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예술칼럼 (25) 5분안에 구매를 결정합니다!

5분안에 구매를 결정합니다!

"작품을 보면 5분 안에 구매를 결정합니다. 보는 순간은 짧지만, 내가 갖고 있는 우주가 5분안에 결정하게 하니까요"라며 소위 '싹쓸이 컬렉터'라는 평을 듣는 이가 있다. 그는 바로 (주)아라리오 김창일 회장(64)이다. 

(주)아라리오 김창일 회장

메를로 퐁티가 설명하는 현상학적 직관에 충실하면서 '촉이 살아 있다'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그에게 보수적인 미술계주류는 '예술을 모르는 졸부'라고 쓴 소리를 퍼붓는다.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촉이 살아있는 컬렉터이자 사업가라는 사실을 세상에 여실히 보여준다. 방대한 규모의 미술품으로2002년 천안을 시작으로, 2005년 중국 베이징, 2006년 서울, 2007년 뉴욕 첼시, 2014년 중국 상하이까지 잇달아 갤러리를 오픈하였다. (현재 뉴욕과 베이징 갤러리는 철수한 상태) 

2014년 드디어, 10여년 동안 갤러리를 운영한 경험과 천부적인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미술관 부지를 매입하여, 35년에 걸친 일생일대의 숙원사업인 서울 1곳과 제주 4곳에 사립미술관 5곳을 한꺼번에 열게 된 것이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서울은 지난 2014년 9월 1일, 제주 3곳은 10월 1일 그랜드 오픈했다. 올해 4월에는 동문 쪽에 1곳의 뮤지엄을 추가로 오픈했다.

재정난을 겪던 공간건축사사무소가 내놓은 '공간' 사옥을 사들여 9개월에 걸쳐 뮤지엄으로 리모델링해 아라리오뮤지엄으로 개관하고, 제주의 옛 제주탑동시네마와 탑동바이크샵, 동문모텔 건물 등을 매입해 미술관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

이 뿐만 아니라, 최근 2~3년동안 제주 탑동과 동문, 성산 일대 뮤지엄이 들어선 곳 인근 건물들을 잇달아 사들여 그 일대에 카페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식으로 소위 '문화복합단지'를 실현시키고 있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말한 탈구조주의의 노마드(유목민)의 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국의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김창일 회장은 2000년대 이후, 미국 유명 미술잡지 아트뉴스가 선정하는 '세계 200대 컬렉터' 명단에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7년째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물이다. 

1978년 천안 시외버스 터미널 매점 경영을 맡으면서 사업을 시작한 김 회장은1980년대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현대미술관의 전시를 통해 예술에 눈을 뜨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35년에 걸쳐 미국, 뉴욕, 아시아 등 전세계 미술관과 갤러리를 돌아다니며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8-1990), 트레이시 에민 (Tracey Emin, 1963-)과 같은 세계적인 작가 작품 3700여점을 보유하면서 '괴물', '돈키호테' 같은 별명도 얻었다.

괴물이라는 별명답게 세계적인 컬렉터로써 그의 미술품을 사들이는 방식도 독특하다. 미술계 거장들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핫한 신진 작가들의 작품까지, 그리고 전시에 출품된 작품을 모조리 사버리는 방식으로 한번 꽂히면 돈에 상관없이 꼭 손에 넣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측불허한 돈키호테같은 그의 행보에 대해 '시골 졸부가 돈 자랑하려고 안달이 났다'는 식의 조롱부터, 1999년부터는 씨킴(CI Kim)이라는 예명으로 작가로도 활동하는 그를, '졸부 소리 듣기 싫어 예술가인 척 한다'는 비아냥까지, 찬사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그는 이런 비판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제가 뭔가 일을 벌일 때마다 그게 진짜냐 묻는 사람이 많아서" 서울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ARARIO MUSEUM in SPACE)개관전 타이틀을 'REALLY?'로 불였다고 말한다.  또한 제주 아라리오뮤지엄에서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불렀던 그는 "나 하고 싶은대로 다 했다"고 말했다. 

누가 누구를 비판하고 있는 걸까? 미술계의 따가운 시선에 스스로 뿌리를 내려 당당히 선 한 노마드로써 김창일 회장은 "편견따위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런 세상을 오히려 비웃고 있다. 탈구조주의 시대 도입 이후 방황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직관에 충실한 노마드(유목민)의 좋은 예를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2014년 10월 1일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오픈식에서의 인터뷰 장면

2015년 3월 홍콩에서 열렸던 아트 바젤에서는 다른 갤러리와는 확실히 규모부터 다른 큰 부스를 열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었다. 서울, 천안, 제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의 다음 행보가 우리를 궁금하게 한다. 

홍콩 아트바젤 아라리오 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