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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같이 보낸 96시간  ( 13차 가을 나들이 1)

                                                                           

사 계절 모두 나름대로 아름다운 삼천리 강산이지만 그 중 대부분의 한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계절을 꼽으라면 아마 매력이 넘치는 가을이 아닌가 한다. 가을은 높고 푸른 하늘아래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치장한 산자락과 국화 향이 그윽한 계절이다. 한국의 가을은 또한 감의 계절이다. 여러 종류의 과일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유럽에서는 흔하지 않은 감들이 상점마다 수북하게 쌓여있다. 길가 어디에서도 주황색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감나무들을 보면서 모처럼 모국을 찾아온 해외동포들에게는 어머니 품 속 같은 조국에 와 있는 것을 실감하게 되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10 25일 오후 1 30, 이 좋은 계절에 모국방문길에 독일에서 오신 파독 광부 간호사와 그 가족들, 이웃들 그리고 한국에 계신 파독 간호사 여섯 분이 함께하는 우리 일행 40명은 서초구민회관 앞에 모였다. 먼저 오신 분들은 나중에 오시는 분들을 반가이 맞아줬고 몇 분을 빼고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인데 몸은 늙었어도 마음만은 모두 청춘이어서 마치 소풍을 떠나는 어린이들처럼 들떠있었다.

인원 점검이 있은 후 출발 예정시간 보다 조금 늦게 우리 일행을 태운 경북관광버스는 서울 도심을 빠져나가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달리는 차창으로 스쳐가는 들녘에는 알곡을 거둬들이고 남아있는 짚을 둥글게 돌돌 말아놓은 하얀 짚단뭉치들이 빈 들녘을 지키고 있었다. 불과 몇 십 년 전에는 땔감으로 사용하던 짚단이었는데 지금은 짐승들 사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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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로 가는 길에 여주에 있는 명성황후 생가유적지에 들렸다. 경복궁내 건창궁에서 45세의 아까운 나이에 요절한 명성황후께서는 일본자객으로부터 무참히 시해되신 비운의 황후이시다. 지금까지 명성황후에 대해 사치가 심하고 시아버지인 대원군과 정치적 대립을 일삼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춰졌지만 철저하게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명성황후는 총명하고 지혜로우시며 뛰어난 외교력의 소유자이셨다고 한다. 16세에 황후에 올라 대궐 안의 수많은 서적들을 탐독하면서 전통과 현대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쌓았고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10년 섭정이 끝나자 고종 임금을 내조하면서 본격적인 조선왕조의 근대화 작업에 착수하였다. 명성황후 생가는 1851년에 태어나신 명성황후가 8세까지 살던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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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 구미시에 도착하니 구미 시장님과 국제협력과장님이 보리굴비정식을 차려 놓고

여기 오신 파독 광부 간호사분들은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경제 발전의 초석을 놓으신 분들이라며 우리일행을 환영해 주셨다. 여자가 비스듬히 누워 있는 형상의 금오산은 그 높이가 976 미터라고 한다. 구미시는 고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곳이며 산업화로 경제발전을 이룬 인구 43만 명의 도시이다. 보리굴비는 독일에서는 보도 듣지도 못한 음식이며 한국에서도 쉽게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라고 한다. 보리굴비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나오니 금오산 자락에 상현달이 걸려 그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경치 좋은 금호산 호텔에 여행 첫 날 여장을 풀었다.

 

이튿날 쾌적한 호텔에서 피로를 푼 우리는 박정희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서 나갔다. 10시 조금 넘은 이른 시간인데도 생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벌써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고 길 옆 나무에는 36주기 박정희대통령 추도라고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넓지 않은 마당에 들어서니 지금은 농촌에서도 볼 수 없는 이엉을 새로 얹은 노란 초가지붕이 보이고 여러 사람들이 보낸 추모 화환이 벽을 따라 즐비하게 세워져 있었다. 그 중에는 하회장님이 미리 준비한, 리본에 파독 광부 간호사라고 적힌 흰색 국화꽃 화환도 서 있었다. 그 옆에는 박정희대통령과 한복을 입은 육영수영부인의 모형이 세워져 있었다. 추모제가 열리고 있는 방은 아주 작아서 도포와 갓을 쓰고 제례를 모시는 분들만 들어가 있고 마당에 모인 분들은 밖에 설치된 화면을 통하여 제례과정을 지켜 보았다.



마당에서 거행된 추도식에는 제일 먼저 의관을 정제한 전병억 생가보존회 이사장이 조국근대화를 선도하신 위대한 민족 지도자 박정희대통령을 추모하고 당신의 크신 뜻을 받들어 오늘에 실천하기를 다짐 하고자 이곳에 모였다고 하였다. 또한 명복을 누리시는 하늘나라의 큰 별이 되시어 이 나라 겨레를 지켜주시고 앞길을 비춰 주십사라고 축원하였다. 이어서 남유진 구미시장이 나와 그립고 그리운 박정희대통령님의 영전에 43만 구미시민의 마음을 모아 추모의 정을 올린다는 추도사가 있었으며 김태환 국회의원은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하면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세계 속에 추앙 받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하였으며 한없는 존경의 마음과 깊은 그리움을 담아 국화꽃 한 송이 올립니다.” 라는 김익수 구미시의회 의장의 추도사가 있었다. 마지막 순서로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 입은 여자분이 나와 진혼시로 김소월의 초혼을 낭송하였다. 제례를 올린 방 입구에는 하얀 국화꽃이 수북이 놓여 있었다. 영전에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헌화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우리는 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아침부터 서둘러서 갔지만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긴 시간 동안 추도식을 지켜 보면서 외람되지만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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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그 당시, 가난에서 벗어나 근대화로 나아가기 위하여 허례허식을 탈피하고 걸림돌이 되는 일을 시정하고자 박정희대통령께서는 앞장서신 분이시다. 박정희대통령께서는 경조사의 간편화를 위하여 가정의례준칙을 만들기까지 하셨다. 그런데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 날 일반 국민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옛 제례용어를 써가며 (물론 옆에 자막으로 설명이 곁들기는 했지만) 제례를 모셔야만 잘 모시는 일이 될까? 그 긴 시간을 할애하여 차라리 추도식에 오신 손님들이 한 분이라도 더 분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60년대, 그 당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빈국이었던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도와주려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대물림 해오던 가난에서 어떻게라도 벗어나고자 차관을 얻기 위하여 독일까지 오셨던 박정희대통령! 대통령의 신분으로 비행기까지 얻어 타시고 독일에 오셔서 광부 간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자손들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며 눈물을 흘리신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을 독일 교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추도식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숭고하신 업적을 기리며 모든 정성을 다하여 모시는 장면을 보면서 여기에 온 우리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또한 감회가 깊었다.   (글: 진경자)


*다음 주에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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