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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우와 함께하는 와인여행 (9)

와인 파리 2019(WINE PARIS 2019)행사 스케치


밤하늘의 별처럼 수 많은 와인들이 그들의 진가를 알아줄 구매자들에게 발견되기 위해  얌전한 새색시처럼 곱게 단장한 채, 시음대위에 다소곳이 서있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는 얼마나 많은 고통(과육이 으깨져 알콜발효-fermentation alcoolique와  젖산 발효-fermentation malolactique등을 거쳐 포도주가 되는 과정)과 불면의 밤을 견뎌야만 했을까


운이 좋아 좋은 떼루아(terroir)를 만나고, 천만 다행으로 병충해를 입지 않고, 서리와 눈을 다 이겨내 마침내 질 좋은 한 송이의 포도로 태어났다 해도 포도 수확단계에서(Les vendanges)사람의 부주의에 의해 의도치않게 뭉개져 최종적으로 양조 과정에서 선택되지 못한다면, 그 많은 인고의 시간도 말짱 도루묵인 것을.


WINE PARIS 2019.jpg마스터 클라스(Master classes).jpg


수년 전, 보르도와 가까운 생테밀리옹(Saint-Emilion)에서 양조 실습을 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포도를 손으로 수확한 후, 달팽이, 불필요하게 크고 단단한 나뭇가지같은 이물질들을 재빠르게 손으로 집어내는 과정을 (trier)거친후 포도 알갱이들은 으깨진다


이런것들은 와인의 맛을 부정적으로  떫게 하기때문에 제거되어야 한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멀쩡한 포도 알갱이들이 불순물과 같이 손에 잡혀 버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인간인지라 완벽하지 않고, 시간적 제약도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반면, 약간은 비실비실한, 그다지 크지 않은 포도 알갱이들이 우연에 의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무사히  압착에 들어가는 경우를 보면서, 잘난 포도송이라고 해서 다 양조에 쓰이는 것도 아니고, 또 좀 못났다 한들, 포도주로 다시 태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겸손히 선택을 기다릴 뿐, 선택 받지 못해 버려진다 할지라도, 슬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조용히 땅에 스며 들어 그렇게 한 시절을 견디다보면, 언젠가는 또다시 탐스러운 포도로 다시 태어날 날이 올 것이다

비록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시음을 기다리는 와인들.jpg

 


도대체  뭘 먼저 시음해야 하나. 진열대위에서 이내 행복한 고민에 빠져드는 그 순간.

이곳은 파리(Paris)!  프랑스의 심장이, 와인의 심장으로 지금 거듭나려 하고 있다.그렇다


2019 211일부터 2 13일까지 와인 파리2019(WINE PARIS 2019), , 와인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전문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인도 참가 가능) 굵직한 와인 시음 행사가 뽁뜨 드 베르사이유(parc des expo de la Porte de Versailles )에서 열렸다


빈 엑스포(VINEXPO),프로바인(Prowein), 빈이탈리(Vinitaly )에 버금갈 정도로  큰 시음 행사로, 비니수드 (Vinisud)와 비노비지용 파리(Vino Vision Paris)을 합쳐서 진행되었는데, 전자는 주로 남쪽 지중해 지역의 와인, 즉 론 일프스(Rhône –Alpes), 프로방스 알프스 꼬뜨 다쥐르( Provence-Alpes-côte d’Azur), 코르시카(Corse), 발레 뒤 론(La vallée du Rhône ), 등을 포함하며, 그르나슈( Grenache), 까베르네(Cabernet), 메를로(Merlot), 시라(Syrah), 칼라독(Caladoc), 막슬랑( Marselan)등의 적포도를 사용하고, 비오니에(Viognier), 샤르도네(Chardonnay)품종의 백포도를 이용하여 양조를 한다


짝수해에는 프랑스 남부의 도시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개최되며, 작년 2월에 그곳에 다녀온 후, 빨레트에 풀어놓은 여러색의 물감처럼 다채로운 프랑스 남쪽 지방의 산뜻한 와인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런 전시회에서 생산자와 직접적인 교감을 통해 시음해보는 와인의 풍미는,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보르도 소믈리에 학교와 과학(화학이나 생물)을 기반으로 배우는 시음학교에서 만났던 와인과는 전혀 다른 좀 더 살뜰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비노비죵 파리(Vino Vision Paris)는 주로 북쪽지역의 와인들을 다룬다.즉 루아르(Val de Loire),부르고뉴(Bourgogne),알자스((L’Alsace), 상파뉴(Champagne), 사부아(La Savoie), 쥬라(Le Jura), 뷰게이(Le Bugey), 로렌(Vins de Lorraine),  그리고, 미국 오레건주의 와인들,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등의 국가들도 주로 참가한다.

 

이번 파리 시음회에는 이밖에도 전통적인 양조 형태에서 약간은 논란거리를 내포하고 있는(포도를 심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부터 천체의 움직임을 중요하게 보고, 때론 약간의 미신적인 요소, 예를 들어 땅을 기름지게 만들고 좋은 포도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소의 뿔을 잘라 땅에 묻는다든가 하는 유의 행동들) 비오디나미방식(biodynamique) 에 따라 와인을 제조하는 24개의 포도원이 참가하였다.(프랑스 22, 이탈리아 2) 


이 방식은 와인의 산화를 방지하고, 보관을 용이하게 하기위해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SO2, 즉 이산화황 혹은 아황산의 사용을 소량으로 하며, 그밖의 다른 화학물질도 많은 사용을 자제한다.  


SO2의 사용에 따른 효과를 좀 더 쉽게 설명하면, 파스텔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그 후 픽사티브 스프레이를 뿌린 후 액자에 보관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파스텔의 입자가 날아가 그림의 색이 바래는 것을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방지할 수는 있다. 아무튼 비오디나미방식은 자연과 떼루아의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 와인을 만들자는 철학이 바탕이다.  이에 더 나아가 오가닉(Organic) 와인(Organic)이나 네츄럴 와인(Natural)은 항산화제의 사용을 더 강하게 배제한다. 이런 생산방식은 21세기 들어와서 하나의 경향이 되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번 시음회에서 비오디나미와인, 오가닉 와인들을 적지 않게 시음하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단 이런 방식의 와인들에서 맡을 있는 일차적인 향은 전형적인 포도의 향이라기보다는 사과가 약간 갈변하여 뭉개진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와인이라기보다는 사과로 만든 낮은 알콜함량의 씨드르( Cidre) 냄새라고나 할까? 더불어 시골길을 걸을때, 논밭에서 나는 냄새들도 약하게 나마 느낄 있다.


전자는 알콜(ethanol) 산소와 결합하여 (Oxydation)  에타날(ethanal)이라는 물질이 된데서 기인한 것이고, 후자의 경우도 역시나 일반적인 와인에 비해 항산화제를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의 페놀 화합물(ethyl4 phénol , éthyl4 gaiacol ) 뉘앙스를 띄는 것은 어쩔수 없다


다만 신기한건 오놀로지(Œnologie –와인을 다루는 학문)이론상, 와인의 결함이라고 정의되는 이러한 냄새가 부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있다는데 있었다.


부르고뉴지방에서 오가닉와인을(Organic ) 만들고 있는, 검고 긴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편안한 옷을 입은채 시종 일관 순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하던, 젊은 생산자 띠에리 모로(Thierry MOREAU)씨의 산화방지제를 전혀 쓰지않은 알리고떼(aligoté)품종으로 만든 백포도주의 시음은 비오디나미, 오가닉 와인에대한 이해도를 높여주었다


그는 말한다. « 양조(vinification )? 저는 그런거 학교에서 배운적 없어요, 그건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터득되는거죠. 자연의 변화에 귀를 기울이며, 음력(le calendrier lunaire)에 의거해서 작업을 하죠.  우린 알콜발효를 촉진시키기위한 인위적인 효모작업(levurage)따윈 하지 않아요. 산화 방지제요 ?(Soufre) 그건 고객님이 부탁하시면 어쩔 수없이 조금 넣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넣지 않죠. »

 

와인 여덟병에  담긴 프랑스의 역사.jpg


와인 생산자들과 이런 직접적인 만남과 대화 이외에도, 체계적이고 아카데믹하게 와인을 알아 갈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이른바 크고 작은 마스터 클래스. 아픈 다리도 쉬어가고, 열심히 공부해볼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이번 행사중 총 여섯번의 마스터 클래스를 수강하였다.


한 강좌당, 보통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이 소요되는데, 인기있는 마스터 클래스는 일찍 신청 마감이되고, 눈치작전도 상당하다


기억에 남는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여덟 프랑스 와인에 담긴 역사(L’histoire du vin français en 8 vins)>라는 주제로, 보르도에서 유명한 와인강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파니(Fanny Darrieussecq)씨의 강연이 단연코 높은 인기리에 이루어졌다


로마시대 남프랑스에서 시작된 프랑스 와인의 오랜 전통이 동쪽 론 골짜기를 거쳐, 중세 부르고뉴 샤블리에 이르고 다시 북부로 올라가 수도사들에의하여 샴페인의 발전을 가져오고, 절대 왕정시대 루아르의 고성들을 중심으로 많이 소비되었던 슈낭 품종의 와인을 거쳐 알자스 리즐링, 보르도 생테밀리옹지역, 마지막으로 현대에 시대 상황과 아오쎄 보졸레(AOC Beaujolais , Moulin à  Vent)로 종결되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온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


그 외에도, 남프랑스 피투(Fitou)지방의 적포도주를 주로 만드는데 쓰이는 까리냥(Carignan )품종에 대한 고찰이라던가, 맛보기 힘든 지역, 예를들어 꼬스티에흐 드 님(Costière de Nîmes )같은 남프랑스 지역와인의 비교 시음, 결정 편암으(schiste)로 이루어진 토양에서, 와인의 다양성이 어떻게 표출되는지 설명을 듣고, 시음으로 확인했던 시간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터키 와인들.jpg

 

이렇게 대규모로 준비된 시음회의 또다른 잇점은, 일부러 노력해서 찾아가지 않는한 맛볼 수 없는 희귀한 와인들을 마음껏 시음해 볼 수 있다는데 있으리라


« 형제의 나라 »라는 별칭에 알맞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하나하나 다 설명을 해 주며 따스하게 맞아 주었던, 터키에서 온 유일한 하나의 와이너리 주인장 부부, 생전 들어본적도 없고, 맛본적도 없는 희귀한 터키의 와인을 맛보며, 그 독특한 아로마와 부케는, 오래전, 이스탄불로 비행갔을때, 므스르 차르슈라고 불리던 향신료 시장에(spice bazaar) 서 있던 나의 모습을 소환해 냈다.

 

보르도에서 왔다는 와이너리의 한 주인장은, 중국시장의 중요성이 워낙 커져서, 중국인의 기호에 맞추려고 와인의 에티켓까지 바꿨다며, 나에게 의견을 물었다


동양인의 입장에서 중국인들의 취향을 잘 살린것 같은지.


그러면서, 한국L호텔에 들어와있는 프랑스 레스토랑 P.G 에서 자기가 만든 와인이 서비스 됐었는데, 오래전 일이고, 와인 중개상을 못찾아 지금은 납품하지 않는다며, 혹시 나에게 그쪽 일을 해 볼 생각은 없는지 진지하게 묻는다. 한국 시장에 관심이 많단다.


중국 시장을 목표로 제작된 에티켓.png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말한다.

단순하게, 고작 옷깃만을 스치는 인연을 만드는데에만, 억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수 많은 와인들중, 내 입술을 스쳐간 와인들은 도데체 나와 얼마의 시간을 돌고 돌아 인연이 된 것일까?

 

와인 파리 2019 시음장에서 만난 , 수많은 와인과 사람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인연이라는 단어를 다시금 되뇌어 본다.



(다음에 계속)


서연우

유로저널 와인 칼럼니스트

메일 : eloquent7272@gmail.com


대한민국 항공사. 항공 승무원 경력17년 8개월 .

이후 도불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후  

와인 시음 공부ㆍ미국 크루즈 소믈리에로 근무

여행과 미술을 좋아하며, 와인 미각을 시각화하여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수있는 방법을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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