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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척류하혜지사(盜跖柳下惠之事)

제갈량이 남만을 원정할 때, 그곳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여 고생했다. 불 같은 더위 속에서 공명의 군사들이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고 죽는다는 아천(啞泉)의 물을 마시고 고생하자 제갈량은 근처에 있는 마원(馬援:후한의 장군)의 사당에서 기도를 올린 뒤, 신선과도 같은 노인을 만나 해결 방법을 설명 듣는다. 그 노인이 바로 맹절, 본래 맹절과 맹획, 맹우는 3형제였는데 부모가 돌아가신 뒤, 맹획과 맹우는 악행을 일삼자 맹절은 이름을 숨기고 그곳에 은거해 왔다는 사실을 제갈량은 알게 된다고 삼국지는 전하고 있다.  
인자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공자의 칭찬과 존경을 받은 형 유하혜(柳下惠)와 가장 나쁜 악인으로 소문난 아우 도척(盜 )은 친형제였다.
도척은 유하혜의 아우였는데 9천여 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다니면서 남의 가축을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온 천하를 돌면서 악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한 뿌리에서 나고도 이렇게 전혀 다른 족적을 남긴 사람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사람의 가문이나 혈액형 혹은 사주 어쩌고 하는 것도 믿을게 못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예들이 먼 과거사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종종 목격되는 일이다.

어찌 이와 같은 일들이 인간사뿐에만 적용되랴.
울고 웃고 하는 만사 속에 전혀 다른 군상들이 숨쉬는 것이 우리네 사람 사는 모습 아닌가.
영국의 한 복판 런던, 그 런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한 껏 달구어진 한국의 여름맞이 행사가 전세계의 이목을 성공리에 끌게 된 것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전 날 한인들이 주축이 된 축구대회 잔디밭 우중 경기를 지켜보며 다음날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던 마음이 어디 나 혼자 뿐이었던가.

새벽같이 일어나 맑은 하늘을 올려보며 조물주께 감사기도를 드린 것도 간절히 이 날 행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비록 주최자는 아닐지라도 이번 행사가 갖는 의미가 적지 않기 때문에 주위의 모든 한인들이 참석 여부를 떠나 트라팔가 행사가 맑은 날씨 속에서 치러지기를 바라고 있었음 에라.

행사 다음 날 사무실로 찾아온 영국인 마틴은 이번 행사장에 못간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한국의 문화는 중국과 일본 문화에 비해 훨씬 덜 알려져 있다. 내가 몇 번 한국을 방문해봤을 때 한국은 분명 일본이나 중국이 가지지 못한 고유의 특색을 간직한 문화이다.” 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측에서 이번 행사의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성공적 행사를 치렀음에도 적자가 큰 모양이다. 이와 같이 한국인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감동을 준 트라팔가에서의 축제마당이 한국 기업들의 후원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한국 국적이라는 것을 광고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향간에 회자되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믿는다.
언제부터 일류였고 언제부터 대기업 이었든 가.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마따나 비록 한국 제품의 성능이 조금 떨어지고 디자인이 떨어져도 한국인들 거의가 해외에 나와서는 한국 제품을 선호해왔던 것이 사실 아닌가.
이제 그러함을 발판으로 한국의 기업들이 세계 기업들을 젖히고 선두를 달려가는 모습은 굳이 런던 거리를 수 놓는 화려한 전광판들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것쯤은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다.

비록 부모의 학벌이 부족하거나 부자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는 섬겨야 할 분이고 모셔야 할 분이라는 것은 인간의 도리이다.
조국의 이름이 대기업 간판보다 덜하더라도 우리네 필부들이야 조국이 먼저 아닌가.
‘무슨 소리, 전세계를 무대로 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기업들이 어디 한 둘인가? 그러한 생각은 고리짝적 사고라네. 아무리 조국이 거시기 하더라도 기업들이 싸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바에는 떠 벌일 필요가 없지.’
이런 말 하는 분내들 심정이야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한 가지에서 나고서도 서로 다른 열매를 맺을까 저어하는 까닭이다. 아직도 철이 없어 그런지 돈 냄새 보다는 사람 냄새가 그립다.
내가 후원하지 않아서 굳이 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행사에 한인회 관계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것도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다. 한국에서의 세계 한인회장 모임도 중요하겠으나 민간 차원에서 기획된 이와 같은 행사에 한인을 대표한다는 한인회장이 축하해 주지 않으면 누가 축하하리오.

이제 축제도 끝났다. 주최측이 떠안아야 할 설거지만이 산더미처럼 남아있다. 주최 이번 축제에 고무된 런던 시에서 한국의 ‘단오행사’를 공식 여름 맞이 정기 행사로 결정하는 날 케케묵은 감정들을 털어버리고 우리 모두 주최자가 되어 세계손님들을 맞을 일이다.

재영한인의 한 사람으로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참여해준 모든 분들께 넙죽 큰 절을 올린다.
<한인신문 편집장 박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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