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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17.05.21 23:06
나는 반항하는 사람이다 - 아이 웨이웨이 4
조회 수 3260 추천 수 0 댓글 0
나는 반항하는 사람이다-아이 웨이웨이 4 4) 반체제 예술가 한창 미술시장의 붐이 시작되던
2003년, 아이 웨이웨이는 자신의 건축 사무소 ‘페이크 디자인(FAKE
Design)’을 설립했다. 이것은 2008년의 베이징올림픽을 위한 준비였다. 사실은 2003년 스위스의 헤르초크-모이론(J.
Herzog & P. d. Meuron) 건축사무소가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 경연에 참가를 했을 때,
헤르초크가 아이웨이웨이를 예술고문으로 초청했었다. 이 설계사무소의 시안이 주경기장의 디자인으로 선정되었을 때, 아이웨이웨이는 디자인 설계에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밝혔다. 그가 실제로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와 관련한 그의 경력은 이후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것을 계기로,
그는 “냐오챠오(鳥巢)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을 일컫는 말의 설계자” 혹은 “냐오챠오의 중국 측 고문”으로 불렸고, 이것은 ‘아이칭의 아들’이라는 신분과 함께 그가 가진 가장 중요한 스펙 중 하나가 되었다. 자신의 이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그는 본격적으로 중국 정부를 향한 직설적인 비판을 날리기 시작했다.
스스로 ‘반체제 예술가’가 된 것이다.
그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예술과 사회, 정치문제를 넘나들며 자신의 자유로운 의견을 끊임없이 격렬하게 표현하면서 중국공산당과 정부를 공격했다. 이후 그의 블로그가 “예술가의 솔직함과 탈속적인 면이 있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하면서, 그는 가장 날카롭고 비판적인 지식인으로까지 추앙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힘을 잘 알고 있었던 아이
웨이웨이는 “인터넷은 아주 유력한 무기이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이며, 더욱 편리하고 자유롭게 나를 표현할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인터넷을 하나의 화폭으로 삼아 3년 동안 약
2,700여 건의 글을 게시했다.
Birds Nest (Beijing National Stadium),
Beijing, China, Herzog & De Meuron and Ai Weiwei, 2008 중국 정부는 몇 년 간 아이웨이웨이의 비판을 애써 외면했었다. 그러나, 올림픽 폐막
후, 2008년 12월 이래 중국 정부는
그의 블로그를 잠시 폐쇄했다. 2009년 5월에는 그의 극도의 격한 비판적 언사로 인해 블로그는
결국 영구 폐쇄되고 말았다.
가택 연금, 구타, 출국 금지, 그리고 불기소 구금, 탈세 및 중혼 혐의로 기소되는 등, 지금도 그는
정부로부터의 온갖 압박을 받고 있다.
258
Fake, Ai Weiwei, 2011 6. 세계가 주목하는
예술가가 되다 1) 트위터 팔로워(follower)
수가
8만
명이
넘는다 아이 웨이웨이가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건설의 고문으로 참여한 뒤, 세계는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세계가 그를 주목하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중국이 놀라운 경제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내면서, 세계적으로 중국의 위상은 높아지게 되었고, 세계는
중국을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특히 당대
중국예술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중국 예술이
세계 미술 시장에서 급부상하게 되었다. 이에
아이웨이웨이를 포함한 중국 예술가들은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되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국제금융위기의 여파로 중국사회의 모순은 나날이 심화되어,
자유주의파가 주도하는 중국매체는 사회의 부정적인 사건을 보도하는 데 열을 올렸고, 인터넷에는 사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져만 갔다. 아이웨이웨이는 바로 이때 더욱 많은 지지자들을 만들었다. 2008년 시작된 트위터(Twitter)
열풍은 블로그를 폐쇄당한 아이 웨이웨이에게 더없이 좋은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중국에서는 방화벽 때문에 트위터를 거의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중국어권의 트위터는 고도로 정치화된 공간이 되었고,
아이 웨이웨이를 비롯한 네티즌들은 트위터를 통해 중국 현 정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했다.
Ai
Weiwei 트위터의 열풍과 함께 그의 유명세도 날날이 치솟았다. 그래서 그의 트위터 팔로워(follower)
수는 자그마치 8만 명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중국어권 트위터의 총 사용자 수가 불과 10여 만 명인 사정을 감안한다면 이는 엄청난 수치다.
Ai Weiwei 2) <세계 미술계파워 100인>에서1위에 선정 아이 웨이웨이의 예술작품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그는 영국 <아트 리뷰Art Review> 지가 선정하는 “전 세계에서 당대 예술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인물”로 2008년부터 3년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2011년에는<아트 리뷰Art
Review> 지가 발표한 <세계 미술계파워 100인> 에서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2015년 Artsy.net 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예술가 10인>에서도 그는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2011년 4월 베이징 공항에서
그가 중국정부에 의해서 체포된 후, 그
해 6월 그가 풀려나기까지
세계의 인권 협회들과 예술가들, 언론들은 그의
자유를 위해 적극적으로 발벗고 나섰었다. 이 때,
아이 웨이웨이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구겐하임 재단과
세계 박물관 협회에서는 아이 웨이웨이의 석방을 위해 9만명의
사람들의 싸인을 받기도 했었다. 이후, 이러한 명성으로 인해 그는 서구의 각종 조직으로부터 보다 쉽게 협찬과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일부 행위예술 작품이 대규모로 제작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동화 Fairytale> 프로젝트에서도 1,001명의 중국인들을 그림(Grimm) 형제의 도시인 카셀에 한달 간 초청하여, 프로젝트의 이름처럼 그들에게 동화 속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부여했었다.
2007년
카셀도큐멘타에 초대된 1001명의 중국인들 이 프로젝트의 주요 목적은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중국인 1,001명을 독일로 초청하여 전시회를 보게 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대가를 받지 않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이 프로그램의 전체 경비는
3,000만 위안(元)한화기준 약 50억 원을 넘었었다. 3) ‘일탈자이자 표절자’ 또한 2010년에 공개된 ‘Sunflower Seeds’는 다국적 기업인 유니레버(Unilever)로부터
4,000만 위안, 한화기준 약 66억 원의 자금을 지원 받아 도자기 전문가
1,600명을 동원하여, 2년여의 시간 동안 수공으로 만든 해바라기 씨 모양 도자로 중국인을 상징화한 작품이었다.
Sunflower Seeds, Ai Weiwei, 2010 한 때,
이 작품으로 그는 서구와의 인맥관계를 이용해 거대자본으로 다른 중국 예술가의 작품들, 예술가 위에루핑(岳路平)의 <이슈항빤(藝術航班)>과
<치앤이예(1001夜)>을 표절했다는 비판에
휘말리기도 했었다. <이슈항빤>과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의 다른 점은 위에루핑의 작품에 초청된
인원이 단지 세 명뿐이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이 웨이웨이는 서구의 대량자본을 이용하는
독점 예술가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2011년 초 ‘The China Daily’에서는 아이 웨이웨이를 ‘일탈자이자 표절자’로 묘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비판들조차 그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Ai
Weiwei 4) 도발적인 예술가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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