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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9.07.16 01:03

오을식의 장편연재소설 (제118회)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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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연재소설 (제118회)
바람의 기억
                                                 

9. 새장을 열다

“그날 내가 좀 일찍 끝내고 쉬고 싶어서 일부러 초반부터 오버를 했어. 근데, 하하하, 지금 생각해도 너무 웃겨. 이 새끼가 일이 끝나자마자 막 성질을 부리는 거야.”
“왜, 네가 뭘 잘못했어?”
“하하하, 그게 아니라, 정말 웃겨. 글쎄 벌써 축 늘어진 자기 고추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막 후려치는 거야. 마치 따귀를 때리듯이. 오사카 톤으로 욕을 해대면서.”
“정말? 걔가 뭘 어쨌다고? 아, 혹시 사정을 너무 빨리 했나?”
“아니야. 꼽고 족히 50분 정도는 했으니까. 나도 홍콩 근처까지 갔었거든.”
“에고, 징그러. 근데 왜?”
“들어 봐. 더 웃기는 건 두 번째 할 때였어.” 
“또 했어?”
“응, 쉬었다가. 호텔 지하 빠로 내려가서 술 몇 잔하고 다시 시작했는데, 하하하, 글쎄 하다가 문득 눈을 떴는데, 느낌이 쌔하면서 뭔가 이상한 거야. 실눈으로 보니 오른손에 뭔가가 있더라고. 뭘 쥐고서 그걸 엄지로 자꾸 누르고 있었어. 그래서 저게 뭐지 하고 자세히 보았지. 하하하. 그게 뭐였을 것 같니?”
영미의 물음에 정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바로 계수기였어. 왜 있잖아, 숫자 셀 때 누르는 기구. 글쎄 그걸로 숫자를 세고 있더라니까. 용두질 한 번에 그거 한 번씩 누르는 거지... 그게 무슨 기록경기라고 말이야. 하하하.”
영미는 제 말에 취해서 자지러지는 중이었다. 정아도 배를 쥐고 가꾸러졌다.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지? 끝나고 또 때렸어?”
정아가 물었다. 
“아니야, 계수기를 확인하고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어. 미친놈처럼 막 손뼉을 치면서. 그러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늘어진 물건을 쓰다듬었지.”
“뭐야, 무슨 신기록이라도 세운 거야?”
“오, 너 천재다. 바로 그거였어. 역대 최고 기록이 나왔다고 자랑을 했거든. 근데 더 웃기는 건 따로 있어. 나올 때 따로 팁을 2만 엔이나 챙겨주지 뭐야. 근데 그 팁 명목이 뭔지 아니? 글쎄 그게 신기록 수립 포상금이라는 거야.”
“와, 땡잡았구나! 덕분에 홍콩도 가고 포상금도 받고.”
순간, 영미가 갑자기 자세를 낮추며 턱짓으로 승강기 쪽을 가리켰다. 작달막한 체구의 여자가 막 승강기를 빠져나와 두리번거렸다. 
“저기 마담 언니지? 맞잖아. 내가 뭐랬어, 온다니까.”
그새 몸을 튼 영미가 잠금장치를 당기며 말했다. 
“너는 여기 있어. 내가 양해를 구하고 올게.”
영미가 허리를 굽혀 속삭였다. 
장 마담이 영미를 이끌고 승강기 옆 구석으로 갔다.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영미가 이편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처음에는 영미가 설명을 하고 장 마담이 듣는 모양새였다가 시간이 지나자 반대 상황이 되었다. 정아는 심호흡을 하며 두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일을 해야 한다. 부디 장 마담이 영미의 대타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여주기를!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웃고 떠들게 아니라 장 마담을 설득시킬 묘안을 짜둘 걸 그랬다. 정아는 두서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길어지고 있었다. 팔짱을 낀 채 말을 듣고 있는 장 마담의 표정에 뭔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영미의 시선도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 모습은 영미가 뭔가 자신이 없을 때 보이는 습관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오늘 일은 틀린 게 싶은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밀려들었다. 
혹시 일이 틀어지게 된다면 영미에게 정말 미안하다. 이 일 때문에 영미가 앞으로 일감을 받는데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어제 낮에 딸아이의 전화를 받고 속을 끓이다가 결국 영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병세가 나빠진 것 같아 시골에 다녀와야겠다고. 그런데 수중에 돈 한 푼 없노라고. 그동안 일을 못한 데다 그나마 몇 푼 모아둔 걸 미친개에게 털어가버렸다고. 영미가 난감해했다. 자기도 엊그제 아버지 양로원비 내고 동생 영치금 보내고 나니  여유가 없다고. 발을 빼던 영미가 문득, 정 그러면 자기 일을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기쁘게 받은 일이었다.   
마침내 결론이 난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차를 향해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정아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장 마담이 그대로 있으라고 손짓했다. 영미는 운전석에, 장 마담은 영미의 뒷자리에 앉았다. 정아가 몸을 돌려 정식으로 인사했다. 장 마담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죽 쑤고 있지?”
“그렇지요, 뭐. 어디 저만 그러겠어요?”
정아는 부러 담담한 어투로 답했다. 
“맞아, 너나없이 어려워. 견디지 못하고 벌써 잠수 탄 애들 많다.”
장 마담이 다시 말을 이었다.
“사정 얘기 들었다. 그런데 오늘 건은 아주 지랄 같은 일이야. 아무나 해낼 수 없어. 그래서 이렇게 망설이고 있다.”
“제게 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대신...”
영미가 불쑥 내 말을 자르고 나섰다.
“오해하지 마, 언니 말이 맞아. 넌 견디지 못할 거야.”
정아는 앵돌아진 눈으로 영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표정이 심각했다. 정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두 사람은 이미 일감을 주지 않기로 결정을 한 모양이었다.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영미가 두 손으로 관자노리를 누르고는 운전대에 이마를 맡겼다. 
다시 말을 꺼낸 것은 장 마담이었다.
“그 놈이 왔다, 야마다!” 
정아가 뜨악한 표정으로 장 마담을 바라보았다.  
“아마 너도 이름은 들어봤을 거야. 나고야의 야마다!”  
정아의 시선과 장 마담의 되록거리는 눈길이 마주쳤다. 영미가 고개를 절도 있게 끄덕였다. 야마다, 나고야의 야마다. 정아는 입안에다 이름을 굴려보았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지 마치 잘 아는 것처럼 느껴지는 인물. 그는 다찌라면 누구나 두려워 한다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현역 때 나도 딱 한 번 맞장을 떴다. 내가 그 때 하룻밤에 삼킨 콘돔이 8개였어. 사흘간 집밖 출입을 못했지. 하혈 때문에.”
장 마담이 거칠게 도리질을 하며 말했다. 
“나도 한판 붙은 적이 있어. 나는 나흘간 일을 못했어.”
영미가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변태야?”
“아니, 딱히 막가파식 변태라고 할 수는 없지. 따로 이상한 약물이나 기구를 쓴다든지, 시종일관 후장질을 한다든지 그런 건 아니니까.”
라이트 불빛이 주차장 벽을 타고 돌아 곧 우리 쪽으로 쏟아졌다. 정아와 영미는 위험을 직감한 오소리처럼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장 마담은 아주 꼿꼿한 자세로 라이트 불빛을 견뎌냈다.       
“그놈인 줄 알았으면 못하겠다고 미리 잘랐을 텐데, 가명을 대고 접근한 바람에 대처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안 하겠다고 통보하면 돼. 우리에게는 이제 성매매특별법이 있잖아. 그걸로 거절하면 되니까.”
“정말 못할 일이야. 아무리 돈이 궁해도 하지 마. 내가 놈에게 당해봐서 알아.”
영미가 손을 잡고 애원조로 말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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