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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실과 날실
여기 특이한 모습의 조각상이 하나 있다. 신발에는 날개가 달렸고, 이마 위로는 곱슬머리가 무성하게 자라났으며, 뒤통수는 대머리인 젊은 남자의 모습을 한 조각상. 그는 한 손에 저울을 들었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있으며 한쪽 발뒤꿈치를 들고 있다. 어떤 이유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조각상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고 한다. “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쉽게 알아 볼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다시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손에 들고 있는 칼과 저울은
나를 만났을 때 신중한 판단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라는 뜻이니, 내 이름은 카이로스(Kairos), 바로 기회다.” 지나간 역사 속에서, 그리고 현재의 오늘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기회를 마주한다. 그러나 이 기회를 잡는 이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 지친 현실을 버텨내며 가뭄으로
인해 쩍 벌어진 논두렁 마냥 타는 목줄기에 시원한 목넘김의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힘을, 당신은 준비하셨습니까? 준비가 되어있다면 어떻게 그 힘을 기르셨습니까? 우리말에 [직조]라는 표현이 있다. 씨실과 날실을 서로 교차하도록 엮어서 직물을 생산하는 과정. 우리의 삶 또한 이 직조에 해당하여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힘이란 낱개의
것들을 서로 엮어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같은 지식을 가지고서
어떤 사람은 몇 가지 안 되는 물품으로 시골에 구멍가게를 오픈 하여, 가게에 들어온 손님에게 선택의
골치아픔을 덜어주는 호의를 베푸는 반면, 어떤 이는 자신이 공장 주인이
되어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이에 따른 이윤을 추구한다. 보편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더 멋진 상품을 만들어 자신의 이익은 물론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려는 힘까지 갖추려고 욕심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 그 크기가 아닌 내용이라는 점. 똑같은 구멍가게이더라도 주인이 알뜰살뜰 돌보고 가꾸는 곳은 그 주인의 향기가
베어 가게에 들리는 손님들로 하여금 그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반면 마을 주민이 모두 주인이라며 가게를 내버려 두는 곳은 그
쓸쓸함과 텅 빈 공간으로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즉 운영하는 사업체의 크기가
아닌 그곳에서 주인의 노력에 의해 발생 되는 힘. 사람과 지식의 향기가 핵심인
것. 이것이 바로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힘이 되는 밑거름이다. 지성이란 지식을 엮어서 체계화 시키는 것을 의미. 각각의 씨실과 날실을 엮어야만 하나의 옷감이 만들어 지듯이 지식 또한 보편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직조하여 자신의 사고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남의 것만을 늘어만
놓은 체 각각의 단편으로 사물을 접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게 될까? 지식의 체계화, 카이로스를 잡을 수 있는 힘은커녕 거대한 관념덩어리가 되어 마치 종양마냥
자신의 삶을 병들게 할 것이다. 그렇게 힘들다는 카이로스를 붙잡은 한 사람이 있다. 인상파 화가들의 승리를 지켜보며 자신의 지혜를 광기라고 평가하였던 화상
뒤랑뤼엘. 그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엿보는 눈과 함께 그의 밝은 눈이 지녔던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삶의 직조 방법이 얼마나 치밀해야 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때는 1870년. 당시 프랑스는 프로이센과 전쟁 중으로 뒤랑뤼엘은 프랑스를 떠나 런던으로
피신 중이었다. 그의 나이 당시 39세. 1865년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개인
화랑을 운영 중이던 그에겐 야망과 열정이 있었다. 런던에 체류하게 된 것을 파리에
기반을 둔 화랑의 세를 넓힐 기회로 생각했던 그는 작품을 보는 눈과 사들일 능력이 있는 고객들을 모아 바르비종파의 활동을 지원했던 그의 아버지처럼
자신 또한 동시대 작가들을 후원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의 화랑이
바르바종파 그림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라는 것이었었습니다. 즉 사업을 유지하면서 기존의
고객을 만족시키려면, 그림의 영역을 확장하여 새로
발굴한 인재들의 작품이 도록에 실린 기존 작가들의 작품과 미적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마땅한 인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바르비종파가 일구어온 혁신을 발전시켜갈 젊고 야심찬 화가들을
찾던 중 두 명의 젊은 프랑스 화가, 모네와 피사로를 만나게 된다. 그들 역시 전쟁 때문에 런던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카데미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인상파 화가는 아무도 없었다. 런던에서 뒤랑뤼엘과 만날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피사도로, 부양할 미망인과 어린아이가 있던 모네도 마찬가지로 둘은 화상 뒤랑뤼엘과
만남 것을 더 없이 기뻐하였는데 이는 뒤랑뤼엘 역시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단련을 거치며 정교해진 감식안 덕에 두 화가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볼 수 있었고 사업의 다음 단계에 필요한 인재들이었음을 직감한 것. 바르비종의 예술철학을 계승한
두 젊은 화가는 갤러리, 나아가 아마도 예술의 미래를
대변할 인재였던 것이다. 뒤랑뤼엘은 그 자리에서 둘의
그림을 사들였다. 형편에 쪼들리던 두 화가로서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카이로스가
되었고 그들은 그 기회를 단단히 붙잡았다. 아버지대가 이룬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을 끊임없이 앞으로 내밀었던 화상 뒤랑뤼엘의 삶의 직조 방법을 보면서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알아볼 수 있는 힘, 그에 대한 결단력은 결코 우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수십년간의 단련과 이로 인해
생긴 감식안. 그리고 빠른 판단력. 이것들은 각각의 요소가 아닌 뒤랑뤼엘 자신만의 지성이었고 결코 홀로 존재하였다면
그 빛을 발휘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과연 우연이며, 만화적 상상력으로 가능했었을까? 전개 속도가 느려서 어느 지점까지 작품의 묘미를 알 수 없는 문학작품과는
달리 만화 속 세상은 모든 일이 운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작가는 듬성듬성 헐렁하게
그 순간들을 엮어내어 기적이 일어나고 행운이 다가오도록, 그래서 어떤 환상을 심어주는
사고의 점핑이 일어나도록 전개하는 만화적 상상력. 그러나 우리의 삶은 결코 만화가
아니다. 실패하는 이는 매번 실패를
하고 우스갯소리처럼 말하는 [될 놈은 뭐해도 된다]는 말은 사실상 자신들의 삶을
엮어가는 직조 방법에 있었던 것이다. 1848년부터 1907년까지 59년의 시간의 흐름은 각각의
수직선이 되어 그 시대를 직조했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1년이라는 시간 속에 356일 이라는 구성물. 이 구성물 하나하나에 따른 24시간 즉 수없이 많은 사건
사고들이 그 시대를 이루고 이었던 것.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연이라는
것은 전부 그것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리하여 더욱 더 단편이 아닌 전체를 보려는 눈과 함께 자신의 삶이 주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는 각각의 삶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이고 직관의 눈으로 들여다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것을 엮어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허유림, 유로저널 컬럼니스트, 인디펜던트 큐레이터, 예술기획 및 교육, Rp’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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