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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8 17:25
영화에서의 내러티브(서사구조), 필수인가, 선택인가?
조회 수 1212 추천 수 0 댓글 0
오늘은 다소 딱딱하고 재미없는 주제가 될 지도 모르겠다. 이전부터 이와 같은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한 번쯤은 이 공간을 통해 필자가 갖고 있는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왔었기에. 사람들은 흔히 재미있는 영화는 재미있는 줄거리를 가진 영화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화려한 볼거리나 아니면 매력적인 주인공들 또한 영화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들로 볼 수 있지만, 결국은 그러한 볼거리나 주연 배우도 재미있는 줄거리에 스며들지 못할 경우 그 영화는 재미없는 영화로 판명되곤 한다. 여기서 영화의 줄거리를 얘기할 때 단순히 소재나 주제만을 얘기한다기 보다는 영화의 내러티브, 즉 서사구조가 영화의 줄거리를 지탱하는 힘이라 볼 수 있다. 내러티브라는 단어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저 단순히 인과 관계, 기승전결 정도의 개념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관객의 이성, 감정의 흐름과 그 맥을 같이한다. 가령 주인공의 화면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면 이에 대한 내러티브가 분명해야만 눈물을 흘리는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이 될 것이다. 송해성 감독이 연출하고 최민식이 주연한 ‘파이란’의 경우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인 강재가 바닷가에서 파이란이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읽으며 서럽게 우는 장면 같은 경우, 영화의 내러티브가 워낙 탄탄하기에 관객들은 주인공 강재가 흘리는 눈물을 가슴 깊이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존 트라볼타가 주연한 ‘베이직’의 경우 후반부의 반전이 그다지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하는 것은 본 영화가 반전효과만을 지나치게 노린 나머지 반전을 뒷받침하는 내러티브가 부실한 까닭에 관객들은 그저 ‘아, 그랬구나’ 내지는 ‘그게 뭐야’ 정도의 시큰둥한 반응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러티브가 튼튼하고, 부실한 정도가 영화에 분명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잠시 다른 이야기로 가 보자. 얼마 전 논란이 되었던 심형래 감독의 ‘디 워’와 관련하여 MBC의 ‘100분 토론’에 출연한 진중권 교수의 발언 중 필자가 유일하게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이 내러티브, 서사구조에 대한 진교수의 의견이었다. 진교수의 의견은 ‘디 워’는 내러티브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오래 전 이 부분을 강조했음을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발언으로 덧붙였다. 또 가장 최근에는 이명세 감독의 신작 ‘M’을 놓고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것과는 달리 국내 흥행실적이나 비평이 기대했던 것에 훨씬 못 미친다는 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이 내러티브였다. 즉, 이명세 감독의 고질적인 단점으로 오랫동안 지적되어온 빈약한 내러티브 내지는 내러티브의 부재로 인해 ‘M’이 성공적인 작품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의견은 결국 ‘영화에서의 내러티브는 필수’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럴까? 일단, 필자의 의견은 ‘그렇지 않다’이다. 진교수의 아리스토텔레스 발언은 분명 당시에는 존재했을 리 없는 영화가 아닌 희곡을 겨냥해서 전해진 내용일 것이다. 그리고 희곡에서는 내러티브가 반드시 필수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100% 동의한다. 그러나, 영화와 희곡은 전혀 다른 장르이다. 희곡은 문자만으로 관객과 소통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내러티브만이 영화가 관객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라면 굳이 영화가 소설, 희곡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저 소설을, 희곡을 화면에 옮긴 것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영화는 다양한 통로를 통해 관객과 소통한다. 그것은 영상 그 자체가 전달하는 시각적 소통일 수도 있고, 소리, 음악을 통한 청각적 소통일 수도 있으며, 간혹 내러티브만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을 의도한 영화도 있으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감상하는 오락영화의 경우 이 모든 것들이 조금씩 혼합되어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내러티브가 부재한 상태에서 영상만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영화 또한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내러티브는 영화의 필수조건이 아닌 선택조건이라는 필자의 의견이다. 심형래 감독의 ‘디 워’는 화려한 볼거리를 통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짜릿함으로 관객과 소통하려는 작품이며, 이명세 감독의 ‘M’ 또한 영상을 통한 시각적 소통을 의도한 작품이라면 굳이 이러한 작품들을 논할 때 내러티브의 빈약 혹은 내러티브의 부재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어디까지나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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