚱한 세상으로 간다고 믿습니다.

어느 날 신선이 나타났습니다. 소문에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도 하고 마을 뒤 영험(靈驗)한 산에서 내려왔다고도 합니다. 신선은 사람들에게 눙가리를 먹지 말라고 합니다. 눙가리 때문에 눈알에 얇은 막이 씌워져서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눙가리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조상을 모독하는 일이고 고지비투옹 사람이 아니라고 하며 아무도 신선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선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계속 설득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신선의 말을 좇아 눙가리를 먹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눈이 점점 맑아지더니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세상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눙가리를 먹을 때에는 세상이 모두 잿빛으로 보였는데 눙가리를 끊고 나니까 휘황찬란한 세상이 드러났습니다. 눙가리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마을사람들이 갈라집니다. 끝까지 눙가리를 먹겠다고 고집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신선의 말을 듣지 말라고 다른 사람들을 말립니다. 또 한 부류는 눙가리를 먹지 않아서 새 세상이 드러났는데도 그전에 본 잿빛 세상이 진짜 세상이라고 고집합니다. 나머지 한 부류는 신선의 말대로 눙가리를 끊고 진짜 세상을 찾은 사람들입니다. 셋째 부류의 사람들은 거짓을 버려서 참을 찾았습니다.

잿빛 세상은 없는 것입니다. 잿빛 세상에 사는 잿빛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잿빛 세상을 벗어나지 않고는 진짜 세상이 아닌 허상 세상에 산다는 것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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