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루트Ma Loute >
브뤼노 뒤몽Bruno Dumont, 프랑스 개봉 2016년 5월 11일
브뤼노 뒤몽식 인간희극의 향연
너무나 처절하고 진지하게 인간의 선악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감독 브뤼노 뒤몽의 신작 <마 루트>는 코미디라는 쟝르를 입고 새로운 시도를 맞이한다. 세상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가면 비극이라는 챨리 채플린의 말을 브뤼노 뒤몽은 자신의 방식으로 승화시켰다.
<마 루트>는 1910년대, 프랑스 북부 깔레 해변가에서 벌어지는 일군의 인간형상들의 난상을 그리고 있다. 벨 오포크라 일컬어지고 있는 이 시기는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유럽의 번성과 팽창을 의미한다. 급속한 산업 발전과 함께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적 분위기는 문화번성이라는 효과를 누리기도 했지만 그 뒤에는 식민지를 기반으로 한 제국주의의 전성기라는 양면이 존재한다. <마 루트>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과 함께한다. 산업화와 함께 자본을 축적한(듯 보이는) 도시 부르조아 반 페데겜 가족과 홍합을 캐며 극단적 가난함을 살아가는 어부 브뤼포 가족, 두 명의 경찰, 그리고 여기에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사랑에 빠지는 어부의 아들 마루트와 부르주아의 딸(?) 빌리. 시대를 대변하는 원형적 세 그룹으로 나뉜 인물군상들은 그들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영벌 받은 영혼의 혼란을 벗어나지 못한 듯 하다(뒤몽 영화의 고집스러운 화두 중의 하나다).
<마 루트>는 언뜻 보기에 전작들과의 단절을 보여주는 듯한 착각에서 오는 당혹감은 잠시, 시간과 함께 브뤼노 뒤몽의 독보적 실험정신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영화는 반 페데겜 가족의 여름휴가를 오면서 시작된다. 하나같이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은 해변가에서 일어나는 실종사건 수사와 함께 얽히고 설키면서 진행된다. 부르조아, 프롤레타리아, 경찰, 종교, 식인, 근친상간, 양성동체…. 뒤몽감독은 이 모든 소재들의 부딪힘을 우화적 소동처럼 풀어내지만 그 기저에는 그가 시도해 온 인간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파브리스 루치니, 줄리엣 비노쉬,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들과 (뒤몽감독이 선호해 왔던) 비전문배우들의 어우러짐은 부르조아의 허식과 척박한 프롤레타리아의 삶의 대비를 보여주는 식의 도식적 나눔이 진부하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뒤몽 감독의 연출력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이야기는 선악 대비라는 상투성에 들이댄 도덕적 잣대와는 아주 멀리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속물적 부르주아에 대한 풍자코드로 읽힐 수 있는 반 페테겜(루치니/ 테데스키) 부부와 비노쉬의 연극적 연기방식은 관객과 영화와의 거리두기를 시도한다. 감정의 절제와 폭발(비노쉬의 히스테릭한 연기는 압권이다)이라는 극단적 오감은 과장되고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어부가족 브뤼포의 모습은 마치 잔혹동화를 보는 듯하다. 거친 회색톤의 원시적이고 투박한 그들의 삶은 아름다운 노르망디의 바닷가 풍경과 대비되면서도 이질적이지 않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또한 부자연스럽고 과도한 배우들의 연기(물론 감독의 의도다) 자신들의 생활을 그대로 연기(?)하는 브뤼포가족의 모습에서 척박한 노동자의 삶만이 있지는 않다. 가난과 기아에 시달릴 것 같은 이들의 본 모습은 인육을 먹는 식인종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듯, 경직된 얼굴에도 불구하고 순박의 상징이 될 수도 있는 어부 가족의 모습 뒤에는 식인종이라는 야만성이 숨어 있다. 계급에서 비롯된 모순의 대립이 아닌 인간본질이 가진 다양한 모순을 들여다보는 <마 루트>는 그래서 '평등'하다. 특히 마루트와 사랑에 빠지는, 남녀라는 성 구분이 모호한 빌리라는 인물은 구분짓기의 경계를 허문다. 불가사의한 그(녀)의 정체는 우리가 가진 확신을 풀어헤친다. 금기와 편견을 넘어서는 빌리의 행보는 통속을 거부하는 위반행위다. 인물들의 전형성을 뒤엎는 기행적 행태는 또 하나의 위반행위로 브뤼노 뒤몽식의 코미디가 완성된다.
홀쭉이와 뚱뚱이 콤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헐리우드 슬랩스틱코메디 로렐과 하디를 연상시키는 두 경찰의 엉뚱하고 모자란 듯한 행위들이 희극성을 끌어올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마 루트>는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의 액션에만 기댄 코메디를 벗어나 깔레라는 (자연)공간 속에 인간의 '몸'이 어우러지게 하는 브뤼노 뒤몽 영화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브륄레스크, 고어, 멜로드라마, 판타스틱, 그로테스크, 수사물의 쟝르를 버무려 놓은 <마 루트>는 초현실적인 동시에 사실적이라는 언어도단적 희열을 맛 볼 수 있다.
<사진출처: 알로씨네>
프랑스 유로저널 전은정 기자 Eurojournal18@ek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