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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7.06.18 23:40
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22) -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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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연재소설 (22회) 바람의 기억 3. 우림각의 전설 장 마담을 만나다 장 마담이 쯧쯧 혀를 찼다. 영미는 그제야 자신이 좀 흥분해 있다는 걸 깨달은 듯 주위를 둘러보며 목을 움츠렸다. 종업원이 고기를 가져와 불판에 얹었다. “와, 마블링이 예술이네요. 마치 고기에 꽃이 핀 것 같아요.” 영미가 탄성을 내고는 입을 하 벌렸다. 피어오르는 연기에서 단내가 난다고 정아가 거들었다. “저희 사장님이 주방에다 특별히 더 좋은 고기 드리라고 말씀하셨어요.” 종업원의 설명에 장 마담이 카운터 쪽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오늘 고기는 꽃이 더 현란하다 했지. 사장님께 고맙다고 전해줘요.” 덧니를 살짝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인 종업원은 익은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각각의 접시에 몇 점씩 놓아두고서야 허리를 폈다. 장 마담이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종업원 손에 살짝 쥐어주었다. “이 집 사장님과 아는 사이에요?” 고기 한 점을 기름장에 찍어 상추에 놓고 거기에 쌈장을 찍은 마늘과 고추를 얹으며 영미가 물었다. “안다고 할 수도 있고 모른다고 할 수도 있고 그래.” “무슨 사이가 그렇게 복잡해요?” “전에 이 집과 거래를 하고 싶어서 사장님을 따로 만난 적이 있거든.” “거래를 요?” “그래, 우리 우림각 아가씨들 먹여 살리려는 모종의 거래.” “아하, 그러니까 우리 아가씨들이 여기로 손님을 모셔올 테니 커미션을 달라는.” “똑똑하구나. 당시에 우리 우림각과 사업 파트너가 되면 그야말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어서 여기저기 업소에서 줄을 대려고 난리였었어. 아가씨 숫자가 자그마치 오백이 넘었으니 당연한 현상이었지.” “사장님이 되게 좋아하셨겠다. 복이 절로 굴러들어 온 거니까.” “그랬을 것 같니? 전혀 아니었다. 내가 몇 번 눈치를 줬는데도 이 집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거야. 그래서 성질 급한 내가 먼저 보자고 했지. 근데 이 양반이 글쎄 내가 조건을 제시하기도 전에 자기 가게에서는 커미션 같은 건 없다고 단호하게 자르는 거야.” “와, 사장님 쎄네. 이집이 그렇게 장사가 잘 되는 집이었어요?” “아니, 당시에는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었고 그래서 손님이 별로 없어서 현실적으로는 내 제안을 백번이고 받아야 했던 집이었어. 근데 일거에 거절하더라고. 난 부러 호의를 베푼 건데 말이야. 근데 거절 이유가 뭔지 아니? 참 나, 커미션 주려면 그만큼 고기질을 낮추고 양도 줄여야 하는데 그런 장사는 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내가 보기에는 당장 손님이 없어서 곧 장사 접어야 할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지.” “하하하... 그래서 어찌 되었어요?” “뭘 어째, 얘기 끝난 거지. 사장님 얘기가 백번 맞는 말이지만, 나는 나대로 우리 우림각의 수입과 아가씨들의 수입을 챙겨줘야 하는 입장이니 커미션 없이는 거래할 수가 없었지. 그때는 택시나 관광버스기사들까지도 식당이나 술집에 손님 데려가면 사례금을 은밀하게 흰 장갑이나 담뱃갑 속에 넣어주는 게 예의였던 시절이었거든.” 문득 전화벨이 울렸다. 정아가 핸드백을 열고 휴대폰을 살피다가 당황한 얼굴로 급히 창을 닫았다. 장 마담이 정아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사장님의 경영마인드가 대단하지 않니? 계약은 틀어졌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손님을 접대해야 할 때는 항상 이리로 왔지. 사장님의 당당한 태도는 거슬렸지만 우선 고기가 맛있으니까. 일주일에 두 번은 온 것 같아.” “일주일 두 번이나요? 아니, 언니가 고기 드실 일이 그리 많았어요?” “부러 온 거지. 손님 모시고서. 나는 나를 초이스한 손님과의 마지막 식사는 내가 초대하는 걸 원칙으로 했거든. 다른 아가씨들이 다들 어떻게 하면 손님 지갑에서 돈을 빼낼까를 궁리할 때 나는 반대로 간 거지.” 영미가 쌈을 볼이 미어지게 넣고 오물거리다 멈추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그렇게 놀라니? 하긴 동료들도 나를 처음에는 다들 숙맥 취급을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어. 나한테 대접을 받은 이들이 다시 우림각에 와서는 하나같이 미스 장을 찾았으니까. 유독 나한테만 예약 손님이 넘쳤던 비결이기도 해. 어떤 날은 나를 두고 손님들끼리 다투기도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장 마담이 부추무침에 고기를 얹어서 입에 넣으며 정아에게도 어서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정아는 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나를 찾는 손님이 많으니까 동료들은 내가 뭐 섹스에 특별한 재능이라도 있는 줄 알고 그 비결을 심각하게 묻곤 했었지. 사실 그건 손님과 쌓은 인간적인 유대감의 결과인데 말이야.” 정아의 핸드백에서 다시 벨이 울렸다. 정아는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들고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화장실 쪽 구석으로 가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싸가지 없이 전화를 끊고 지랄이야. 내가 뭐랬어. 전화벨이 울리면 3초 이내에 받으랬지.” “점심 먹는 중이에요.” “알고 있어. 점심을 아주 비싼 고기로 잡수시는구먼.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팔자가 늘어지셨나?” “지금 면접 보고 있으니 이따 연락해요.” “면접? 젠장 무슨 면접을 토끼 씹하듯이 그리 자주 보는 거야. 설마 내 돈 떼먹고 잠수 타려고 수작부리는 거 아니지? 잘 들어, 아무리 튀어봤자 결국 내 손바닥 안이야.” “이따 전화 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정아는 벨소리를 무음으로 바꿨다. 자리로 돌아온 정아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장 마담이 정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아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기 두어 점을 상추에 싸서 입에 우겨넣었다. 평소와 다른 미친개의 거친 말투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정아는 아까 미친개에게 자신도 모르게 면접 중이라고 대꾸한 것에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밀려드는 서글픔에 대책 없이 떠밀렸다. 그러다 아까 미친개가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뭔가 퍼뜩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내가 고깃집에 와있는 걸 어떻게 안 것일까. 정아는 무심코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가 화들짝 놀랐다. 주차장 저편 끝에서 미친개가 이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전화기를 들여다보았다. 다시 전화를 걸어오거나 아니면 식당 안에까지 들어올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정아는 신경이 곤두섰다. “어때 고기 맛이. 입에서 녹지?” 장 마담이 더디게 오물거리는 정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아는 부러 밝게 웃으며 다디단 육즙이 씹을 때마다 톡톡 터진다고 대답했다. (다음호에 계속) 오을식 소설가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자유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제31회 한국소설문학상, 제8회 자유문학상, 제3회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비련사 가는 길」이 2008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2011년 서울문화예술재단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 「삶과 문화」 편집인 역임.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독일 뒤셀도르프를 거쳐, 현재 베를린에서 머물고 있다. email: oesnov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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