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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프랑스이야기
2016.07.24 22:34
그림이 있는 여행 - 고갱과 함께 (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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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여행 - 고갱과 함께 ( 6 ) 먼저 타히티에서 고갱은 인류학자로 마오리의 문화와 예배의식에 큰 관심을 갖는다. 그 의식들은 그의 작품들에 녹아 들어 갔다. 고갱은 지역의 아름다움과 느릿 느릿한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는 파라다이스와 같은 오세아니아의 원시를 그렸다. 고갱은 자유롭게 그곳에 적응하였다. 원시적인 모습의 모든 풍경과 풍물을, 자유로운 색깔의 선택으로 서양화의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그려냈다. "사탄의 언어들"에 나타나는 보라빛 땅과 백합화 "망고를 든 여인"의 뒷 배경의 노란 벽은 실제의 시각에 비친 색깔은 아니다. 그러나 이 먼 곳에 떨어진 작은 섬은 잔인하게도 그가 두고 온 문명을 생각나게 하였다. "흉내내기, 풍자화로 보이는 괴기스럼움, 유행이나 도덕의 모방, 온갖 악한 것들과 우스꽝스러운 개화된 자들…. 내가 도망나온 바로 그것을 이곳에서 발견하기 위하여 그 먼 길을 왔다니." - 노아 노아 Noa-Noa 에서 발췌 - 그가 남태평양과 마오리 문화를 택한 것은 워낙 "원초적"인 자신의 기질도 있었지만 유럽에서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예술적 영감과 주제를 색다른 문명에서 찾아 새로운 형태의 회화로 화단에 인정 받고 정상에 서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를 아는 예술가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그의 천재성이 일찍이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일반 대중의 기호나 작품의 상품성에서 그는 실패하고 언제나 빚에 쪼들리며 의식주의 해결이 어려웠다 서머셋 모옴의 소설 "달과 6펜스"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고갱은 그의 예술과 광기의 극치를 달로 그려주었고 세속적인 성공과 작품을 팔아 입신하고자 하는 감정은 6펜스로 적어나갔다. 고갱이 추구하던 예술의 세계는 달이었고 그가 작품을 팔아서 되찾아야 할 아내와 이이들을 비롯한 가정은 6펜스가 필요하였다. 그의 그림이 안 팔리면 점점 더 오기가 생겨났다. 스스로 더욱 고집스러워지고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매력에 빠져드는 나르시스를 자기 안에서 발견한다.
‘아레아레아, 기쁨’ 1892, 캔버스에 유채, 75 x 94 cm 타히티의 설화를 통해 고갱은 보는 사람의 상상력이 흡사 음악처럼 색깔로 그 진동을 표현하고 상상력이 원초적인 감각이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작품을 그려 나갔다. 고갱은 있는 실제적인 세계를 색이나 선으로 모사하지 않고, 그 선과 색의 배열로 음악의 악보를 만들어 가듯이 작품을 그려 나갔다. 왼쪽 위에 부드럽고 연한 색을 발라 표현한 신상은 달의 여신 히나를 그렸다. 중앙에 위치한 인물이 연주하고 있는 피리 소리는 타히티에 머물면서 고갱이 느꼈던 토속적인 신들에 대한 예배로 인간과 신의 교감을 그려내고 있다. 고갱은 티치아노, 에두아르 마네같은 화가들이 그려 왔던 인물이 있는 풍경화를 자신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딸의 죽음과 세상의 종말 1892년 타히티 체류 중 딸 알린느에게 쓴 노트의 글은 철학적이고 시적이며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비장함이라 함은 이 글은 딸 아이가 1897년 19살에 병으로 죽을 때까지 전달되지도 않았고 읽혀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다. 사랑하는 외동딸 알린느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하느님을 부정하면서 아내에게 쓴 글도 비장하다. "막 내 딸을 잃었다. 더 이상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 내 눈물은 살아 있는 꽃들이 되었다…." "내 딸 알린느의 죽음의 소식에 나는 모든 것에 회의한다. 나는 웃었다. 도덕, 작업, 용기, 지혜 이 모든 것이 다 어디 소용이 되는가….오늘 나는 알린의 죽음의 고통을 통감한다…."
영혼이 지켜본다 1892 캔버스 유화, 72.4 x 92.4 cm, 올브라이트 녹스 아트갤러리 노오란 이불 위에 검은 피부의 여인이 등을 보이고 돌아누워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검은 두건을 쓴 인물이 기둥에 등을 대고 서 있다. 그녀와 죽음의 사신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각자 시선은 달리하고 있다. 검은 두건이 달린 옷을 걸친 사신 쪽으로 침대 자리는 비어있다. 테우라의 몸은 침대 가장자리에놓여있고 다리는 침대에서 내려올 준비까지 하고 있다. 이불보의 노란 색깔과 뒷 배경 벽의 보라색의 공간은 색깔의 대비에 의한 동화의 세계로 이끌어 준다. 이국적이며 몽환적인 이런 색감은 이곳이 유럽이나 프랑스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명백하게 하여준다. 고갱은 말다. "난 새벽 1시쯤에 돌아왔다. 테우라는 침대에 누워 죽은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동공에는 공포의 감정이 가득했고 나는 잠시 이 낯설은 장면에 어리둥절했다…. 난 그렇게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난 그 순간을 깰 수 없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그곳에 전해 내려오는 마법사나 악귀처럼 나를 잡고 있었는지 모른다." (Eisenman, p. 330) 일상 생활에 영의 세계가 혼재하며 살아가는 원시적인 삶의 한 단편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망고를 들고 있는 여인 1893 캔버스에 유화 The Hermitage, St. Petersburg 한 여인이 망고를 들고 어디로 가고 있다. 순수한 타히티 여인과 망고는 고갱 그림에서 핵심을 이루는 소재다. 타이티 기행문 “노아 노아” 1893년 9월 프랑스로 돌아와서는 타이티에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자신의 글로 쓰고 자신만의 색깔로 그려서 출판한 향기 라는 타이티 언어로 '노아 노아' Noa Noa (향기 Odorant)라는 제목의 삽화가 있는, 타히티와 그곳에서의 그림을 이해시키는의 소개서를 만든다. 아마 여행 문학의 정상에 선 대단한 걸작으로 뽑히지만 일반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시키지는 못했다.
- 타이티 기행문 노아노아의 한 페이지 - 1893년 11월 듀랑-류엘 화랑에서 고갱의 전시회가 열렸다. 타히티에서 그린 41점, 브르따뉴 3점, 그리고 나무 조각품을 전시하였지만 파리의 비평가들에게 오세아니아의 작품들이 호평을 얻지 못하였다. 1894년은 4월부터 11월까지 뽕따벤으로 간다. 19세기 말의 대서양 변의 작은 항구에 백 명 이상의 유럽 화가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의 현상이었다. 뽕따펜 파가 있다는 이야기는 예술가들에게 꾸준히 돌고 있는데 그 파의 대표가 없다는 것도 이상하다. 대중은 몰라도 예술가들은 폴 고갱이 전위부대의 사령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령관은 부관도 없이 항상 홀로 자기를 찾고 있었다. (다음주에 이어서 계속...) 사계절 옥탑방에서 테오 bonjourbib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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