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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와인칼럼
2018.04.09 00:08
[ 임주희의 살롱 뒤 뱅 ] #5 디오니소스의 축복, 산토리니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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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주희의 살롱 뒤 뱅 ] #5 디오니소스의 축복, 산토리니 와인 너무 파란 바다와 너무 하얀 건물. 시속 30킬로미터로 얼굴을 때리는 보슬비를 맞으며 검은 포도밭에 낮게 깔린 바구니 모양의 포도나무를 지나 계속 걸으면 붉은색, 초록색, 검은색 절벽 위로 산꼭대기까지 이어진 포도밭이 눈에 들어온다. 와인을 만나기 위해 찾아갔던 산토리니의 풍경은 몹시 기이했다. < 사진 1. 산토리니섬 > 산토리니는 그리스 최고의 화이트 와인 산지이자 달콤한 빈산토 와인의 고향이다. 아실티코Assyrtiko라는 고급 토종 품종과 함께 아이다니Aidani 및 아씨리Athiri라는 품종이 재배된다. 오늘날 이탈리아 디저트 와인으로 유명한 빈산토Vinsanto 와인은 사실 ‘Vino di Santorini(산토리니의 와인)’라는 뜻으로 산토리니가 원조이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달콤한 산토리니 와인을 가져다 전 세계에 팔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빈산토는 주로 레드 품종을 사용하는 반면 산토리니의 빈산토는 화이트 품종을 섞어 만든다. 산토리니섬을 걷다 보면 불에 그을린 듯 검은 밭이 종종 눈에 띈다. 화산 폭발의 잔재이다. 기원전 1600년대의 화산 폭발로 생겨난 산토리니섬은 척박하기 그지없다.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오지 않는다. 땅의 표면은 붉은색, 초록색, 검은색, 회색의 화산석과 석회암이 주를 이루고 심층부로 갈수록 점토질이 형성되어 있다. 산토리니의 포도나무는 건조한 기후에서 살아남으려 뿌리를 25m 이상 뻗어 겉흙 아래 점토에서 수분을 끌어당긴다. < 사진 2. 쿨루라 포도나무 > 쿨루라Kouloura(바구니) 혹은 스테파니Stefani(왕관)라 불리는 모양의 포도나무는 산토리니 와인의 상징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인 셈이다. 저절로 바구니 모양으로 자라는 건 아니고 겨울에 비가 온 후 수분을 머금고 유연해진 포도나무를 가지치기하면서 일일이 형태를 잡아준 것이다. 포도나무는 겨우 일년에 20cm 정도 자란다니 작고 어설퍼 보이는 쿨루라도 10살이 훌쩍 넘는다. 쿨루라의 둥글게 둘린 포도 가지는 가운데 맺힌 포도 열매의 바람막이 역할을 한다. 그 위를 덮은 포도나무의 잎사귀는 그늘막처럼 강한 햇살을 막고 포도의 수분을 보존해준다. 실제로 종일 마른 태풍이 몰아치는 듯했다. 몸이 휘청거리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 난폭한 바람을 견디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느라 포도나무가 참 고생이 많다. 기특하다. 산토리니는 1870년대 유럽을 강타한 포도나무 해충 필록세라의 영향을 받지 않아 포도나무의 평균 연령이 높다. 프랑스에서는 40년만 되어도 오래된 포도나무(Vieille Vigne)라는 표현을 쓰는 반면 그리스 나무들은 100년은 되어야 오래되었다는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섬 전체에는 크고 작은 와이너리들이 20여개 있다. 본 칼럼에서는 산토리니 와이너리의 큰형인 알기로스Argyros Estate를 소개해 볼까한다. 1903년에 설립되어 현재 4대째 와인을 만들고 있는 알기로스 와이너리는 산토리니에서 46 헥타르 규모의 가장 큰 포도밭을 경작하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 7가지 알기로스 와인을 시음했는데 먼저 화이트 와인부터 보자. 1 아이다니 Aidani 2017 아이다니 품종 100%로 만들었다. 굉장한 산도와 함께 달콤한 꽃 향이 예술이다. 단순하고 매력적이다. 귀엽게도 라벨에 물고기 모양이 그려져 있다. 가벼운 해산물 혹은 생선과 마시라는 친절한 가이드이다. 2 알기로스 산토리니 Argyros Santorini 2016 아씰티코 100%로 만든 기본 등급 화이트 와인이다. 묵직한 바다 향이 난다. 레몬처럼 톡 쏘는 산도와 더불어 잘 익은 패션 프푸트같은 과일 풍미가 있다. 생굴에 레몬즙을 짜서 백후추를 뿌려 같이 먹는 맛이다. 3. 에스테이트 알기로스 Estate Argyros 2016 100년 이상 된 포도나무로 만들었다. 높은 산도와 바다 소금 맛 미네랄은 여전하다. 프렌치 오크를 조금 사용하여 기본 등급에 비해 부드러운 질감을 가졌다. 타임 같은 허브향도 특징적이었는데, 섬 전체에서 재배되고 있는 각종 허브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단다. 묵직한 해산물 요리 및 가벼운 가금류와 잘 어울린다. 4. 에스테이트 알기로스 오크 발효 Estate Argyros Oak Fermented 2016 150년 이상 된 포도나무로 만들었다. 6개월 이상 프랑스 오크에서 발효시킨 화이트 와인이다. 아씰티코 특유의 산도와 미네랄에 굉장한 풀바디를 가졌다. 버터, 바닐라, 꿀, 견과류 향이 함께 잘 어우러진다. 화이트 와인이지만 각종 허브로 요리한 육류와도 곁들일 수 있다. 바다 한가운데 섬에서 만들었다고 바다 맛이 나고, 주변에 허브를 많이 키운다고 허브 향이 나는 와인이라… 이 강한 햇살에도 미친 듯이 높은 산도는 또 어떻고. 참 솔직하고 독특한 화이트 와인이다. 다음으로 달콤한 빈산토 와인을 시음했다. 빈산토 와인은 14일 동안 자연 건조해 당도를 높인 백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알코올 발효 후 나무통에서 장기숙성을 하는데 숙성기간에 따라 4년, 12년 그리고 최대 20년으로 나눠서 출시된다. 숙성기간 동안 나무통 안의 와인이 조금씩 증발하고 와인이 줄어든 양만큼 공기가 채워져 술이 천천히 산화되는데, 여기서 빈산토 와인의 독특한 풍미가 나온다. 산토리니 빈산토 와인이라고 원산지를 표기하려면 고급 품종인 아실티코 품종이 51% 이상 사용해야하며 그 외 아이다니, 아씨리 품종을 블랜딩한다. < 사진 3. 알기로스의 빈산토 와인 > 알기로스의 3가지 빈산토 와인 - 빈산토 4, 빈산토 12, 빈산토 20을 시음해 봤다. 전반적으로 높은 산도와 함께 캐러멜, 바닐라 향이 지배적인데 햇수가 올라갈수록 부드럽고 풍부한 디저트 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20년 숙성한 빈산토 와인은 바닐라, 버터, 스카치 캔디, 볶은 커피와 같은 복잡하고 힘 있는 풍미에 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엄청난 당도와 산도 때문에 100년이상 보관이 가능하다고 한다. 산토리니의 와인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이 섬에 가져다준 축복이라고 한다. 섬에서 만났던 따뜻한 산토리니 사람들만큼 그들의 와인도 솔직하고 음식 친화적이었다. 내 마음을 홀랑 뺏긴 이 디오니소스의 축복을 나만 누릴 순 없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산토리니 와인을 몇 병 쟁여 들고 프랑스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임주희 칼럼리스트 jhee12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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