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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9.02.25 03:19

오을식의 장편연재소설 (제100회)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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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연재소설 (제100회) - 바람의 기억

7. 꽃비의 계절

“어머나, 하늘 좀 봐. 무슨 별이 저리 많다니? 대박이다! 저거 다 세려면 눈 빠지겠는 걸.”
영미의 탄성에 정아가 시선을 위로 올리며 중얼거렸다.   
“눈만 빠지면 다행이지. 호주의 어느 대학에서 연구한 게 있는데, 우주에 있는 별의 숫자는 지구에 널려있는 모래의 숫자보다 무려 7배나 많대.”
“모래알보다 많다고? 거짓말! 저 정도는 느긋하게 맥주 까면서 세도 새벽 전에 끝나겠다.”
영미가 목소리를 높이자 어머니도 하늘을 쳐다보았다. 
“물론 지금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 세면 그럴 수도 있겠지. 약 3천 개 정도는 눈으로 볼 수 있다니까. 근데 우주에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숫자의 별이 있다고 하잖아. 그걸 다 세려면 쉬지 않고 1초에 하나씩 세도 2천조 년이 걸린대.”
“억년도 아니고 조년이라고? 와, 그건 아무래도 사기 같다.”
“사기 아냐. 더 재밌는 건 뭔지 알아? 지금 눈에 보이는 별들은 유령이나 다름없어. 수십 년에서 수억 년 전에 출발한 빛이 이제야 지구에 도착한 거니까. 그래서 빛이 달려오는 사이에 이미 소멸된 별도 많대. 그러니 일종의 유령이지.” 
“말도 안 돼. 그럼 해나 달도 유령이란 말이야?”
“태양이나 달은 별이라고 부르지 않아. 아무튼 우리가 매일 보는 태양도 바로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약 8분 전 거야. 빛은 진공상태에서 약 30만km를 이동하잖아.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38만km,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달의 약 1초 전 모습을 보고 있는 거지.”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어머니, 따님이 이리 쓸데없이 유식하다니까요.”
영미가 어머니 얼굴 가까이 턱을 내밀고는 투덜거렸다. 어머니가 영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영미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난 여기서 어머니랑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야 대환영이지. 여기서 산다면 내가 중매도 서마. 아들 딸 낳으면 내가 다 거둬줄 거고.”
“어머나 정말요? 정아야, 어때, 우리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정아가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중매? 우리 엄마가 뭘 믿고 이리 큰소리를 치실까?”
영미가 정아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소곤거렸다. 
“따로 봐 둔 신랑감이 있으신 모양이지.”
두 사람의 시선이 어머니 입으로 쏠렸다. 
“짚신도 다 짝이 있잖니. 그러니 눈만 크게 뜨면 어딘가에 있다. 너무 멀리에서 보물만 찾으려 하니까 힘든 거지.”
그때 저쪽 신작로에서 자동차가 헤드라이트 불빛을 흔들며 달려왔다. 불빛이 커브를 돌아 동네로 접어들더니 거침없이 정아네 집을 향했다. 저거 기남이 차 아닌가? 정아가 일어나 엉덩이를 털며 중얼거렸다. 정아네 집 마당으로 들어간 차가 헤드라이트를 껐다. 정아가 앞장 서 집에 도착했을 때 기남은 트렁크에서 꺼낸 봉지를 마루에 내려놓고 있었다.  
“도둑이신가요?”
정아의 말에 기남이 소스라쳤다. 막 마당으로 들어서던 어머니와 영미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남자가 왜 그렇게 간이 작아요?”
이어진 영미의 타박에 기남이 손으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봉지에는 사과와 배, 귤, 바나나가 들어있었다. 가겠다고 차로 가는 기남을 어머니가 붙잡았다. 밥상이 급히 차려졌다. 점심을 늦게 먹어서 밥 생각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던 기남은 그러나 곤드레나물밥 두 공기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기남이가 밥을 먹는 내내 어머니는 옆에 앉아 찬을 챙겼다. 물을 가져오던 영미가 기어이 한마디 했다. 
“아이고, 어머니 표정이 꼭 백년손님 맞이한 장모 같네. 사위를 눈에 넣고 어쩔 줄을 모르는 그런 모습이셔요.”
어머니가 팔자주름을 깊게 파며 이를 드러냈다. 물을 마시는 기남의 귀밑이 붉어졌다. 정아는 그저 담담한 표정이었다. 과도를 건네받은 영미가 봉지에서 사과를 꺼냈고 정아는 커피포트에 전기를 먹였다. 
“내일 마침 휴무인데 혹시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말씀하세요. 멀리도 괜찮습니다.”
시선이 모두 기남에게 쏠렸다. 
“정말이에요. 말씀만 하세요. 장거리가 어려우면 가까운 곳도 볼거리 많습니다. 아우라지도 이젠 관광지에요. 레일 바이크도 생기고 풍경열차도 다니고.”
“레일 바이크요?”영미가 물었다.
“철로에서 타는 자전거 말이에요”기남이 대꾸했다. 
“우와, 그거 재밌겠다. 아저씨, 우리 그거 타요!”
은지도 귀가 번쩍 열리는 모양이었다. 
“그거 너무 위험하지 않아? 기차라도 마주치면 어쩌려고?”
정아의 말에 기남이 그럴 일 없으니 걱정하지마라고 다독거렸다. 정아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는지, 기남이 추가 설명을 이어갔다. 레일바이크는 탑승객이 페달을 이용해서 철도 레일 위를 시속 15~20km의 속도로 운행할 수 있게 제작한 수레자전거로, 예전 정선선의 종착역인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약 7km 구간을 달린다는 것이었다.  
“스릴도 느끼고 아름다운 경치도 구경하고 운동도 하고 일석삼조네.”
영미가 거들었다.   
“7km면 먼 거리인데, 힘들지 않을까?”
어머니를 바라보며 정아가 거듭 걱정했다.  
“함께 4인용 타면 되지. 전혀 힘들지 않아, 구절리역이 아우라지역보다 높아서 내리막길이거든. 그리고 다들 허벅지가 튼튼해 보이는데 뭐.”
영미가 발끈했다. 
“어머, 보기보다 엉큼하시네. 그새 내 허벅지까지 봤나봐.” 
기남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다음 날 아침 기남의 차를 타고 아우라지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역으로 갔다. 레일바이크는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내려오는 편도여서 갈 때는 풍경열차를 타야했다. 
평일이고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역 주변은 한가했다. 기남이 열차 운행시간을 알아보러 간 사이 정아는 역사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사는 그대로였지만 주변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주차장 옆으로는 독특한 형태의 카페가 들어서 있었는데, 얼른 봐도 아우라지 여울에서 산란하는 어름치를 형상화한 건물이었다.    
열차가 오려면 아직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어머니가 줄배 구경을 가자고 제안했다. 줄배는 강 양 편에 맨 밧줄을 이용해 오가는 일종의 나룻배였다. 지금도 손님이 있으면 운행을 한다고 했다. 어머니가 가이드를 자청했다. 강에 도착하니 마침 건너편에서 줄배에 두 사람이 오르고 있었다.  
“전에는 저 배가 저쪽 마을로 오가는 유일한 교통편이었지. 지금은 물이 말라서 이리 볼품이 없지만 전에는 정말 운치가 있었어. 아 참, 그리고 여기가 바로 너희 증조부께서 땟목을 이끌고 서울로 출발했던 곳이기도 하단다.”
“그럼 그 할아버지께서 객주의 어린 색시를 데려온 기착지이기도 하겠네요?”
정아가 얼른 영미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마무리 될 즈음 아까부터 보이지 않던 기남과 은지가 손을 잡고 달려왔다. 은지 손에 솜사탕이 들려있었다. 뛰어오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를 향해 영미가 기어이 한마디 했다.  
“어머니, 솔직하게 말씀하세요. 기남 씨 사위 삼고 싶으시죠?”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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