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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17.01.23 01:18
낭만 그것을 찾아서 1
조회 수 2955 추천 수 0 댓글 0
낭만 그것을 찾아서 1 1. 몸을 솔직하게 바라본
자코메티 절대고독 속의 인간 존재,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는 평생 진실과 불가능을 향해 흔들림없이 도전했던 이탈리아계 혈통의 스위스인 조각가이자 미술가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1961 "나는 아름다운 그림이나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기 위해 창조하지 않는다. 예술은 단지 보는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1) “내가 보여주려는 건 바로 그것, 그 가벼움이다”
Walking Man I (Bronze), Alberto Giacometti,
1960 이것은 독일 코메르츠방크가 2010년 1월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 내놓아, 6500만파운드(약 1억430만달러, 약 1190억원)에 팔리면서, 당시 예술품 경매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던 자코메티의 ‘걷는 남자 1’ 이다. 그때까지 미술작품 최고 경매가는 2004년 뉴욕 경매에서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파이프를 든 소년’이 기록한 1억420만달러였다. 이것은 비현실적으로 길고 초췌한 인체를 통해 비인간화된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의 실존적 고독을 상징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 명성으로 스위스 100프랑 지폐에도 이 작품과 자코메티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부조리극의 대가라고
불리는 쟝 쥬네는 “걷고있는 사람은 실처럼 가느다랗다. 구부러진 그의 발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진정 땅위를 걷는다. 그러니까 지구위를 말이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것이나 사람을 단 한번이라도 경멸의 눈으로 바라 본적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물과 사람은 그 각각의 소중한 고동, 그 자체로 그에게 비추어졌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쟝 쥬네의 표현처럼,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정신적 위기 상황에서 좌절에 빠진 인간의 불안을 섬세한 통찰력으로
표현해낸 20세기 조형미술의
대가다.
Alberto
Giacometti 자코메티의 조각작품들은 깡마른 뼈대만 남은 듯한 사람의 모습이다. 말그대로 골격만
앙상한 인체다. 이것에 대해
그는 말했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죽은 사람보다도,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도 가볍다. 내가 보여주려는
건 바로 그것, 그 가벼움이다." 2차세계대전을 겪은 그는 전쟁의 상처로 신음하는 인간들을 보면서 인간의 가벼움에 절망했다. 그렇게 존재와 허무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극한에 이르도록 표현함으로써, 그는 전통적인 인체미학을 해체시켜버렸다. 인간의 한없는 외로움과 나약함을 드러낸 자코메티가 지적한대로
우리 인간들은 물질적인 겉치레로 둘러싸여있지만, 사실 속은 고독한 실체라고 할 수 있다. 겉에 뒤덮인 허위와 위선을 덜어내고 덜어냄으로써
그는 현대인의 내면 속의 고독과
불안을 오히려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 2) ‘여러 가지 감각이 뒤섞인 예술가’ 그의 아버지,
조반니 자코메티(Giovanni
Giacometti)도 유명한 후기 인상파 화가였다. 그는 스위스와 이탈리아 사이 국경 근처의 보르고노보(Borgonovo)
지방에서 태어나 역시 미술가가 된 형제들인 디에고와 브루노, 그리고
후에 취리히 대학의 법대 교수가 되는 친척 자카리아 자코메티와 함께 자랐다.
그는 제네바 예술학교를 졸업한 뒤, 파리로
가서 우귀스트 로댕의 조수였던 앙투앙 부르델의 밑에서1922년부터 4년 동안 조각과 데생을
배웠다.
당시 그는 미로, 에른스트, 피카소 등의 예술가들과 함께 공부했다.
이때부터 자코메티는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에 눈을 뜨게 되었고,
이러한 경험은 이후 그의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고대 미술품을 접하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1922년 파리로 건너와 생애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Giacometti in his Paris studio 1925년부터는 그는 독자적인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으로
실제 세계를 재현하려는 노력을 그만뒀다. 그는 1929년부터 1934년까지 초현실주의 그룹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1935년 그는 초현실주의자들과의
관계를 끊고, 다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조각에 몰두했다. 이때부터 자코메티는
사물의 실체를 자신이 보고 느낀 대로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10여 년이 흐른 후 자코메티는
마침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가 만든 조각 작품은
인간의 실존을 응축한 것처럼, 시선에 방해가 되는
것을 모두 없애버려 아주 가느다랗고 길게 표현되었다. 이때부터 자코메티
특유의 얇고 가느다란 조각상이 등장한다.
광장,
Alberto Giacometti, 1948-1949 이후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그는 조각계의 1인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1951년 상파울루 국제 전람회에서
조각상을 받았으며, 1966년에 세상을 떠났다.
Three Men
Walking, Alberto Giacometti, 1948-1949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치밀한 철학적 사색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길을 걸어간 그를 ‘여러 가지 감각이 뒤섞인 예술가’라고 평했다. 추상 미술과 표현주의가 각광받던 시절에 인간 형상을 주제로 구상적인 작품을 만들었던 그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Standing Woman I, Alberto
Giacometti, 1960 조각가로 널리 알려진 자코메티는 피카소, 마티스 등과 함께 20세기 미술사에서 조각과 페인팅, 드로잉에 이르는 폭넓은 예술영역을 섭렵한 예술가 중 한명이다. 특히 그의 평면작품들은 인간의 숭고함을 작은 그림 안에 일반화시키며, 자코메티적인 생각을 이론적 방식으로 귀결한다는 평을 얻고 있다.
작업실에 앉아 있는 디에고, Alberto Giacometti, , 1945
3) "꽃보다 더 쉽게 부서질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 화가들이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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