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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이라는 것은 우리의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같은 디자인의 옷이라도 여러 가지 색이 있으면 어떤 색이 본인에게 어울리는지, 아니면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의 색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 많은 고민을 한 후 결정을 한다. 방에 페인트 칠을 할 때도, 예쁜 쿠션을 하나 살 때도, 남자들이 출근 전에 넥타이를 고를 때에도, 하나 못해 속옷 한 장을 살 때 조차도 우리는 색을 따진다. 왜냐면 색 하나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할 수 있고, 보여지는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많은 경제 전문가들도 중요한 회의나 모임이 있을 때 넥타이나 양복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 코디네이터와 같은 색을 다루는 전문가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상대에게 주는 첫 인상이 입고 있는 옷이나 악세서리의 색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색의 선택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색채는 많은 연상(聯想)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빨간색을 보면 따뜻함을 느끼거나 위험하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 파란색을 보게 되면 차갑고 냉정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검정색은 비밀스러움을, 노란색은 순진한 동심을 연상하게 된다. 이와 같이 색채에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색에 대한 느낌은 보는 사람의 개인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좋고 싫음의 감정에서 큰 차이가 나며 성별, 연령별, 생활문화 환경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여러 사람을 종합해 보면 색의 연상은 많은 사람에게 공통성을 가지며 생활관습과 결합되어 관념적으로 하나의 색은 특정한 것을 뜻하는 상징성을 띠게 된다. 색의 상징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도 있고 민족의 습관에 따라 다른 것도 많다. 보라는 많은 나라에서 고귀한 색으로 여겨지지만, 브라질이나 인도에서는 슬픔을 뜻하며, 브라질에서 보라와 노랑의 배색은 재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 흰색은 인도에서는 신성한 색으로 여겨지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상사(喪事)의 색이고, 흰 담을 불길한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녹색은 많은 나라에서 평화와 젊음을 상징하지만, 미국 동부에서 녹색은 장의사나 장의 차 등을 상징한다.

색의 상징에는 이처럼 사람의 마음에 느낌을 주는 '정서적 반응'이 있고, 또한 그 색을 국가나 사상, 또는 규칙을 나타내는 표지색으로 정하는 '사회적 규범(약속)'이 있다. 빨강은 불의 색으로 정렬의 불꽃을 의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피의 색인 까닭에 애국 정신이나 혁명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위험을 나타내는 표지색으로도 사용된다. 이처럼 색이 주는 상징은 생각보다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색의 상징성이 강하면 사람들에게 더욱 깊은 인상을 주기 때문에 각 기관이나 단체, 상품 등에서 컬러 심볼(color symbol)의 원리를 사용하는 것이다. 코카콜라의 빨강색과 코닥필름의 노랑색은 전형적인 컬러 심볼이라 하겠다.

         그러면 런던의 컬러 심볼은 무엇일까? 당연히 빨간색이다. 빨란 색의 버스, 우체통, 전화 박스 등은 거리를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 런던의 붉은 기운들이다. 빨간색은 본래 열정과 반항의 상징이고 정열, 위험, 혁명 등을 느끼게 하며, 때론 사랑과 증오, 연민 등을 가져온다. 또한 강렬함과 적극적인 성향을 나타내며 태양, 피, 불 등을 연상하게 만든다. 열정의 빨간색은 런던을 생기 있고 아름다워 보이게 만든다. 빨간 버스와 우체통, 그리고 전화박스가 없는 런던을 상상해 보자. 어두컴컴한 하늘과 안개, 회색 빛의 건물들이 주는 느낌이 사람들의 감정을 가라 앉게 만들고 침울하게 할 것이다. 얼마 전 버스를 타고 가면서 길에서 보이는 빨간색들이 파란색이었으면 느낌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머리 속으로 그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 파란색이 주는 느낌 때문에 거리가 정리되어 보이고 안정된 느낌은 있으나 지금의 빨간 색이 주는 발랄함과 긍정적인 느낌은 없을 것이다.

다른 유럽권의 나라의 큰 도시에 비해 런던의 건물의 색은 회색의 느낌이 많이 돈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본 도시만 봐도 파리는 파란 빛의 지붕에 노란 빛이 도는 벽이 있는 건축물들이 많다. 그래서 센느 강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은 더욱 낭만적으로 보인다. 오랜 시간의 흔적을 발하는 그 색들의 묘한 느낌 때문에 지나가는 차들이나 도로에 서있는 우체통들의 색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프라하는 어떨까? 그곳에 가면 하얀 색으로 칠해진 벽에 붉은 지붕이 놓여져 있고, 뾰족한 첨탑에서는 하늘을 닮은 밝은 푸른 색을 볼 수 있어 프라하라는 도시를 사랑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런던처럼 회색의 건물들이 많은 도시가 있었는데 바로 그리스의 아테네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하얀 건물들이 가득한 그리스의 이미지는 수도인 아테네의 모습이 아니라 산토리니와 같은 작은 섬들에 있는 집들의 모습이고 진정 그리스 아테네의 주된 색은 회색이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서 도시전체를 내려다 보면 이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아테네도 런던처럼 회색의 도시이긴 하나 아테네는 런던에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님 강한 햇살이다. 도시전체가 회색 빛이라도 강한 햇살이 건물과 거리 곳곳에 내려 앉아 회색이 주는 칙칙함과 우울함은 찾기 힘들다. 사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면 활기차고 능률적인 기분이 저절로 생겨 도시전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짧은 스커트를 입거나 얇은 티셔츠 한 장을 입고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이 즐겁기 때문이다. 런던에서도 파란 하늘에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지나가는 버스가 무슨 대수며, 전화박스가 무슨 상관인가? 모든 게 마냥 좋은 것을.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활발히 움직이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런던이 쉽게 흐려지는 날씨와 회색의 건축물들을 가진 것을 생각했을 때 빨간색은 정말 최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빨간색 이층 버스가 도로마다 지나다니고 골목 사이사이에는 빨간 색의 전화박스와 우체통이 놓여 있으니 흐린 날이 많은 도시라 할지라도 런던의 모습은 그리 어둡지가 않다. 도시 전체에 움직이는 빨간색과 정지해 있는 빨간색들이 조화를 이뤄 런더너(Londoner)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진다.

이게 대해 동의 할 수 없다면 빨간색이 완전히 사라진 런던을 상상해보자. 그러면 이 말들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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