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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화가의 작업이 결코 끝낼 수 없는 일이라는 거야

피카소6



7.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추구


피카소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옆얼굴이라 코가 절반만 나왔지만, 코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 것을 있다. 코의 특징을 전부 담아내면서, 눈의 모양은 짝짝이다. 이것은 측면의 눈과 정면의 눈을 동시에 그렸기 때문이다.

모든 요소들이 균등하게 구성되어 화면 전체가 일관성을 보인다. 이러한 일관된 조화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토템 기둥과 같은 원시 미술 작품과 비교되는 점이다.

피카소가 이런 그림을 그리게 것은 당시 상황과 관련이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당시 급격한 산업화로 인한 환경 변화와 마르크스 혁명적 사관 등에 영향을 받았던 유럽은 과거와의 단절을 꾀하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고 있었다.

피카소의 살아 있었던 당시에는 모더니즘이라는 이름 하에 건축, 과학 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운동이 전개되었다모더니즘 미술 역시 그러한 방향으로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미술을 찾았다.

이런 상황에서 피카소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유물이 되느냐, 아니면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서 미술계의 혁명가가 되느냐는 길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물론 결과는 말그대로 대성공이었다.

무엇보다 입체주의의 창시자라 불리는 피카소와 브라크는 르네상스 이래 서양미술을 지배해왔던 시각적 관습을 탈피하여 대상과 공간의 재현을 기존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미술계에 혁신적인 기여를 했다.

기존의 그림이 원근법에 근거하여 고정시킨 단일시점을 중심으로 대상을 배열했다면, 입체주의는 후기 인상파 세잔에게 영향을 받아, 하나의 화폭에 다각도의 시점에서 사물을 보고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화폭을 구성했다.

다른 나라들의 건축은 항상 풍경의 선을 따른다. 그러나 스페인 건축은 풍경의 선들을 자른다. 그것이 바로 프랑스의 조르주 브라크(1882-1963) 큐비즘과 다른 피카소 큐비즘의 기반이다.

피카소는 인간의 작품은 풍경과 조화되지 않고 대항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큐비즘의 기반이며 바로 이것이 스페인의 큐비즘이다. 스페인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반대하고 프랑스에서는 일치한다. 이것이 스페인과 프랑스 큐비즘의 근본적 차이점이다라고 말했다.


에스타크의 풍경, Georges Braque, 1908.jpg

에스타크의 풍경, Georges Braque, 1908



호르타 드 에르보의 산 마을, 파블로 피카소, 1909.jpg

호르타 드 에르보의 산 마을, 파블로 피카소, 1909


화가로서의 피카소의 특성은 매력과 지성 그리고 발빠른 적응력이다. 그는 큐비즘의 원리를 자연과 건축이 어울린 스페인의 풍경에서 발견했지만 이 원리를 인간을 표현하는데도 사용했다.

피카소는 자신의 인간에 대한 관심을 이렇게 표현했다. "머리와 얼굴 그리고 인체는 나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줄 부채를 가진 여인 (페르낭드), 파블로 피카소, 1908.jpg

부채를 가진 여인 (페르낭드), 파블로 피카소, 1908


줄채를 가진 여인 (페르낭드)(1908)’ 아프리카 흑인 미술에 영향을 받은 니그로 큐비즘( Negro Cubism) 작품이다. 입체감보다는 오히려 흙색의 황토색과 백색의 강렬한 대조와 비대칭의 기하학적으로 자른 각진 어깨와 팔, 반원의 이마, 그리고 한쪽 반원의 젖가슴과 삼각형의 줄 부채, 삼각형의 옷자락, 사각형의 의자 등의 특성들이 강조되어 있다.

여하튼 이 혁신적인 입체주의는 단 몇 년 동안 서양미술의 전통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놓으면서, 당시 진취적인 젊은 예술가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이후,1912년에 피카소는 또 다른 시도를 계속 했다. 그는 신문 조각이나 종이를 그림에 오려서 붙이는 파피에 콜레( Papier Colle)의 작품들을 수없이 생산했다.


Guitar, Sheet Music and Glass, Picasso, 1912.jpg

Guitar, Sheet Music and Glass, Picasso, 1912



그림 표면에 종이, 직물, 나무, 광물, 같은 이물질을 부착하는 콜라주 (Collage)나 파피에 콜레(Papier Colle)는 세상의 물건도 닮지 않고 그림 속에서도 동화하지 않은 채 제 삶을 갖도록 구축된 타블로 오브제 (tableau-objet)로써, 물체와 공간이 흩어지고 모아지는 종합적 큐비즘을 발전시켰다. 

피카소는 파피에 콜레의 의도는 눈을 속이려는데 있지 않고 마음을 속이는데 있다. 대치된 물체가 그것을 위해 원래 만들어지지 않은 세계 속에 들어가서 동화되지 않고 낯설음을 유지한다. 그래서 이 낯설음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원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이 아주 이상해지고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8. 피카소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피카소는 죽을 때까지 초현실주의 등 늘 새로운 양식을 찾아 방황했다. 그리고 그의 모든 변화들과 함께 그의 여자들도 늘 바뀌었다. 그래서 피카소 그림에는 여자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왜 피카소는 한 여자에게 안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여자를 찾아다녔을까?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의 화려한 여성 편력일까?

피카소가 갈망했던 것은 아내와 함께하는 안락한 생활이 아닌, 아찔하도록 거칠고 위험한 연애, 그리고 예술혼을 자극하는 젊은 애인이자 뮤즈였던 것 같다. 그는 여자와의 관계에서 철저히 이기적이었다. 한번 마음이 식으면 다시는 그 여자를 되돌아보지 않았다.

피카소의 명성이 날로 높아가는 동안, 피카소에게 버림받은 여자들의 인생은 반대로 파멸했다. 피카소를 만나기 전 촉망받는 사진작가였던 도라 마르는 피카소와 결별한 후 정신병자가 되었다. 도라가 정신병원을 전전하는 동안, 피카소는 새로운 연인 프랑수아즈 질로와 함께 남프랑스의 별장에 머무르며 지중해의 풍광을 즐겼다.

마리 테레즈와 자클린은 각각 1977년과 1986년에 자살했다. 생전의 피카소를 엑상프로방스의 보브나르그성에 가두다시피 했던 두 번째 아내 자클린은, 피카소가 죽은 후 집의 모든 창에 검은 커튼을 치는 등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지 못했다

대개 천재들은 어린 시절 반짝거리다 성년이 되면서 그 광휘를 잃어가든지, 아니면 막 중년이 되는 시점에 죽어버려 영원한 전설로 남는다. 그러나 피카소는 한 세기 가까운 삶을 누리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부와 명예를 누렸다. 그래서 미술평론가인 존 버거는 “피카소는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그는 늘 젊고, 그런 점에서 볼 때 천재적이었다”고 평했다.

이것은 언제나 빛바래지 않고 늘 새 것처럼 작품들에서 반짝거린 그의 천재성 덕분이었다. 또한 끊임없는 연애사건,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관계도 한 몫 했을 것이다. 피카소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보면, 여자와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작품 경향이 조금씩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새 애인을 만날 때마다 그의 창조성은 활화산처럼 폭발했다.

피카소가 긴 생애에서 줄기차게 다루었던 주제로 여자 외에 미노타우루스와 황소, 올빼미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노타우루스는 미노스 왕의 아들로 반인반수(半人半獸) 괴물이라 미노스 왕궁 지하의 미궁에 갇혀 공물로 바쳐지는 젊은이들을 먹고 살았다.


Minotaur Caressing a Sleeping Woman, Pablo Picasso,1933.jpeg

Minotaur Caressing a Sleeping Woman, Pablo Picasso,1933


어느 날 영웅 테세우스가 이 괴물을 해치우러 미궁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공주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실타래를 들고 와, 미노타우루스를 해치우고 실타래에서 풀린 실을 따라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다

왕자인 동시에 야수, 사람인 동시에 황소인 미노타우루스는 왕궁의 지하에 갇혀 살며 사람고기를 먹었다. 이런  괴물에게 피카소는 이상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만년으로 갈수록 그림 속 미노타우루스는 피카소의 모습과 점점 흡사해진다.

미노타우루스와 함께 피카소가 매혹된 동물은 올빼미다. 피카소는 젊은 시절, 상처 입은 올빼미 한 마리를 누군가에게서 얻어 기른 적이 있다. 올빼미의 상처를 치료해주며 피카소는 올빼미의 눈, 모든 것에 초연한 철학자 같은 그 눈매에 빠져들었다.

어느 날 피카소는 그리다 만 올빼미의 눈 부분에 두 개의 구멍을 내고, 자신의 사진 위에 그 올빼미 그림을 겹쳐놓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피카소의 눈은 바로 올빼미의 눈, 초연한 듯 싶지만 실은 욕망에 이글거리는 올빼미의 눈과 똑같았던 것이다.


피카소의 올빼미 그림.jpg

피카소의 올빼미 그림


살기 위해 젊은 여자를 잡아먹은 미노타우루스, 새끼가 어미를 잡아먹는 올빼미처럼, 피카소의 예술혼은 그의 여자들을 재물삼아 활활 불타올랐던 것 같다.

시시각각 엄습하는 영감을 쫒아 하루에도 네다섯 점씩, 심지어 열 점 이상의 그림을 그려야 할 정도로 그는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만큼 바빴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축적하고도, 정작 그는 그 부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70대가 된 피카소는 친구인 작가 엘렌 파르믈랭에게 이렇게 말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화가의 작업이 결코 끝낼 수 없는 일이라는 거야. ‘오늘 열심히 일했으니까 내일은 휴일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은 화가의 생에 절대로 오지 않아. 나는 죄수의 삶을 산다.

그에게 영원한 애정과 숭배의 대상은 오직 그림뿐이었다. 그림은 그의 욕망을 풀어헤치는 공간이자, 욕망 그 자체였다.

1973 47, 피카소는 저녁 늦게까지 흰색의 누드 작품에 매달리고 있었다. 이 작품을 다 끝내지 못한 채, 피카소는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48일 오전, 92년의 생을 마감하며 아무 고통 없이 숨을 거두었다. 죽기 12시간 전까지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최후조차 그는 역시 피카소다웠다.


피카소1.jpg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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