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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들과 관객들이 인정하는 이 시대 최고의 배우임에도 이상하게 아카데미상과 인연이 닿지 않는 배우들이 몇 명 있는데, 오늘 소개하는 존 말코비치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수 많은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보인 이 신들린 듯한 배우는 골든 글로브나 에미상을 수상한 적은 있으나, 아카데미와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내공이 넘치는 연기를 선보이는 존 말코비치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일반 배우들이 지니지 않은 그 어떤 포스(Force)가 강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그를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액션 대작 ‘콘 에서’에서 정신병자인 사이러스 역을 맡아 선보인 섬뜩한 악역 연기, 혹은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사용한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의 존 말코비치로 기억하지만, 그의 다양한 연기세계를 살펴보면 정말 이 시대 몇 없는 진정한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1953년 미국의 일리노이주 벤튼에서 태어난 존 말코비치(이하 존)는 세계적인 시카고의 극단 Steven Wolf Theater Company에서 연극배우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연극을 통해 연기력을 다진 존은 1984년 롤랑 조페 감독의 전쟁 서사극 ‘킬링 필드’를 통해 영화계로 진입한다. 이미 영화계로 진입하기 전부터 탄탄한 연기력을 쌓아왔던 덕에 1985년도에는 주연급으로 두 작품이나 출연하게 된다. 아더 밀러의 유명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영화화한 작품에서 더스틴 호프만과 공연하는 한편, 그리스 내전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 ‘엘레니’에서 주연으로 출연한다. 비록 영화계에서는 신인이나 다를 바 없었지만, 감독들은 존의 탄탄한 연기력과 존에게서 뿜어져나오는 카리스마를 일찌감치 발견, 타 배우들보다 빠른 성장을 해 나간다.

1987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태양의 제국’에서 주인공 소년 짐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베이시 역을 맡아 따뜻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리고, 1988년 드디어 존의 진가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위험한 관계’에 출연한다. 18세기 프랑스 사교계를 배경으로, 귀족들의 성적 욕망과 타락을 그려낸 본 작품에서 존은 여성을 유혹하는 난봉꾼 발몽 역을 맡아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다. 본 작품의 원작 소설이 워낙 유명한 까닭에 본 작품 외에도 ‘발몽’, 현대물인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이 같은 원작을 영화화 했으며, 우리영화 ‘스캔들’ 또한 본 원작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이며, 평론가들은 존의 발몽을 가장 원작에 가까운 발몽으로 인정하고 있다.

1993년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대통령 경호원으로 출연한 ‘사선에서’를 통해 악역 연기를 선보인다. 사실, 존의 인상에서 풍겨져나오는 분위기는 악역에 매우 적합한 그것이었던 바, 존은 본 작품에서 단순한 악당을 넘어서 긴장감 넘치는 심리 연기를 선보이며, 그만의 악역 연기를 펼쳤다. ‘사선에서’를 통해 헐리우드 오락 영화에서 수 많은 러브콜을 받지만, 1995년 존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빔 벤더스, 두 거장 감독들이 연출한 예술영화에 가까운 ‘구름 저편에’에서 주연을 맡아 완전히 다른 연기세계를 선보였다.

1997년에는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이 연출한 ‘여인의 초상’에서 여주인공 니콜 키드만과 환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으며, ‘위험한 관계’에서 인연을 맺은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메리 라일리’에서 지킬박사와 하이드 역을 맡아 역시 폭 넓은 연기를 펼쳐보였다. 그리고, 1997년에는 영화 사상 최고의 악역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콘 에어’의 사이러스 역을 통해 섬뜩한 연기를 선보이며, 역시 평범하지 않은 악역 연기의 대가임을 입증했다.

2000년도에는 자신의 캐릭터 자체를 영화적 모티브로 사용한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기발한 감독데뷔작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존 말코비치 자신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2003년에는 ‘미스터 빈’ 르완 앳킨슨과 ‘자니 잉글리쉬’에 출연하여 진지한 표정으로 코믹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2002년에는 ‘댄서 업스테어’라는 진지한 작품으로 감독 데뷔를 하기도 했다.

워낙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다양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온 존 말코비치는 비록 흥행을 몰고 다니는 톱스타나, 아카데미 연기상의 단골 후보로 오르는 공식 연기파 배우도 아니지만, 매 작품마다 관객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각인되는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는 이 시대 최고의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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