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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원의 사회칼럼
2018.02.13 01:10
현실은 미완성된 과거를 완성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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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미완성된 과거를 완성해 가는 것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현재를 살아야 한다. 현재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실체이다. 인간은 과거의 경험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영화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현대 문명을 소개할 수 없는 것이다.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하는 비행기를 타고 천 년 전으로 갈 수 있다면 군주가 나와서 제를 올렸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모든 사람들은 신처럼 숭배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생명체는 현재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흔적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로 갈 수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있지만 그렇다고 미래로 달려 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하는 현실이다. 인간이 과거로 갈 수 없다 하여 과거로부터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온 것이며, 과거의 결실이다. 천 년 전에도 땅속에 매장된 지하자원은 풍부했다. 그럴지라도 그것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은 사람들이 무지함이 아니라 성장의 결실을 보지 못한 결과이다. 인간의 역사는 유기적이다. 봄에 씨를 뿌리면 여린 싹만 나온다. 결코 그 여린 싹에서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에 살았던 조상들은 어쩌면 여린 싹을 틔워내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키워낸 싹은 21세기를 넘어 22세기 문명을 바라보는 시대에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열매가 맺혀졌으며 현대인들은 그 열매로 편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을 의미 있게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를 바르게 해석한 결과라고 받아 들여야 한다. 과거를 바르게 해석해 내지 못해서 현실을 망치는 이들이 허다하다. 성공한 사람들의 과거사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험악했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한 사람들이다. 모두가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이 그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시대에 감동을 준 영화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iness, 2006)는 ‘크리스토퍼 가드너’ (Chris Gardner, Christopher Paul Gardner, 1954출생 미국, 크리스토퍼 가드너 홀딩스 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의 실제적 이야기를 영화다. 그의 과거는 최악의 상황 그 이하였다. 고등학교 졸업이 최고 학력이며 세일즈맨으로 명명하던 그에게 은행으로부터 파산 통지를 받게 된다. 믿었던 아내마저 떠나 버린다. 홀로 남겨진 아들을 데리고 공중 화장실에서 잠을 자며 물건을 팔러 다녀야 했다. 그러나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떠난 부인을 원망하지도 않았으며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지지 않았다. 아들에게는 희망을 말했다.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노숙자(Homeless)지만 희망 없는(Hopeless) 것은 아니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을 일컬어 태어난 것부터가 실패였다는 고백을 할 정도로 절대빈곤, 절대가난, 절대고통에 허덕였다. 그러한 아픔이 있었지만 결국 그의 간절한 열망은 금융권 CEO의 희망 메시지라 불리며 자신을 이름을 딴 인터내셔널 홀딩스를 창업하여 세계 금융에 그의 이름을 당당하게 올렸다.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범죄자들을 조사한 결과 아픈 가정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보편적 관례이다. 부모가 이혼을 하고 어렸을 때 매를 맞고 성폭행을 당하고 가정이 파탄이 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조사 결과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통하여 젊은이들일 일깨우고 있다. 아픔 없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아픔은 과거의 산물이다. 아픔이 클수록 현실의 삶을 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아프기 때문에 현실을 망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요, 자기 파괴자일 뿐이다. 성숙한 인격자라면 자기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세상에는 과거가 아팠기 때문에 그 아픔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은 바다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다. 아팠기 때문에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살아간다는 것은 궁색한 변명이며 자기게으름, 자기 악함을 정당화 하는 중병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아픈 만큼 성숙해 진다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이 말은 만고의 진리가 아닐 수 없다. 온실에서 자란 사람은 과거를 해석할 능력이 떨어진다. 고생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사람은 현실을 대하는 삶의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고생을 하지 않은 사람은 현실의 삶에 불평불만이 많다. 왕궁에서 태어나 왕이 된 사람은 인간의 처절한 삶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은 왕궁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왕궁에 사는 사람은 감사함을 망각한다. 더 재밌는 것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로마의 네로 황제는 일상의 삶이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더 재밌는 것을 찾다가 결국 위대했던 로마왕국을 멸망에 이르게 했다. 우리 민족은 절대적 빈곤이 허덕였기에 시집오는 새색시에게 남편 될 사람은 거짓말 같은 약속을 하게 된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게 해 주겠다’는 약속이다. 이 말 뜻은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없는 아픔의 역사가 담겨 있다. 여아들은 태어나 식솔을 줄이기 위해 하녀로 팔려갔던 시절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이다. 내 어렸을 때에도 동창 중에는 부잣집 시녀로 팔려간 친구도 있는 것으로 보면 고려시대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문명이 있었던 시기의 실제적 사건이다. 팔려간 소녀들은 평생 손에 물을 묻히고 살아야 했다. 온갖 굳은 일을 다 하며 살다 성년이 되어서는 주인집에서 정해준 남자 머슴과 혼례를 치른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역시 머슴이 되거나 간혹 주인집의 씨받이가 되기도 했다. 손에 물을 묻히지 않는다는 것은 주인집 마나님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결혼할 때 신부에게 약속을 하는 것이 최상으로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의미로 손에 물을 묻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손에 물을 묻히지 않는다고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네로 황제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삶의 가치는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삶에 가치가 없다면 행복을 소유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고통이 현실의 삶에서 좋은 영양제가 된다. 현실의 삶을 대충 살아가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 과거에 고통스러웠던 것을 떠 올리게 되면 자세를 곧추세워 현실의 삶에 정성을 쏟을 수 있게 된다. 가난했기 때문에 그 가난이 성숙한 인격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아픔이 나를 성숙하게 농익게 만들어 간다. 다시는 들추어내고 싶지 않을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고통이 오늘 나로써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는 아픔과 고통, 행복과 기쁨이 저장된 과거를 통과한 시간의 열매다. 과거의 미완성된 것은 현재라는 삶에서 완성되어 미래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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