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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처럼 전체 국토의 면적이 작은 나라에서도 지방색이라는 것이 있다. 같이 어울려 사는 사람들끼리는 사투리와 같은 비슷한 뭔가 공통된 모습이 있고, 주변 환경과 문화적 특징에서 자기들만의 삶의 스타일을 간직한다. 그 지방색은 그곳을 사는 사람들의 성격을 말하고 외부 사람들이 그들을 보는 선입견을 만들기도 한다.

스페인을 흔히 정열의 나라라고 한다. 뜨거운 태양아래 거리는 늘 활기차고, 사람들은 항상 여유를 즐길 것 같다. 스페인의 면적은 한반도 전체의 2.5배나 되며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나라이다. 스페인 민족은 역사적으로 북부 피레네를 넘어 정착한 켈트족에 의해 사회가 형성되기도 했으나, 이 후 로마인을 비롯한 게르만 민족 등, 다양한 민족들이 스페인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슬람 세력의 확장과 아프리카 베르베르인의 침입으로 지역마다 복잡한 혼혈민족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스페인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동양적이고, 아프리카적인 문화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으며 이것은 스페인만의 묘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북부와 동해안 연안의 켈트족 사람들과 달이 아프리카와 근접한 남부지방의 사람들은 좀더 검은 피부와 어두운 머리칼을 가지고 있어, 먼저 생김새부터 지역적인 차이를 보인다. 언어 또한 남부 안달루시아와 카스티야 지방의 카스티야 방언, 바르셀로나 중심의 카탈란 방언, 북서부의 갈리시아 방언으로 나뉘어 서로를 구별한다.
  
지역별 차이는 스페인들 사이에서도 서로간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가끔씩 북부의 사람들은 항상 햇살이 내리쬐고 먹을 것이 풍족한 남부의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말하기도 하고, 생계에 대한 고민보다 놀거나 즐기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짓기도 한다. 그만큼 북부 생활의 모습과 남부는 다르다는 것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프랑스와의 국경 근처인 북부 도시인 팜플로냐부터 남부의 도시 그라나다까지 관찰할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각각의 지역색을 조금씩 읽을 수가 있었다.

팜플로냐에서 소몰이 축제를 구경한 후 마드리드를 거쳐 세비야로 향했다. 세비야는 과달키비르 강 어귀에 있는 내륙 항구도시로 이슬람세력이 스페인을 지배했을 당시 수도였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카르멘’, ‘세비야의 이발사’ 등에서 배경이 되었던 도시로 한때 ‘황금의 도시’라고 불렸을 만큼 스페인 최대의 화려한 상업도시였다. 세비야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플라멩고 때문일 것이다.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세비야 플라멩고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스페인을 상징하는 플라멩고의 산고장인 셈이다. 15세기 스페인 남부에 정착한 집시들이 만들어 낸 춤으로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만든 사람은 까르멘 아마야 라는 무용수를 통해서 알려 지게 되었다. 인도 북부지방으로부터 외침을 받은 집시들이 체코슬로바키아로 쫓겨나, 다시 거기서 흩어진 일부 집시들이 스페인 남부에 정착한다. 이들은 만든 독특한 음악에 화려하고 즉흥적이며 기교가 뛰어난 춤을 입힌 것이 플라멩고 춤이다. 800년동안 아랍세력의 지배하에 있던 스페인 남부에서 이 춤이 발전하게 되고 플라멩고는 아랍어로 ‘농부(felag)’, 혹은 ‘도망자(mengu)’라는 뜻을 가진다. 플라멩고 음악은 사랑의 슬픔과 고뇌를 표현한 칸테 혼도(cante jondo), 경쾌하고 박진감넘치는 칸테 치코(cante chico)고 구성되고 집시들의 음악뿐만 아니라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요가 섞여 스페인 남부 지방색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세비야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세비야 대성당과 히브랄 탑 등을 구경한 후 세비야 거리를 종일 걸어보았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쾌적한 날씨에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다. 워낙 유명한 도시라 그런지,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많은 곳에서 여행을 온 사람들이었다. 대성당을 중심으로 한 구시가지 안에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거리 곳곳을 둘러 보기 바쁜 사람들과, 멋진 선글라스로 햇빛을 가리고 까페에서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도 있었다. 좁은 골목 사이에는 작은 상점이 있어 크게 비싸지는 않지만 스페인의 모습을 담은 여러 가지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길을 걷고 있는 내 뒤로 말발굽 소리가 따각따각 나고, 말을 끄는 멋스러운 마차가 곧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여름을 코 앞에 둔 6월이라 그런지 해는 9시가 넘어서야 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밤 10시 플라멩고를 무료로 보여준다는 맥주 집에 들렀다. 7년 전 세비야를 방문했을 때 35유로 정도를 주고 보았던 것과는 또 다름 경험이었다. 여기 맥주집에서는 무대와 관객 사이의 경계가 거의 없다. 물론 무용수의 스텝 소리를 확장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무대는 있으나 그 거리는 상당히 좁고, 관객들 또한 가만히 앉아 엄숙히 춤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공연 내내 환호를 보낸다. 약간은 소란스러운 관객들의 흥에 겨운 모습은 춤을 추는 무희, 박자를 맞추고 멜로디를 넣는 기타연주자,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와 하나가 되어 넒은 공간의 술집전체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무희의 움직임은 화려하고 빠르며, 또한 단호하다. 우아한 발레와 다르게 흥분이 숨겨져 있으며, 뮤지컬 공연의 춤과 달리 무희들의 깊은 생각과 애환을 읽을 수 있다. 플라멩고춤에서 느껴지는 이 많은 가지의 느낌은 곧 스페인 남부지방의 지방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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