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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1 00:33

"생활 속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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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속의 음악"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 쓸쓸한 초가을 저녁에 어느 젊은 청년이 초저녁 잠에 빠져있는 고요한 거리를 차가운 달빛을 온 몸에 받으며 명상에 잠겨 걷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실같이 가느다란 피아노의 곡조가  가벼운 바람결에 그쳤다간 또 들리고 들렸다간 또 그친다. 청년은 꿈결같은 음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곳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가까이 가보니 바로 자기가 작곡한 곡조가 불도 없이 어두컴컴한 오막살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캄캄한 오막살이에 피아노는 웬 것이며 그것을 치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그는 이상한 감흥의 충동을 받고 슬그머니 그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주인은 깜짝 놀라서  "누구요, 아닌 밤중에 아무 말도 없이" 청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을 열고 들어가기는 했지마는 주인이 묻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사면을 둘러보니 방안에는작은 촛불이 깜박거릴 뿐, 그 집 주인은 어두컴컴한 속에서 헌신짝을 놓고 꿰매고 있는 신기리 장수였다.  들창 밑에는 한 소녀가 피아노 앞에 앉아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있었다. 낡은 피아노 위에 악보는 고사하고 종이조각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당신이 방금 치던 그 곡조는 어디 있나요? 청년이 물었다. 소녀는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저는 눈이 멀어서-----" 채말끝을 맺지 못하고 벌써 그 목소리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 ----- 아, 장님! 가엾고 놀라운 일이다. 눈먼 이소녀의 이재주, 이 운명------.  "그러면 그 어려운 곡조를 어떻게 배웠나요?"   "배운 일은 없습니다. 제가 전에 살던 집 건너쪽에는 어느 백작의 집이었는데 그 집부인이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흉내를 내보았을 뿐입니다. "참 가엾은 일입니다. 저도넉넉하지 못한 사람으로 음악을 좋아하기는 하오마는--"  이때 두사람의 이야기를듣고 있던 주인이 앞치마를 부수수 털고 일어나 옆에 있는 의자를 내 놓으며 앉으라고 권한다

"눈먼 이 아이에게는 이 세상에서 이 오라비와 다 깨진 피아노만이 위안물 입니다. 웬만만하여도 음악회에 데리고 가서 저 애의 평생 소원인 베토벤 선생의 피아노 소리라도 들려 주었으면 합니다만--."  "당신네는 그다지도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싶어 합니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대천재 베토벤선생이야말로 온 천하가 모두 숭배하지 않습니까?"


  X                                                            X                                                               X


초는 점점 녹아내려 까물까물 꺼져가는 불빛이 세사람의 얼굴을 비춰준다.  청년은 슬그머니 그 소녀를 붙잡아 일으킨 뒤 이 불행한 소녀를 위하여 한곡조를 치기 시작한다.  곡조는 바로 전에 그 소녀가 치던 곡조였다.

빨랐다, 느렸다하는 묘한 곡조는 조그만 방안에 울려서 곡조를 치는 청년자신은 물론, 곡조를 듣는 두남매는 신비스러운 생각에 싸였던 것이다.

옆에서 귀를 기우리고 듣고 있던 소녀는 별안간 청년의 옷자락을 잡으며 부르짖는다.  " 선생님, 베토벤 선생이 아니십니까?"

Beethoven-Sonata-op-27-no-2-Moonlight-Sonata-page1-51c90f088afae.jpg

"예, 내가 바로 베토벤이요." 이 소리를 들은 두 남매는 너무나 기뻐 한참동안 흐느껴 울었다.  "선생님! 이 불행한 제 동생을 위하여 한 곡조만 더 들려 주십시요" 오라비는 애원하였다.  베토벤이 다시 피아노를 향해 앉았을 때 아물거리던 촛불이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펄럭하고 꺼졌다.  마침 달빛이 하염없이 흘러들어와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을 추는것 같았다. 들창을 열어젖히고 하늘을 우러러 볼 때 수없이 많은 별들이 은구슬을 뿌려 놓은 듯이 반짝거리고 하늘 한가운데 흐르는 은하수가 낮과 같이 환한 이 달밤!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베토벤은 피아노 위에 손을 올려놓자 마음속에서 복바쳐 오르는 그 정열! 그 감흥을 곡조로 옮겨 천천히 치기 시작한다.  황홀하고도 신비한 이 광경 속에서 두 남매는 가슴에 손을 얹고 달속의 여인이 춤을 추는 듯한 아름답고도 신비스런 생각에 싸여 멀리 달나라에 헤메는 듯한 감흥에 젖어 있을 때----

                                             ----- 이하 생략 -----

두 남매가 황홀한 음악에 취한 잠이 채 깨기도 전에 청년(베토벤)은 슬그머니 일어나서 그 길로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밤이 새도록 써 놀은 것이 바로 그 유명한 월광곡이다. 


    X                                                           X                                                       X


오늘은 9월 6일 내 친정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신 날이다. 젊은 변호사  지망생으로 일본 동경대학법학과를 졸업하던 해 1945년 조국의 해방과함께 동경의 어느 로펌에서 트레이닝 변호사로 이제 막 7개월째 일하던 중에 그녀는 꿈을 접고 부모님(나의 외조부모님)을 따라서 대한민국으로 돌아와서 미쳐 그녀의 꿈을 펼치기도 전에 남편과 사랑하는 두 딸을 남긴채 병마와 싸우다가 그만 가고 말았다.


내가 이제 돌아갈 때가 가까워 오니 그녀를 나의 어머니로서 보다 한 인간, 꿈과 포부가 야무졌던 한 여성으로서 그녀의 짧은 인생을 되새겨 보며 현관을 열고 문밖에 나서서 하늘을 쳐다보니 불현듯 어머니께서 좋아하셨다던 베토벤의 월광곡이 생각이난다. 거기다가 어제는 부슬비가 내려서 보이지도 않던 달이 둥글게 떠 있으니 저절로 베토벤과의 연결이 된다. 보름달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늘이 음력으로 7월 16일이니까 아직도 달은 보름달처럼 둥근 모습이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베토벤을 무척 좋아하였던가 보다 .


내가 아직 어린시절 외할머니를 통하여 전해 받은 어머니의 법률사전 책갈피에 베토벤의 초상화가 무려 서너장이나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 사진 중의 하나는 베토벤초상과 함께 괴에테의 싯귀 가운데 나오는 귀절이 적혀있었다. ---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인생의 맛을 모른다.--- 라는 것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나의 막내고모와 많이 다투었던 일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당시 8살이었던 나는 인생의 맛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빵 한조각을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억지로 짜내어 가지고 빵을 눈 밑에 문질러 먹어 보았는데 아무 맛도 없더라고 고모한테 말하기를 괘에테와 그 시를 좋아했던 베토벤그리고 내 엄마, 모두 바보였나 보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객담은 그만 두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베토벤의 월광곡이나 독자들과 그리고 내어머니와 또 그 외딴집? 눈먼 소녀와 오빠와 함께 들어보련다. 우리의 생활 속에 음악은 여러면에서 치유와 희망, 위로, 용기 등을 선사하는 꽤 괜찮은 친구니까 이 달밝은 초가을 밤에 그 친구와 함께 지내 보는 것도 생활 속의 작은 휴식을 취하는 좋은 방법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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