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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9 01:23
영국의 박물관 및 미술 기행 74/ 내셔날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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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얀 반 야이크의 아르놀피니(The Betrothal of the Arnolfini; 1434)부부 2. 벨라스케스( Diego Velazquez 1599-1660) '시녀들' (Las Meninas 1656) 3. 벨라스케스의 비너스(the Rokeby Venus 1647-51) 4. 고야 (The Count of Foridabablanca 1783) 미술작품을 바로 보기 6 새로운 미술의 눈을 열어 준 거인‘고야’4 고야의 삶, 6가지 만남의 신비, 사람은 일생 동안 6가지의 만남을 경험할 수 있다. 고야(Goya)가 위대한 것은 그를 만나면 보통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의 예술을 통하여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일생 동안 6가지의 만남을 경험할 수 있다. 첫 번째 사람은 태어나 사람을 만나고 경험한다. 두 번째로 사람은 눈이 보이는 가시적 세계의 신비에 눈을 뜨고 세 번째로 사람은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경험하고 네 번째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추구하며 자신과의 만남의 과정을 경험한다. 다섯 번째로 사람은 현실과 이상, 모든 차이 혹은 다름을 경험하며 사회 현상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되며 사물과 세상의 내면의 세계를 경험한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마지막으로 인간의 심연(深淵)과 자연의 신비를 연결하는 고리인 신화적 세계를 경험하고 여기서 신화적 환타지와 삶의 고리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깨닫게 된다. 이렇게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6가지의 만남을 통하여 자기의 세계를 정립하고 삶을 마감한다. 그러나 오늘 날 보통 사람들은 일생 동안 세 번째와 네 번째의 만남 만을 경험할 뿐이다. 이것도 20세기 후반에 상식이 서고 지식이 널리 보급되면서 일반인의 지적 능력이 확대된 후 가능해졌을 뿐이다. 4백여 년 전에는 카라바조 정도가 4번째의 단계를 자기 예술 세계로 표현하고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3번 째 단계, 라파엘로는 2번째 단계 정도의 머무른 세계 안의 경험을 자기 예술 안에 수용할 수 있었다. 미술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의 본질을 성찰할 수 있고 인간에 대해서 명상을 할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예술가들이 자기의 깨달음과 발견으로 미술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20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대부분의 예술가들 중 몇몇 대가들만이 3번 째 단계의 정신 세계만을 경험하고 자기 작품에 표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두 번째 만남의 단계에 머무르고 두 번째 정신적 영역과 경험 만을 겨우 표현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1746년에 스페인에서 태어난 고야가 세계 미술사에서 유일하게 6번 째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그의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필자가 최근에 그의 예술세계를 추적하면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다. 삶과 환타지를 연결하는 신비의 고리에 도전한 고야 삶과 연결된 환타지를 묶고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신화체계'이다. 여기서 모든 신화가 태어나고 그리고 이 신화들은 각각 종교적 체계로 발전된다. 고야는 이 신화적 환타지 세계를 자신의 안에서 경험하고 이것을 자기 작품에 표현했다. 고야는 어떻게 6가지의 만남을 경험하고 그것을 자기 작품에 표현했을까? 도대체 어떻게 그는 환타지의 세계에 이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삶 속에서 둘러본다면 유일하게 그림으로 만났던 스승이 거의 네 새대 이전에 태어난 벨라스케스( Diego Velazquez 1599-1660)였을 뿐이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는 표현적으로 띄어난 재능 있는 예술가였다. 그의 작품 세계에선 세 번째인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경험한 흔적도 전혀 보이지 않는 일종의 훌륭한 장인이었을 뿐이다. 어떻게 고야는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의 만남을 경험하고 넘어서서 여섯 번째의 경험을 하게 되었을까? 더욱 그는 학문에 깊이 파고든 것도 아니고 인문학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에 몇 번의 변화를 겪으며 보여주는 미술 세계는 놀랍게도 이 여섯 번째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 이런 삶의 마지막까지 무엇이 이끌어 준 것일까?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이것이 나의 궁금증을 더욱 유발시켰다. 그림 속의 거울이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것이 바로 고야의 신비성이고 위대성이다. 고야가 보여준 두 번째의 만남의 과정(-첫 번째 사람은 태어나 사람을 만나고 경험한다. 두 번째로 사람은 눈이 보이는 가시적 세계를 만난다-) 까지는 이미 지난 글로서 설명을 대신하고 지난 몇 주간 그의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고야가 세 번째의 경험을 한 것을 엿볼 수 있는 증거물로 나는 그의 거울 이미지 차용을 작품 속에서 어떻게 보여 주고 있는가를 설명하겠다. 이 거울의 이미지를 고야는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는 도구로 차용한다. 우선 15세기의 얀 반 다이크(Jan van Eyke) 에서 시작된 거울 이미지가 어떻게 고야에게 이르게 되었는가 살펴보자. 얀 반 야이크의 아르놀피니(The Betrothal of the Arnolfini; 1434)부부의 그림 가운데 거울이 놓여져 있다 이 거울은 화면의 공간을 확장시키고 화면의 깊이를 더 하게 하는 표현적 효과로 이용된다. 거울에 묘사된 두 사람의 모습과 앞 면에 있는 그림 속에 묘사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보인다. 다시 벨라스케스는 얀 반 다이크의 그림 속에 있는 거울을 그대로 자기의 그림 '시녀들' (Las Meninas 1656) 속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얀 반 야이크와 같이 공주의 머리 위, 그림의 중앙에 사각형의 거울을 배치하고 앞에 포즈를 취하고 서 있는 왕과 왕비를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좌측에 그려 넣었다. 역시 벨라스케스의 비너스(the Rokeby Venus 1647-51) 그림에서도 얀 반 야이크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중앙에 거울을 배치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선 거울을 다소 다른 방식으로 수용한다. 중간에 거울로 또 다른 시점을 확보해 그림을 3중 적 시점을 주고 두 번째로는 인물의 신비성을 주는 효과로 주기 위한 방법으로 시도를 한다. 이 같은 벨라스케스의 방식을 수용하여 고야는 다음과 같이 자기의 그림(The Count of Foridabablanca 1783) 속에서 표현한다. 공작이 가운데 등장하고 뒷면에 희화적인 초상화가 걸려있고 앞에는 고야가 거울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고야는 윗 그림과 같은 거울의 일반적 표현 효과 이미지에서 한 걸음 너 나아가 인간의 성찰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에 이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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