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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날씨가 좋더니 요즘 들어 다시 비가 자주 온다. 그것도 평소 같은 보슬비 정도가 아니라 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이젠 나도 ‘영국인 스러워’ 지고 있는 건지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펼쳐 들지 않고, 옷에 달린 모자를 덮어 쓰거나, 아니면 가벼운 비는 그냥 맞고 만다. 추워도 햇살이 비치던 늦가을 날씨가 가버리고 다시 영국날씨로 돌아오면서 나는 밝고 활동적인 것보다 말보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내 몸을 쓰는 일보다 오감을 자극하는 뭔가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 16번째 런던 실험음악 페스티벌( 16th Festival of Experimental Music, London)이다. 1년에 한번씩 열리는 페스티벌로 말 그대로 실험음악 축제이다. 나도 그다지 실험음악을 많이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신선함과 놀라움이 함께하는 음악장르라고 할 수 있다. 실험음악은 미술로 따지면 현대미술과도 같다.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난해함과 이해불가의 요소가 그 안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음악은 미술보다 대중들의 긍정적 반응을 가지로 오지 않는가. 사람들은 좋아하는 현대미술 작가는 없어도 지금 활발히 활동중인 좋아하는 뮤지션들은 한 명씩은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들이 실험음악가들인 경운 드물지만 말이다. 또한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보다는 팝음악을 주로 좋아하는 것을 봤을 때 분명 음악에도 미술처럼 일반인들의 손이 많이 닿지 않는 분야들이 존재한다. 실험음악도 그러한 분야 중에 하나이다. 기타를 연주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그런 귀에 익은 기타소리가 아니라 코드에 상관없이 기타 줄 하나만 끊임없이 긁어대어 예민한 소리만 만들고, 드럼을 연주하는 뮤지션은 악기라고 말할 수도 없는 연장 같은 것들을 잔뜩 옆에다 가져다 놓고 그것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괴상망측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떤 실험음악가들은 악기도 연장도 없이 컴퓨터와 전자 시스템만 들고 나온다. 그리고는 마치 나이트클럽의 DJ들처럼 음악을 변형하고 조정한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공통적인 것은 아무리 듣기 거북한 소리들도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발견’이라는 것이다. 즉 ‘창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작년 한국에 잠시 휴가 차 갔을 때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공연들을 본 기억이 난다. 그 중 하나가 실험음악 공연이었는데, 홍대 앞 작은 클럽에서 의자도 없는 공간에 관객들은 그냥 맥주 하나 들고 바닥에 앉아 음악을 즐겼었다. 실험음악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은 평소에는 팝을 듣더라도 뮤지션들에 창조된 ‘잡음’에서 묘한 기분을 느끼는 것을 즐긴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이다. 이번 런던 실험 음악 페스티벌은 Cochrane Theatre에서 열렸다. 이 극장은 University of Arts London에 소속된 공간으로서 이 학교 교수였던 Jeannetta Cochrane에 의해 1964년 문을 열었다. 공연과 관련된 학교 행사뿐만 아니라 이번 음악 페스티벌 같은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많은 공연들을 선보이기도 한다. 3일 간 열린 페스티벌동안 열 두개의 그룹이 공연하였고 그들의 국적 또한 다양하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만드는 소리들도 더욱 다양함을 갖는 듯 하다. Yasunao Tone, Charlemagne Palestine, Norbert Möslang 등과 같은 솔로 연주가도 있었고 John Butcher, Tony Buck, Burkhard Stangl과 같은 그룹 공연자들도 있었는데 나에게는 연주가들의 다양한 역할과 악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그룹 공연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들 중 마지막 축제일에 마지막 공연을 장식한 Steve Beresford, Mark Sanders, 그리고 Peter Evans의 공연을 잊을 수 없다. 3일 중 첫 날의 공연을 부득이하게 놓쳐서 아쉬웠었는데 셋째 날 공연을 함께 가기도 하고, 모든 공연을 다 본 친구가 그 날 마지막 연주자들이 이전의 어떤 것보다 낫다는 말에 나의 아쉬움은 사라지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섹스폰과 같은 금관 악기들 들고 나온 연주가 한 명과 기타를 연주하는 음악가 한 명, 그리고 드럼을 연주하는 뮤지션, 이렇게 세 명으로 구성된다. 음악을 듣기 전부터 검정테 안경과 수트를 차려 입은 기타리스트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실험음악이 아닌가? 뭔가 독특하고 튀는 복장이 연상되지만 그 기타리스트를 포함해 전체 연주가들의 옷차림은 너무나 정갈하고 깔끔했다. 그래서 그들의 연주가 더 신선했을 수도 있다. 깨끗이 단정한 옷을 차려 입는 그들은 마치 무의식 속에 숨겨놓은 미칠듯한 열정을 뿜어내듯 혼이 빠진 상태로 연주를 하였다. 그들이 만드는 소리가 특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소리의 깊은 다양성이다.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아주 미세한 소리에서부터 나의 뇌를 때리는 듯한 굉음까지 간단한 악기와 전자시스템을 통해 소리의 한계에 도전하는 듯 하였다. 때론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다. 기타리스트가 기타 뒷면을 그의 허벅지에 비비기 시작했다. 천천히 기타를 비비기 시작하여 기타의 각도를 조절해 가면서 소리를 만드는데, 도대체 어떤 시스템을 통해 허벅지와 기타 사이에서 소리가 형성되는지 놀라움을 호기심을 숨길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 소리가 멋있다는 것이다. 기타 줄 하나하나에도 음의 높이가 다른 것처럼 기타 뒷면과 허벅지 사이에서도 음의 높낮이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험 음악이다. 훌륭한 음악 악기와 숙련된 뮤지션의 연주만이 멋진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다. 악기를 포함한 어떠한 도구와 감각적인 창조정신이 있다면 음악은 만들어진다는 것이 실험 음악가들의 기본 정신이 아닐까 한다.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 밖을 나왔을 때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이 날은 여느 때의 런던의 비와는 달랐다. 비가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바닥과 건물, 나무에 부딪치면서 그들만의 독창적인 소리를 창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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