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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의 프랑스이야기
2018.05.16 03:18
테오가 걸으며 이야기 하는 서사시와 같은 프랑스 - 잔다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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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 Jeanne D’ARC (1412-1431) 잔 다르크는 1412년 백년 전쟁의 전운이 전국을 소용돌이에 몰아 넣던 격변기에 프랑스의 북동부의 작은 마을 동레미에서 태어났다. 1420년 트르와 조약으로 프랑스 왕국은 부르고뉴와 영국이 분할하는 시기를 맞고 있었다. 면과 삼을 만들며 집안일을 돕던 잔다르크는, 15세에 천사장 미카엘과 까뜨린 성녀, 마그리뜨 성녀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였다. 영국 사람들을 프랑스에서 몰아 내고 샤를르 왕자를 렝스에서 대관식을 갖게 하라는 소명의 소리였다. 1429년 1월 동레미 사람들이 사준 갑옷을 입고, 말을 타고 검을 들고 왕을 찾아 길을 나선다. 당시에는 많은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기 위하여 왕을 찾아 가곤 하였다. 그 해 3월 쉬농성에서 잔느 다르크를 만난 샤를르 왕은, 새로운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여인을 시험하기 위하여 신하들 틈에 숨어 있는다. 잔느는 군중 가운데 왕을 찾아내고 그에게 신비한 신호를 전달하고 왕을 설득한다. 쁘와띠에 대학의 신학자들은 그녀의 신앙심을 확인하고 중년의 부인들은 잔느의 처녀성을 검사한다. 동시에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사들은 잔느의 도덕성을 확인하러 동레미 마을로 달려간다. 모든 시험을 통과한 잔느는 17세의 나이로 군대를 이끌고 1429년 4월29일 오를레앙을 해방시킨다. 그 해 7월 렝스에 도착한 잔느와 왕의 일행은 드디어 대관식을 갖는다. 왕에게 군사의 일부를 받은 잔다르크는 영국군대와의 싸움에서 연승을 거두며 영국인들을 프랑스 영토에서 몰아낸다. 꽁삐에뉴 전투에서 성문을 일찌기 닫아 버린 성주의 실수로 부르고뉴 병사들에게 사로 잡혀 영국군에 일만 리브르에 팔려가 종교 재판정에 섰다. 당시 전쟁의 포로는 인질로 간주되어 돈을 주고 사와야 하지만 프랑스 왕은 잔드르크 석방을위한 돈을 지불하지 않아서, 결국은 종교 재판정에 서게 되었고 « 하늘의 음성을 네가 직접 들었느냐 ? »는 꼬숑 주교와 소르본느 성서학자들의 심문에 기름 부음을 받지 못한 자가« 직접들었다 »는 대답을 했다는 이유로 마녀로 판결 받았다. 잔다르크는 루앙의 비외 마르쉐 광장에서 1431년 5월 30일 19세의 젊은 나이에 산채로 화형 당하였다. 마녀로서 화형당한 잔느 다르크의 도움으로 프랑스 왕실이 대관식을 치루고 국토를 회복했다면 프랑스는 자존감을 크게 훼손 당한 것이 된다. 이에 교회의 큰 딸인 프랑스의 정통성을 회복 시켜 주기 위하여 로마 교황청에 의해 잔다르크는 1919년 성녀가 된다. 성인 반열에 오른 잔다르크는 프랑스의 많은 성당 안에서 성상 조각이 되어 숭앙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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