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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5 21:40
마녀가 되어버린 요코 오노
조회 수 1856 추천 수 0 댓글 0
런던에서 길을 걷다 보면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으로 몸을 흔들거리면서 귀에 이어폰을 꼽은 채 걸어가는 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기타를 연주하거나 건반을 치는 듯한 손놀림도 같이 하면서 주변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이어폰을 통해 흘러오는 음악에 빠져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있어 주변 사람들은 그저 투명인간과 같다. 그들의 의식에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고 듣고 있는 음악의 중심에 서있는 자기네들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음악에 미친 젊은 영국인들, 그들은 비틀즈의 후예들이다. 비틀즈는(The Beatles) 영국 리버풀 출신인 록 밴드이다. 그들의 음악이 전세계적으로 높이 칭송되는 것은 발라드, 블루그, 레게, 헤비메탈 등의 다양한 장르를 커버하고 당대 많은 음악가에게 영향을 주면서 팝 음악의 현대적 색깔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비틀즈의 음반은 미국에서만 1억 6백여장이 팔리고 세계시장에서는 10억장 이상이 팔렸고 이런 상업적인 성공과 함께 “대중 음악 역사상”을 받으면서 객관적인 냉철한 비평가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그들은 아마도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밴드가 아닌가 한다. "The Fab Four"라 불리는 비틀즈의 구성원은 존 레논 (John Winston Lennon, 1940-1980), 폴 매카트니 (James Paul McCartney, 1942-), 조지 해리슨 (George Harrison, 1943-2001), 링고 스타 (Ringo Starr; 본명 Richard Starkey, 1940-)으로 구성되어 있다. 레논과 매카트니는 밴드의 주요 곡들을 작곡했으며, 해리슨은 후기 비틀즈에 큰 공헌을 했다. 처음 비틀즈가 레코딩을 시작한 이래,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모든 곡 레코딩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맡아왔다. 이러한 이유로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음악적 성장에 있어 중대한 자리를 차지했다. 비틀즈는 1963년 말 영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는데, 특히 비틀즈에 감명 받은 어린 여성들(일종의 오빠부대)을 주목할 만 하다. 이 현상은 영국 언론들에게 "비틀마니아"(Beatlemania)라는 단어로 표현되었다. 비틀마니아는 1964년 초에 북미에 상륙했고 이후 비틀즈의 인기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소위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략)이라 하여, 비틀즈는 미국의 초기 로큰롤 및 R&B 가수들의 노래를 커버하기 시작했다. 비틀즈는 엘비스 프레슬리, 버디 홀리, 칼 퍼킨스와 같은 백인 음악가들과 척 베리, 리틀 리처드, 레이 찰스, 레리 윌리엄스와 같은 흑인 음악가 양 쪽 모두에게 칭송받았다. 얼마 후 비틀즈는 그들 특유의 타고난 음악적 악상을 바탕으로 비틀즈만의 개성이 돋보이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이런 창조성이 그들의 예술적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20세기 문화의 아이콘”이었던 비틀즈는1970년 공식 해산되었다. 네 명의 멤버 중 가장 많은 사랑과 비난을 받은 이는 존 레논이다. 존 레논은 비틀즈 음악의 중심에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수한 많은 곡의 작곡이 존 레논에 의해 이뤄졌으며 새로운 시도도 그를 통해 만들어졌다. 이런 그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광적이었으며 그래서 인지 그의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런 그가 일본인 무명 예술가 오노 요꼬를 만나면서 그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비난, 혹은 증오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존 레논은 어느 날 요코 오노의 아방가르드 작품전에 초대되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벽의 열려진 틈에 있는 아주 작은 글씨를 돋보기로 보아야 하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 작은 글씨는 다름아닌 "yes" 였다. 무조건 사회에 반대하기만 하던 다른 아방가르드 작품과는 달리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요코의 사고방식에 존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관객이 직접 못을 박는 작품이 있었는데, 존이 요코에게 못을 박아보면 안되냐고 물었더니 요코는 그 행사는 내일부터라며 존의 요청을 거절했다. 지켜보던 다른 사람이 백만장자인 존에게 못을 박게 해주라고 귀뜸하자 요코는 존에게 "제가 가짜로 5실링을 드릴테니까 마음속으로 못을 박으세요"라 말했고 여기서 둘은 서로가 이른바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는 걸 직감하게 됐다. 이것이 그들의 첫만남이었다. 존은 무명 여T화가였던 요코가 바로 자신이 바라던 사랑과 포용을 줄 수 있는 사람, 심지어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그가 그리워해오던 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요코는 내가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어떻게선가 헤어져 있었을 뿐이죠." 오노 요코는 존레논의 판단력을 흐리게해 비틀즈를 해체시킨 배후의 인물이라는 누명으로 비틀즈의 팬들에게 소위 "마녀"라 불리어졌다. 사실 마녀이긴 하다. 한눈에 반한 그녀에 대한 존 레논의 사랑 때문에 그는 첫번째 부인과 과감히 이혼을 했으며, 어쨌든 음악이 인생의 전부처럼 그에게 음악과 그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 아닌 한 사람을 계속적으로 쫓고 있었으니 말이다. 상당히 영국인스러운 존 레논이다. 사랑하는 음악에 빠져 당시의 주류를 이루던 음악의 틀에서 벗어나 새 것을 선보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사랑하는 여자에게 빠져 만나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것을 인생의 큰 계획안에 짚어 넣었다. 타인이나 제 3자의 의견이나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는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부의 부정적인 팬들에 의해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뉴욕에서 38구경 권총 다섯 발을 맞아 의식을 잃은 상태로 누워있던 존 레논은 열다섯 블록 떨어진 루즈벨트 종합병원으로 가는 경찰차 뒷자석에서 출혈과다로 숨졌다. 숨지기 바로 전 유명 잡지회사에서 그들의 사랑을 담은 사진을 찍기를 요청했고, 그들은 요청을 받아들였다. 다코타 빌딩 집에서 유명 사진가 애니 레보비츠가 그들의 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사진작가는 존레논에게 요코를 사랑하는 마음을 포즈로 보여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 요구를 듣자 존레논은 아무 거리낌 없이, 망설임 없이 몸에 걸치고 있는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는 오노 요코를 안은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게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식입니다.” 예술과 사랑 때문에 존 레논은 영국이 아닌 전세계의 영원한 ‘열정의 아이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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