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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원의 사회칼럼
2018.06.17 21:22
영화로 세상 읽기 (15):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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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세상 읽기 (15): 피아니스트 감독 로만 폴란스키 주연 애드리안 브로디 (피아니스트 블라덱 스필만), 토머스 크레휘만 (독일장교 호센필드) 개봉 2003년 1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마치 오늘날의 영화와 같다. 성경에 인물들의 일대기를 보면서 그 안에 감추어진 진리를 터득하거나 깨닫게 된다. 영화도 그와 같다. 영화의 내면세계에는 무궁무진한 인생의 묘미가 숨어 있다. <피아니스트, The Pianist> 내 마음에 감동으로 남겨진 영화 중 하나이다. 총 제작비 3천5백만 달러, 천명이 넘는 스텝과 연기자들이 빚어낸 작품이어서 감동의 깊이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유태계, 폴란드 음악가 ‘블라덱 스필만’에 대한 역사이기도 하지만 독일 나치의 잔학상을 소상하게 볼 수 있는 잔인하지만 감동적인 영화다.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주인공은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한창 타올랐던 바로 그때, 그가 연주하던 라디오 방송국이 폭격을 당하게 됩니다. 유대인 강제 거주지역인 게토에서 생활하던 가족들은 얼마 가지 않아 나치 세력이 확장되자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 강제로 타게 된다. 주인공은 지인들을 통하여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지만 죽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절박감의 날들은 계속된다. 전쟁이 끝날 무렵 폐허된 건물 더미에서 통조림 캔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보석을 얻은 것처럼 기뻐 뛰며 다른 도구들을 사용하여 캔을 열려 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은 캔은 굴러 떨어졌고 그것을 주우려 할 때 반짝거리는 독일 장교의 구두를 발견한다. 주인공의 얼굴이 굳어지며 죽음의 영화의 장면은 관객들을 불안과 죽음의 골방으로 집어넣기에 충분하다. 화면 가득한 긴장은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도 전달된다. 독일 장교는 짧게 묻는다. “여기서 뭘 하는가? 숨어 지내고 있는가? 직업이 뭔가?” 주인공은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독일 장교는 그를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오라 손짓한다. 폭격의 잔해로 무너진 틈에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피아노를 가리키며 아무 곡이든 연주해 보라 한다. 주인공은 조심스레 통조림 깡통을 낡은 피아노 위에 올려놓으며 장교의 총구에서 터져 나오는 총성의 두려움을 느끼며 떨리는 손과 마음으로 피아노를 연주한다. 화면 가득 장교의 얼굴과 피아니스트의 손과 그리고 폐허가 된 도시 전체를 비추어 주고 있다. 간혹 스필만은 홀로 숨어 있으면서 마음으로 피아노 연주를 하곤 하였다. 그것이 그의 유일한 살아 있음의 증거였기 때문이다. 배고픔, 추위와 고독, 연일 들려오는 총포소리와 가까스로 붙어 있는 목숨을 위협하는 독일군들의 수색, 그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피아노 연주 그것이 유일의 희망이었다. 손을 피아노 건반만큼 올려놓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흉내를 낸다. 그러나 영화이기에 마음의 연주는 선율을 타고 관객들의 귀에 아름다운 멜로디로 들려온다. 독일 장교 앞에서 피아노 연주, 파괴된 건물 더미, 포진의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피아노를 열고 처음 약간은 서툴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색함과 두려움은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장교의 마음과 온 세상의 얼어붙은 마음을 봄날 같이 녹게 만들어 간다. 그렇게 포진 속에서 장교 한 명만을 위한 연주회는 막을 내렸다. 장교는 묻는다. ‘여기서 숨어 지내느냐? 그곳을 보여 달라.’ 말없이 장교 앞서 숨어 지내는 다락을 보여 준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따다 만 커다란 캔이 들려져 있는 상태로……. 장교는 즉시로 그곳을 떠난다.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기에 그렇게 그곳을 떠난 후, 다시 찾아와 커다란 뭉치를 음악가에게 전달해 준다. 굶주림에 미친 듯 장교가 건네준 뭉치를 열어 본다. 커다란 빵 한 덩이, 잼, 그리고 장교와의 만남의 고리인 오프너……. 장교가 뒤돌아간 자리를 음악가는 한없이 쳐다본다. 인간 이하의 삶을 보여주었던 독일 나치의 모습이 아니라 사랑이 넘치는 인간미를 발견하게 된다. 독일 장교가 세 번째 음악가를 찾아온다. 장교는 피아니스트에게 말한다. ‘이제 조금만 버티면 당신은 살 수 있다.’ 러시아군이 이곳을 점령할 것이라고 알려 준다. 독일군들은 지금 후퇴하고 있다는 정보를 주고 다시 빵 덩이를 건네준다. 마지막으로 음악가의 이름을 묻는다. 혹이 나중에 라디오에서 들으면 기억할 수 있도록, 음악가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 준다. 장교는 자신이 입고 있던 독일장교 코트를 벗어 주며 그들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들의 삶을 향하여 안개와 같이 사라져 버진다. 음악가와 독일장교의 만남에서 장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피아니스트를 살려준 장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자 장교는 이렇게 대답한다. "하나님께 감사하시오 !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살기 원하신다." 영화는 끝이 난다. 전쟁도 끝이 난다. 나치 정권은 무너지고 세상에 자유가 주어진다. 스필만은 성공한 음악가로 대 공연을 하며 무대의 자막은 하늘로 모닥불 연기 같이 서서히 올라간다. 영화의 감동을 오래도록 지니기 위해 마지막 연주 장면을 자막과 함께 올려 보낸다. 거기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블라덱 스필만은 바르샤바에 계속 살다가 2000년 7월 6일 88세로 사망. 독일군 장교 이름은 윌리암 호센필드, 그는 소련군 포로수용소에서 1952년 사망한 것으로 전해짐> 감미로운 음악은 영화가 끝이 난 후에도 내 작은 마음에 굵은 선율의 냇물 되어 흐른다. 나치에 관한 영화가 그렇듯 그들의 잔학한 행동들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도록 유도하지만 피아니스트는 아름다움이 남겨진다. 장교에 대한 고마움을 갚기 위해 스필만은 후일 소련군 포로수용소를 찾아가지만 이름을 알 수 없었던 독일 장교를 만날 수는 없었다. 관객의 마음으로는 그들이 다시 만나 하나님의 주시는 우정을 쌓아가길 원하였지만 결국은 그들 각각의 길을 가게 된다. 주인공 독일장교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 모두 살기 원하신다. 인간의 세상은 한쪽이 발전하면 다른 한쪽은 그 이상의 파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영화 뷰티폴 마인드에 나오는 주인공 ‘존 내쉬’(John F. Nash)는 수학자이지만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된다. 그의 주장 역시 기업이 함께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균형이론" 에 관함 이었다. 한 민족이 살고, 한 나라가 살기 위해서 다른 약소민족의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이 지금껏 우리가 경험했던 사실적 역사의 현주소이다. 지금 이 시대가 원하는 것은 함께 살아야 하는 상생을 절감한다. 스필만과 독일장교가 공존하는 것처럼 과거에는 적이었지만 그러나 함께 어울러져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사상이나 철학, 혹은 윤리, 이 모든 것은 어느 한쪽을 위함이었다. 영화에서 잔학한 나치 군들을 표현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돌을 던지게 하지만 사실 그들은 그들의 테두리 안에서는 충성스런 군인일 뿐이었다. 윤리적 문제도 없으며 오히려 그렇게 잔학함으로 체계를 유지하는 일등공신이었을 것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마음을 바꾸어 이쪽 편에서 이해하려 한다면 그들의 행위는 어쩌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행위가 된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윤리 도덕, 철학과 사상은 한쪽을 옹호하도록 되어 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현실, 일본 영화 <배틀로얄> 이라는 잔인한 영화가 있다. 고등학생들의 입시 전쟁을 비유하는 잔인한 영화다. 학생들은 이유를 모른 채 무인도 섬에 갇히게 된다. 각자의 무기를 부여받고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살육의 현장이 된다. 마지막 한 명만이 살아 나갈 수 있기에 친구를 잔인하게 죽여야 하는 오늘의 학창시절의 현실, 낭만이 사라져 버린 모두가 상대의 적이 되어 버린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다. 한국에서도 <십억> 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무인도 섬에서 살아남는 자는 십억을 받게 되는 목숨을 건 게임 영화다. 세상은 함께 공존해야 한다. 어느 한쪽을 위함이 아니라 나와 반대되는 철학과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렇게 연합하여 하나 되는 것이 국가다. 모두가 꽃이 될 수 없고, 모두가 잎이 될 수 없고, 모두가 줄기가 될 수 없으며, 또한 뿌리가 될 수 없다. 흑과 백, 빛과 어둠, 소위 좌와 우가 함께 연합할 때 세상엔 정치적 이념의 차원을 넘어 선율이 울려 퍼지게 된다. 정치적 이념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선율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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