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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3 17:04
꽃으로 감싸는 죽음
조회 수 2474 추천 수 0 댓글 0
1998년 여름, 전 영국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비가 사망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호텔을 떠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길을 방해하는 파파라치와 음주였던 운전사의 잘못 등 여러 가지가 사고 원인으로 나왔다. 그러나 당시 연인이었으며 같은 사고로 사망한 도디 파예드의 아버지가 왕실의 범행으로 보는 등 1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녀의 죽음에 대해 많은 의문이 남겨져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그녀의 죽음은 당시 전세계를 놀라게 한 충격적인 뉴스였고, 당시 학생이었던 나 또한 신문을 찾아 그녀의 소식에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다이애나는 사망했을 당시, 더 이상 찰스 왕세자의 아내가 아니었으며 이혼 원인도 그녀의 사망원인 못지않게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찰스의 오래된 연인이었던 현재의 그의 부인 카밀라 때문에 부부관계 소월, 쌍방의 외도 등이 이유로 알려지고 있다. 왕자 찰스와 왕실과의 사이에서 다이애나는 늘 문제가 생기고 많은 말도 있었지만 어머니로서, 온 국민의 공주로서 그녀는 항상 인기 만점이었다. 왕실의 권위있는 교육과 달리 왕자들에게 자유분방하고 활동적인 것을 우선시 하게 했으며, 왕자들과 같이 놀이공원이나, 학교 운동회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녀의 모습이 파파라치들에 의해 찍힌 많은 사진 속에 남아 있다. 또 영국 내 활동보다 아프리카 빈민국가에 직접 방문해 에이즈 보호 운동을 한다거나 전쟁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하는 등, 많은 사람들이 이혼 후에도 그녀를 영국인들의 영원한 ‘공주’라는 것을 일깨우는 선행된 일을 많이 했었다. 이런 그녀의 죽음은 전세계를 슬픔 속으로 몰아넣었으며 그녀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참 많았었다. 그녀와 찰스 왕세자와 함께 살았었던 켄싱턴 궁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고, 그들은 꽃다발을 궁 앞에 하나 둘씩 놓기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그 길이가 수백 미터에 이르렀다. 죽은 사람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 꽃을 가져다 놓는 영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죽음은 그것을 바라봐야 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슬픔이다. 어느 나라든 슬픔을 슬픔으로만 끝나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으면 가족들이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연락해 우선 죽음을 알린다. 그러면 사람들은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장례식장에 모여 들고 가족들의 슬픔을 같이 나누고, 죽은 이의 명복을 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는 장례식장 내의 모습과 달리 죽은 이를 통해 모이게 된 친지들과 친구들은 다같이 모여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그 동안 살아 온 이야기를 하거나 웃음을 띠면서 슬픔을 대신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를 보면 나오듯 상갓집의 모습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과 사람 냄새 나는 구수함이 있다. 죽음에 대해 명복을 빌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거기서 기쁨을 보는 것이다. 영국은 우리와 정서도 다를뿐더러 죽음에 대한 생각이 동양의 우리와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망자의 마지막 머문 장소에 대해 우리보다 많은 의미를 두는 듯 하다. TV나 영화에서 보면 영국뿐만 아니라 서구의 많은 나라에서는 사고로 사망한 이들의 사고장소에 이웃들이나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들이 가져다 놓은 꽃이 놓여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꽃과 함께 생전의 사망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아니면 꽃을 놓는 이와 사망자 사이의 추억이 있는 어떤 물건들이 꽃다발과 함께 놓인다. 때문에 그 장소에서 사고가 난 지도 몰랐었던 사람들도 그 자리를 지나가면서 꽃다발과 물건들을 보면서 비록 알지는 못하지만 떠난 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고 짧은 명복은 마음 속으로 빌게 된다. 꽃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쁨의 표현으로 쓰인다. 연인에게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라든지 부모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혹은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꽃을 선물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장례식 장에 생화로 된 전(奠)을 올려 식장을 화려하게 만들고 여기 영국 사람들도 꽃다발을 사고 장소나, 사망자의 집 앞에 놓아 그들의 죽음을 아름답게 만든다. 꽃을 사는 이유가 생일이나, 축하와 같은 기쁨으로 시작하지는 않지만 장례식장에 놓이거나 죽은 장소에 놓이는 순간 그 꽃은 슬픔을 기쁨으로 전환하게 하는 통로를 마련한다. 유가족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참한 사고로 사람이 사망한 그 장소에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소복한 꽃들 때문에 찢어지는 마음의 고통보다 죽어버린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이 더 커지게 되고, 갑작스런 사고로 죽어 누구도 죽은 이의 안타까움을 모를 것이라는 유가족이나 지인들의 생각은 사고 자리를 찾아 꽃과 사진, 편지 등을 놓고 가는 이들 때문에 따뜻한 행복으로 바뀔 것이다. 영국처럼 길거리나 집 앞에 꽃다발을 놓는 것은 죽음을 알려 그 죽음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잠시나마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작은 감사를 느끼게 하는 효과도 있다. 놓여진 꽃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지나던 길에서 누군가가 며칠 전 사망했거나, 전혀 모르던 사람이 살던 집의 가족 중 한 명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죽음 더 이상 ‘남’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가까운 공간 안에 살던 누군가가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며 ‘남’보다는 가까운 ‘어떤 사람’의 죽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꽃을 보는 아주 짧은 순간에 어떤 원인으로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바쁘거나 힘들게 살아온 자신들의 삶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되고 알 수 없는 무력함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지금 살아있는 것을 감사하게 될 것이다. 길에 놓인 꽃들은 죽음이 두려움이나 슬픔이 되지 않게 하고, 산 사람들에게 짧은 생각의 시간을 주면서 삶의 가치를 되새김질 하게 한다. 결국 그것은 죽은 이에 대한 명복이 아니라 산 사람들의 삶에 축복을 주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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