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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헤드헌터로 일하면서 한국인 구직자들에게 종종 Temporary 채용을 연결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영국에서 오래 지낸 분들은 Temporary 채용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무난하게 채용을 소개할 수 있었지만,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분들은 그러한 Temporary 채용에 지원하기를 꺼리거나, 심지어 ‘Temporary’라는 단어 자체게 극도의 거부감이나 경계심을 보여서 이 분들에게 Temporary 채용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느라 애를 먹곤 했다.

 

그리고, 이렇게 한국에서 막 영국에 온 분들이 일자리를 구하다가 ‘Temporary’라는 단어에 그러한 반응을 보였던 것은 한국에서의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온갖 부정적인 인식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어 단어로 ‘Temporary’‘Contract’라고 하면 그게 또 그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여기서 잠깐, 혹시 Temporary Contract의 개념을 혼동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짧게 설명을 곁들이자면, Temporary는 흔히 말하는 아웃소싱과 같은 개념으로, 즉 회사에서 직접 그 직원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인력 알선/파견 업체(영국에서는 Recruitment Agency)와 계약을 맺고 고용되어 실제 일자리가 있는 회사에서 파견 근무를 하는 것이다.

 

Contract는 말 그대로 계약직이며, 그러나 인력 알선/파견 업체에 고용되는 Temporary와 달리 실제로 일하는 회사와 계약을 맺고 고용되는 것이다. , Temporary Contract 둘 다 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거나 계약이 갱신되는 계약직혹은 비정규직이지만, 고용 계약을 맺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사실, 영국에서는 이미 정규직보다 이러한 비정규직이 더 많고, 특히 Temporary 채용은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한국에서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Temporary 채용을 전혀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Temporary 형태로 채용된 이들을 철저히 보호하는 법규들(가령 일정 기간 이상 근무 시 정규직 직원들과 동일한 급여/보너스/복지 혜택을 보장받도록 하는)이 있고, 사람들이나 사회의 인식도 이들을 전혀 차별하지 않으며, 회사가 이러한 고용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도 없다. 그렇기에 영국에서는 비정규직의 설움같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근로자 스스로가 정규직보다 이러한 Temporary 형태의 계약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가령, IT나 고급 기술직 인력들은 고용의 해지가 유연한 점(회사도 직원도 1주일 통보 기간만 지키면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Temporary로 일할 때 정규직보다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점 때문에 Temporary 채용을 선호하기도 한다.

 

Temporary 근로자에게 책정되는 급여 수준이 정규직 급여 수준에 비해 별 차이가 없거나 위에서 언급한 고급 기술직인 경우 심지어 정규직 급여보다 더 높은 경우도 있으며, 정규직으로 일할 경우에는 별도의 야근 수당 없이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Temporary 채용은 보통 시급제인 경우가 많아서 일한 시간만큼 철저히 급여를 보장받기에 같은 시간 일을 하고서 오히려 정규직 직원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영국에서는 모두가 다 Temporary 형태로 근무하길 희망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당연히 정규직을 선호하는 이들이 더 많고, 그렇기에 Temporary 형태의 고용은 정규직으로의 전환으로 이어지는 발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사실, 나 자신이 영국에서 유학을 마친 뒤 이렇게 Temporary 형태로 고용되었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례기도 하다.

 

다만, 적어도 영국에서는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한국에서처럼 부정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이로 인해 사회적 이슈가 되거나 어느 한 개인의 불행과 연관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아마 영국에서였다면 미생같은 드라마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존재했다고 해도 한국에서와 같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분명 기업들이 이러한 비정규직 제도를 악용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행태는 관련 법규로 철저히 다스리고 개선해나가야 할 문제고,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가 계속 증가할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싫든 좋든 결국 앞으로 비정규직 일자리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현 시대의 운명인 지도 모른다.

 

나는 비정규직 시대를 환영한다거나 한국 정부가 도입하려는 비정규직 제도를 지지한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비정규직 시대가 도래할 것 같아서 (물론 이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보자는 것이고, 영국에서의 비정규직을 참고 사례로 살펴보자는 것이다.

 

너무나 원론적인 얘기지만 어쨌든 국가는 이들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규를 만들고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하며, 기업은 이러한 법규를 충실히 이행하고 비정규직 제도를 악이용하지 말아야 하며, 사회는 국가의 비정규직 법규가 바르게 세워지는지 그리고 기업들이 이러한 법규를 충실히 이행하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 개개인이 이러한 비정규직 제도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한국에서 어떤 일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가장 힘든 것은 결국 사람들의 시선이다. 내가 비정규직이 되었을 때 그와 관련된 국가의 정책도, 회사의 행태도 영향을 끼치겠지만, 결국 나를 가장 힘들고 슬프게 하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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