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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인터뷰는 지난 달 11월 제 5회 런던한국영화제 참석 차 영국을 방문한 장진 감독과 가진 인터뷰입니다.

서울예대(서울예전) 연극과를 졸업한 장진감독은 '천호동 구사거리'라는 작품으로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서 당선되었으며, 이후 '허탕', '택시 드리벌' 같은 연극 작품들을 통해 연극계에서 명성을 쌓았다.

그의 탁월한 집필 능력은 방송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 1994년부터 2년 간 SBS의 예능 프로그램 ‘좋은 친구들’의 작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1995년에는 영화계로도 진출, 이민용 감독의 ‘개 같은 날의 오후’라는 작품의 각색에 참여했으며, 드디어 1998년 ‘기막힌 사내들’로 영화감독 데뷔를 한다.

이후 2001년 ‘킬러들의 수다’, 2004년 ‘아는 여자’, 2005년 ‘박수칠 때 떠나라’ 등의 작품들을 연출했으며, 작년에는 장동건이 대통령으로 등장했던 ‘굿모닝 프레지던트’, 그리고 올해 김수로가 출연한 ‘퀴즈왕’을 내놓았다.

직접 연출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각본가로도 활발한 활약을 했으며, 2005년 ‘웰컴 투 동막골’, 2008년 ‘강철중: 공공의 적 1-1’과 같은 작품들이 장진 감독의 각본이다.

[주요 수상경력]
제 36회(2000년) 백상예술대상 영화 시나리오상 – ‘간첩 리철진’
제 5회(2004년)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 – ‘아는 여자’
제 4회(2005년) 대한민국 영화대상 각본각색상 – ‘웰컴 투 동막골’

유로저널: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원래는 연극 배우로 시작하셨는데, 어떻게 영화를, 또 연출을 하게 되셨는지부터 시작해 볼까요?

장진: 제가 원래부터 연극을 참 좋아해서 연극과에 입학했고, 연기를 전공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배우로서 무대에 서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창작자의 입장이 되어보고 싶은 갈증이 생겼던 것이지요. 그래서 군 복무 시절 여러 작품들을 쓰게 되었고, 이후 연기보다는 제가 직접 쓴 작품을 가지고 연출을 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연극 작품들을 집필하고 연출하게 되던 중 이민용 감독의 ‘개 같은 날의 오후’라는 영화의 각색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대화가 영화의 전반을 이끄는 일종의 상황극이었던 만큼, 저와 너무나 잘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이후 김종학 감독님께서 영화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라고 권유를 하셨고, 저도 영화가 너무나 재미있을 것 같아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감독님의 작품들을 보면 등장인물, 그들의 대사, 또 상황설정이 상당히 독특하고 재치가 있습니다. 주로 어디서 이런 것들의 아이디어를 얻는지요?

장진: 제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그들의 대화들은 제 주위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면이 많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나 평균적이니 않은 사람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거나 짜증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 독특함을 선입견 없이 바라보면 결국은 다 재미있거든요. 제가 유독 그 ‘다름’에 대해 자상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런 특이한 캐릭터를 만드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개성이 강한 사람을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독특한 인물들의 독특한 대화나 행동이 싫었다면 제 작품에 쓰지 않았겠지요. 제 영화에 등장하는 상황들은 사실 저도 그것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들 역시 제가 즐거워하는 상황들이지요.

유로저널: 감독님의 작품들은 대부분 따스하고 동화같은 면이 있습니다. 현실 탈피를 의도하신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어떻게 그리고 싶은지요?

장진: 저도 한 때는 제가 사는 세상에 대해 호전적일 때가 있었습니다. 제 작품을 통해 사회의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사회를 투영하고 싶었던 시절이었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제가 영화를 통해 그리는 세상이 현실 세상과 조금 다르더라도, 굳이 현실과 격하게 싸우지 않고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보다 좀 더 평화롭고 낭만적인 세상을 영화를 통해 만들어 내면서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할까요? 물론, 이러다가 언젠가는 또 다시 차갑고 격하게 세상을 다루는 작품도 나올 수 있겠지요. 심지어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도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려 합니다.

유로저널: 주로 대사와 상황극으로 이루어진 장진 감독님의 영화를 두고서, 한 편에서는 연극에서 볼 수 있는 것을 영화로 그대로 옮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화려한 영상이나 스타일을 보기도 어렵고요.

장진: 영화를 시작하면서 초반에는 그러한 점들이 일종의 핸디캡처럼 다가와서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은 결국 관습적인 영화와는 ‘다른’ 제 영화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때문입니다. 일반 대중들은 그러한 이질감을 쉽게 수용하기가 어려운 만큼, 연극적인 영화라고 불평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저 같은 조금 다른 영화를 만드는 감독(사실 장진 감독은 ‘놈’이라는 표현을 썼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아무래도 제 영화들이 상황극이다 보니 화려한 비주얼이나 미장센이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법들은 어떤 장르냐, 어떤 작품이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요. 아직까지는 영화가 가진 형식미나 미장센이 주는 제 2의 언어가 필요하지 않은 장르만 해왔지만, 어차피 영화는 죽을 때까지 만들 것이니 언젠가 그런 기법이 필요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게 되면 저 역시 그런 기법을 사용할 날이 올 것입니다.

유로저널: 방금 설명하신 것들과 같은 까닭으로 감독님의 작품은 늘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장진: 호불호가 갈리는 것에 대해 불만은 없지만, 결국 그것은 감독인 제 재능의 한계라고 봅니다. 그들에게 “제 작품은 이렇게 보시면 재미있습니다.”라고 조언하기 보다는, 결국 그들마저도 포용할 수 있는 더 좋은 작품을 만드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로저널: 이른바 ‘장진 사단’이라고까지 불리울 만큼 감독님의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두 배우 정재영과 신하균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장진: 제 작품들은 아무래도 캐릭터나 대화가 중요한데, 언어 연기력이 가장 뛰어난 배우를 꼽자면 비교대상 없이 정재영입니다. 제가 쓴 대사를 제가 의도한 것보다도 더 잘 연기하는 배우가 정재영입니다. 그야말로 저와 궁합이 잘 맞는 배우죠. 신하균과는 워낙 서로 어릴 때부터 작업을 같이 해왔습니다. 신하균은 그 나이에서는 나오기 힘든 광기와 폭발적 에너지를 지닌 배우였습니다. 이들과는 말 그대로 맨 바닥부터 같이 시작했다 보니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작업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그렇게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그들과 작품에서 그들과 잘 못 만나는 것 같습니다. 서로가 불편할 수 있는 접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서로 조심하는 시기죠. 사실, 저는 ‘장진 사단’이라는 말을 전혀 쓴 적이 없는데, 그들에게는 참 미안하기도 합니다. 어떤 배우가 특정 감독의 사단이라고 하면 다른 감독들이 그들과 작업하기가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에게는 매우 불리한 것이거든요. 그들은 그저 제 작품들이 더욱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최적의 능력을 발휘해주었을 뿐이며, 마찬가지로 타 감독들의 타 작품에서도 역시 그렇게 최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배우들일 뿐입니다.

유로저널: 연극연출, 희곡작가, 방송작가, 영화감독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오셨지만, 그 중에서도 한 가지만 선택한다면?

장진: 한 가지만 선택하라면 ‘글 쓰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도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어쩔 수 없어 영화계에서 일을 하다보면 자본이 주는 부담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일년에 한 작품만 한다고 해도 수반하는 자본의 무게가 수십억 단위니, 제가 바보짓 했다가는 회사 하나가 없어질 수도 있거든요. 이처럼 일개 개인이 예술 안에서 자본을 책임진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과 스트레스입니다. 그런데, 글을 쓸 때는 그런 부담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고, 그야말로 일차적인 소박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도나 조직이 주는 불편함을 벗어나 맘편히 글을 쓰는 게 가장 좋습니다.  

유로저널: 영화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장진: 제가 만든 창작물로 타인과 사회에 진동과 파장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연극보다는 영화입니다. 한 번은 제 영화가 개봉되고서 전철을 탔는데, 승객 누군가가 제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그 때의 그 기분이란... 또, 영화는 하나의 산업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만큼, 그 맛(?)이 있습니다. 반면, 연극은 일종의 자기 즐거움입니다. 눈 앞에서 펼쳐지는 살아있는 무대를 보면서 느끼는 자기만족은 영화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지요.  

유로저널: 반면에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는?

장진: 앞서도 언급했지만, 거대 자본 밑에서 창작자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예술을 공부할 때 그렇게 배우지 않았거든요. 거대 자본이 주는 부담감과 무게를 시장(?)에 진출해서야 접하게 되니, 상당한 부담과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또 다른 어려운 순간이라면, 제 지능과 제 능력의 바닥에 부딪혀 제 한계를 마주할 때입니다.

유로저널: 이번 런던한국영화제에 참석한 소감 부탁드립니다.

장진: 그 동안 유럽에는 몇 번 와봤는데, 런던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 런던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감사하게도 제 회고전까지 마련되어 마치 주인공 같은 느낌으로 오게 되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런던한국영화제가 단순히 문화원에서 준비하는 관료적 이벤트가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막상 와서 보고서 너무나 놀랐습니다. 영화제를 준비해주신 주영한국문화원에 정말 고마웠고, 한국에 가서도 런던한국영화제를 적극 홍보하고 싶어졌습니다. 런던한국영화제는 진정 영화가, 그리고 영화인들이 주인공인 영화제입니다. 가끔 국내 영화제들이 스폰서가 끊겼다고 폐지되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웃기지 않나요? 장소가 없으면 고수부지를 빌려서라도 하면 되는 것이고, 상금이 마련되지 않았으면 안 줘도 괜찮습니다. 언제부터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상금 보고 영화 만들었습니까? 그런 영화제를 보면 영화와 상관없는 이들이 시상하러 나오고, 정작 영화인은 주인공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국제적인 도시 런던에서 우리 한국 영화가, 또 영화인들이 주인공인 진정한 영화제가 있다니 너무나 기분이 좋습니다.

유로저널: 감독님의 작품을 접한 해외 관객들의 반응은 어떤지요?

장진: 해외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적이 있었을 만큼, 의외로 해외 관객들이 제 영화를 좋아하더군요.  제 작품에서 시도하는 언어적 매력들이 한국 관객들에게만 먹힐 줄 알았는데, 그것들이 외국 관객들과도 공유가 된다는 점이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유로저널: 해외 관객들에게 어떤 감독으로 인식되고 싶으신지요?

장진: 한국에서의 바램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동양의 어떤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데, 다른 영화들과 다른 것이 있다’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도 영화를 즐기는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해외 관객들에게도 독특하고 변별적인 요소가 분명한 감독으로 인식되고 싶습니다.

유로저널: 앞으로 영화를 통해 다루고 싶은 장르, 소재가 있다면?

장진: 기존의 SF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SF나, 결국 모든 감독들이 대가의 길을 갈 때 들른다는 호러, (웃음) 그리고 하이틴 멜로도 해보고 싶습니다. 진짜 이 시대 청춘들이 고민하는 것들을 요즘 한국 드라마는 잘 다루지 못하거든요. 이 시대 청춘들의 진짜 고민과 또 그들의 낭만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차기작으로 알려진 '로맨틱 헤븐'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장진: 이 영화는 지난 ‘아는 여자’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입니다. 동양적인 이야기인데, 한국 영화에서는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천국도 나오고요. (웃음) 저는 너무나 좋아하는 영화가 될 것 같은 만큼, 관객들의 반응도 가장 궁금한 영화입니다.

유로저널: 오늘 이렇게 시간 내주시고 귀한 말, 또 재미있는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영국 및 유럽에서 감독님의 작품들을 더욱 자주 볼 수 있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이번 시간 장진 감독의 인터뷰가 제가 작성한 올해의 마지막 인터뷰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저희 유로저널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 사람이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그 사람이 재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이든, 그저 평범한 유학생이든, 모든 사람의 삶에는 언제나 한 편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리를 감동시키는 눈물과 웃음이 있으며, 또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유로저널 인터뷰를 통해 소개된 많은 분들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삶에 어떠한 형태로든 유익함을 드렸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새해에도 또 다양한 분들의 다양한 사연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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