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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혜의 런던 아트 나우(London Art Now #3)

런던 아트씬의 새로운 거점,

이스트엔드(East End)의 First Thursday




파리의 몽마르뜨, 뉴욕의 소호와 첼시, 베를린의 타헬레스, 베이징의 따산즈, 그리고 런던의 이스트엔드. 이 지역들은 각 도시에서 이른바 가장 트렌디하고 개성있는 곳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이 지역들의 형성과정에서 놀랍도록 동일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근대미술과 함께 예술가들의 집단창작촌으로 가장 먼저 탄생한 것이 바로 몽마르뜨로 고흐, 모딜리아니, 피카소 등의 작가들이 함께 모여 예술혼을 불태우며 19세기 아방가르드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의 영광이 재현된 기념품을 사러 오는 관광객들만이 몽마르뜨 언덕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현대미술의 메카가 된 뉴욕의 경우도 놀랍도록 흡사하다. 뉴욕의 소호와 첼시 지역은 1960년대에 이후 버려진 공장 건물들을 작업실로 삼기 위해 예술가들이 몰려들었었다. 젊은 예술가들이 몰린 지역은 그들의 예술적 감각으로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기 시작했고, 이를 선망하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금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후 높아진 인기와 함께 하늘로 치솟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터줏대감들은 샤넬과 프라다 등 명품 상점들과 유명 레스토랑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물론 베를린과 베이징의 상황 역시 다를 바가 없다. 패턴을 정의하자면 이렇다.


낙후한 지역 – 예술가들의 유입 – 트렌디한 지역으로 변모 – 상업화 – 예술가들의 이탈


런던의 이스트엔드를 살펴보자. 런던은 크게 동쪽과 서쪽으로 나뉘어진다. 서쪽은 전통적으로 세련되고 화려한 문화시설들과 쇼핑가, 무엇보다 부유한 주거지가 밀집한 지역인 반면, 동쪽지역은 공장, 창고 등이 많은 낙후한 지역이며, 이민자들이 모여살고, 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해 런던 사람들조차 방문을 꺼려하는 지역이다. 이스트엔드의 이미지는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딱 그런 이미지이다. 방치된 듯한 칙칙한 건물들과 그 건물들 벽면을 제멋대로 가득채운 낙서화들. 쓰레기가 뒹구는 거리를 무심하게 지나치는 특이한 차림의 젊은이들.
 


20- 3.jpg


이스트엔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벽화



화이트 채플, 베스널 그린 등을 포함하는 이스트엔드가 런던 아트씬의 새로운 거점이자, 런던에서 가장 트렌디한 지역으로 알려진 데에는 전편에 소개한 yBa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데미언 허스트, 길버트 앤 조지, 안토니 곰리 등 영국 최고의 작가들을 거느린 세계적인 갤러리인 화이트큐브가 이 지역에 문을 열었을 2000년은 이스트엔드 전성기의 불씨가 되었고, 그 이후 이스트엔드 지역의 유일한 미술관인 화이트채플이 26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2년간의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거친 재개관은 새로운 런던 예술지구 탄생을 절정으로 이끌었다.

 


20- 4.jpg


화이트채플 갤러리 전경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시작한 것은 1960년대 길버트 앤 조지가 임대료가 싼 이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이불 같은 패브릭 위에 천조각을 덧대어 수놓는 아플리케 작업을 주로 하는 트레이시 에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을 하는 사라 루카스, 브리티쉬 팝아트를 표방하는 개리 흄, 사치의 yBa 첫 콜렉션의 주인공인 맷 콜리셔 등 yBa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1980-90년대에 걸쳐 본격적으로 이 지역으로 옮겨와 거대한 집단창작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스트엔드가 단순히 젊은 예술가들의 집단창작촌으로서의 기능만 했다면 영국 미술의 르네상스로도 표현되는 yBa와 같은 거대 담론을 만들어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매우 독특한 형태의 전위적인 움직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갤러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선보이기 위해 만든 대안공간이었다. 큐빗 갤러리나 시티 레이싱, 푸푸 갤러리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데 이 공간들은 백색공간의 아우라를 상징하는 상업화랑과는 달리, 제대로 된 간판도 없는 수상한 건물에 페인트칠도 제대로 되지 않은 투박한 전시 공간에서 영국 미술에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는 작품들을 쏟아낼 수 있었다.

 


20- 2.jpg


리빙턴 플레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Rock against Raicism 전시 모습




데미안 허스트나 채프먼 형제도 이스트엔드를 거치지 않았다면 사치 같은 컬렉터의 눈에 띄지 도, 웨스트엔드의 저명한 화랑의 문턱을 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이스트엔드는 단순히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동네만이 아니었다. 패기와 상상으로 가득찬 영국 예술가들의 파라다이스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yBa의 근거지라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미술애호가들에게 이스트엔드는 메이페어의 고급 갤러리들에 비해 쉽게 발길이 가는 곳은 아니다. 그런 애호가들을 흡수하고 이스트엔드의 지역발전을 위해 마련된 이벤트를 통해 이 지역을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First Thursday’는 말 그대로 매주 첫 번째 목요일 화이트채플 갤러리를 중심으로 이스트엔드에 위치한 150여여 개의 갤러리가 함께 진행하는 이벤트이다. 갤러리들은 기본적으로 밤 9시까지 전시공간을 오픈하고 아티스트 토크나 워크샵등을 마련하기도 한다. First Thursday 이벤트를 가장 효과적으로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화이트채플 갤러리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주요 전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한 갤러리에서 제공하는 버스 투어 티켓을 구매하여 이스트엔드 지역 일대를 둘러보며 런던 아트씬 최전선의 흐름을 파악해 보는 것도 추천할 만 하다.



 20- 1.jpg


 First Thursday 이벤트의 자세한 사항은 http://www.whitechapelgallery.org/first-thursdays/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둘러볼 만한 전시
Facing History : Contemporary Portraiture – V&A  2016. 1. 2 – 4. 24
John Hoyland : Power Stations – Newport Street Gallery  2016. 1. 2 – 4. 3
Kara Worker : Norma – Victoria Miro Mayfair  2016. 1. 2 – 1. 16
                     Artist and empire – Tate Britain  2016. 1. 2 – 4. 10
                     The World goes pop – Tate modern  2016. 1. 2 – 1. 24



다음호에서는 영국 미술 최고의 스타 데미안 허스트가 새로 오픈한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와 함께 그가 아티스트를 넘어 기획자로의 포부를 짚어보고자 한다.



오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이화여대 미술학부 졸업
- 이화여대대학원 조형예술학 전공
- 큐레이터, 아트 컨설턴트, 미술기자,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
- 이메일 iamjeehy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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