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 전시 꼭 봐야해요?
"미술관에서 기획하는 전시들은 모두 관람해야 하나요?", "어떤 전시를 꼭 봐야 할까요?", "마크로스코전은 꼭 가볼까요?" 최근 아트컨설턴트인 내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중 하나다.
국공립미술관에서 이른바 '한탕' 을 노리는 블록버스터 전시들을 잇따라 열고 있다. 비엔나미술사박물관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분관), 모네전(서울시립미술관), 고흐전(서울시립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전(국립중앙박물관), 뭉크전(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등, 그리고 현재의 마크로스코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까지 블록버스터형 전시들은 수십만 명의 관람객들의 발길을 이끌어냈다.
시내의 한 블록 내에서 관람객들을 빨아들이며 다른 전시들의 흥행을 초토화시킨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미술의 블록버스터 전시의 기원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관장 토머스 호빙(Thomas Hoving)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미술관의 명성을 갖게 만든 공로자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1967년부터 10년간 메트로폴리탄 관장직을 맡았을 때는 무리한 시설확장과 세계적 수준의 미술품을 공격적으로 사들이는 것으로 인해 이사회와 잦은 마찰을 빚었었다.
하지만, 더 많은 일반 대중들이 문화 혜택을 누리게 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확고했고, 결국 그가 사들인 세계적인 미술품들을 이용해 보다 대중적인 흥미를 끌 수 있는 대형 전시회를 개최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전시가 유럽으로도 전파돼 영국 대영박물관이나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등에서도 이집트미술이나 인상파미술품 등을 가지고 블록버스터형 전시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 이런 '블록버스터 전시' 라는 이름으로 외국 대형 미술관의 중요한 소장품들이 소개 된 것은1990년대 후반부터다. 대형전시를 기획하는 외부 기획사들이 등장하면서 작품을 빌려주는 외국 미술관 측과 전시를 개최하는 국내 미술관 사이에 실제적으로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개입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전시 기획 주도권을 기획사가 가지고 있고 미술관은 사실상 대관하는 형식을 취하는 점에서 일본, 미국, 그리고 유럽에서 열리는 대형전시들과는 그 성격이 사뭇다르다.
수십 억원 이상의 초기투자 비용을 공공 미술관에서 감당할 수가 없는 실정이기 때문에, 이렇게 대형 기획사에 종속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으로 인하여 미술관의 공익성이 훼손되고,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SNS시대라는 말답게 요즘 젊은이들은 어떤 영화, 연극, 뮤지컬, 그리고 전시 등을 관람한 후 블로그,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앞다투어 후기를 올려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한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전시는 그것이 블록버스터 전시의 경우에는 더욱이나 볼만한 게 없어요, 고흐전을 보러갔더니, 고흐의 대표작은 거의 없없어요, 현란한 선전과 호들갑스러운 광고에 비해 전시는 빈약해서 정말 실망스러웠어요. 그래서 저는 블록버스터 전시는 다시는 보러 가고 싶지 않아요."
블록버스터 전시에 대한 이런 비난의 글을 자주 보게된다. 유명 작가의 이름을 거론한 전시인데도 가서 보면 기껏해야 소품 몇 점만 초라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더러는 복제품인지 오리지널 작품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형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미술사적으로 전시의 의미를 찾기도 어려우며 미술사적 연구의 누적이나 미술문화 전반의 질적 개선과 같은 효과마저도 기대하기가 어렵다.
물론 외국에 가야 볼 수 있는 세계적인 작품들을 국내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투자비용에 비해 미술관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더 우세하다.
피카소나 샤갈, 달리, 마그리트, 렘브란트와 모네, 워홀, 고흐 그리고 바로크 회화와 네덜란드 회화, 인상파 화가 등으로 폭도 넓혀가고 작가군도 다양해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작가의 지명도에 의존하여 전시를 기획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화가들, 즉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화가들의 전시를 해야 크게 인기몰이를 할 수 있고, 이윤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라도 말이다.
관람객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작가들의 명성도 확인하고 셀카와 인증샷을 찍으러 전시장으로 간다. 그리고 나도 남들처럼 고흐를 보았고 피카소를 보았다라고 말한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일상화로 소득과 계층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소비형태도 아주 비싸거나 아주 싼 것만 팔리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명품 가방을 빚을 내어 구입하면서 자신이 상류층이 된 것같은 충족감을 느끼고, 미술전시를 보면서도 마찬가지로 뽐내고 싶고 다르고 싶은 가면을 쓴다.
"미술관에 왜 가세요?", "전시회 왜 보러 가세요?" 라고 물으면, 정작 "잘 모르겠어요", "그냥요", "남들이 보니까 보러가요" 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의식중에 미술관으로 향하는 것은 바로 생명 그 자체에 대한 도구와 목적을 넘어선 또 다른 욕구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가면과 과시도 아닌, 현실적인 부조화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출발하는 자기 인식이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현실속에서 시원스럽게 충족되지 못하는 불만과 부조화에 대한 갈등을 혹시 미술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그림을 만나 자유롭게 사유하고 상상할 수 있는 이런 권리를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빼앗기고 수박겉핥기 식으로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기획사와 언론사 들이 미술관이란 장소와 공간을 이용해서 수익을 거둬들일려고 하기 때문에 전시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뒷전이 돼 버린 것이다.
오늘날 블록버스터 전시는 미술관의 산업화와 대중화라는 흐름속에서 일종의 불가피한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예술의 대중화와 문화 전반의 질적 개선을 위해, 미술관, 기획사, 관람객 등 각자의 위치에서 블록버스터 전시의 허와 실을 들여다보고 문제점들을 생각해보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
국공립 미술관이 예산과 컬렉션 부족에 따라 블록버스터 전시를 직접 주관할 수는 없는 실정일지라도 공익적, 교육적 목적의 질 높은 전시를 대중들에게 선보일 필요성은 있다. 따라서 공익성과 학술적 발전을 위해, 미술관은 탄탄한 내부 인력풀을 구성하여 중,장기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전시회, 교육프로그램을 직접 계획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외부 기획사와 협력시에도 기본적으로 해당 미술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소장품과 관련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전시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해당 전시가 미술관의 소장품과 성격이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가져야만 전시에 내부인력도 참여가능하고 전시회 개최 예산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의 경우가 한 예라 할 수 있겠다. 소장 작품을 빌려주거나 작품을 빌려올 때 그것이 내셔날갤러리가 담당하는 영역의 미술사나 학술적 지식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만 대여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외국 미술관에서 요구하는대로 대여조건을 수용하며 비싼 대여료를 지불하면서 유럽이나 미국 등의 유명 미술관 소장품을 일방적으로 빌려오는 형식으로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외국 미술관의 리노베이션 기간에 작품이 대여되는 경우인데, 현재 마크로스코전시회가 바로 그 실제적인 예다.
또한 언론, 기획사 등도 수익을 목적으로 전시를 주관했을 지라도 국공립 미술관의 공익성과 전시의 의미에 대해서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상업성과 함께 예술성을 고려하여 어떤 것이 정말 좋은 전시인지에 대한 진지한 숙고를 할 필요가 있다. 전시란 또 다른 창작과정이다. 반드시 철저한 준비를 해야한다.
관람객들은 세계적인 인상파화가들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더라도 지나친 광고와 작품설명에 이끌려 다니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잃어버리지 말아야겠다. 이른바 분석심리학자 칼융의 '자기 발견의 과정' 을 통해 자신들의 다양한 모습을 찾아갈 수 있어야겠다.
최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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