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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의 음악일기
2020.09.15 23:53
가을바람, 가을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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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의 음악일기 열한 번째 이야기 가을바람, 가을향기 ((사진 = Pixabay 제공)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 햇빛과 손잡은 눈부신 바람이 있어 /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 가까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 견뎌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 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 향기로운 모든 말 깊이 접어두고 / 침묵으로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 가을 바람이여 하늘 길에 떠가는 / 한 조각 구름처럼 아무 매인 곳 없이 / 내가 님을 뵈옵도록 끝까지 / 나를 밀어내는 / 바람이 있어 나는 / 홀로 가도 / 외롭지 않네 - 이해인 <가을 바람>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 Antonio Vivaldi 'L'autunno' from <Le quattro stagioni> Violin Concerto in F major, op.8 RV 293 가톨릭 사제이자 이탈리아 작곡가인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는 1725년에 작곡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화성과 창의의 시도> (Il cimento dell'armonia e dell'inventione) 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12곡 중 첫 네 곡으로, 후에 사계절을 묘사한 이 네 곡만 분리해 '사계'로 불리게 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3악장씩으로 구성되어 있고, 비발디가 직접 썼을 것이라 추정되는 짧은 시 소네트가 곡마다 쓰여 있다. 안토니오 비발디 <화성과 창의의 시도> 표지 제1악장 - 농부들이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나누며 술과 춤 잔치를 벌인다. 제2악장 - 노래와 춤이 끝난 뒤 시원한 가을밤이 찾아들어 마을사람은 느긋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제3악장 - 이윽고 동이 트면 사냥꾼들이 엽총과 뿔피리를 들고 개를 거느린 채 사냥을 떠나 짐승을 뒤쫓는다. 곡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소네트 이외에도 2악장에 '잠에 빠진 술고래' 같은 설명을 넣어 곡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사계> 중 '가을' Franz Joseph Haydn <Die Jahreszeiten>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처럼 사계절을 노래한 작곡가들이 많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곡 '사계', 피아졸라의 '사계', 그리고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사계>. 하이든의 <사계>는 총 39곡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4부로 나뉘어있다. 영국 시인 제임스 톰슨의 시 '사계' 독일어 버전을 대본으로 했다. 계절이 변하며 자연의 풍경도 바뀌고, 일상의 모습도 자연스레 변한다. 하이든의 <사계>에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농부들의 삶, 젊은 농부의 사랑,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감사가 담겨 있다. 인간의 일대기 역시 사계절에 대비 시켜, 춥고 두려운 겨울을 지나 따스한 봄에 이르는 그 길을 음악으로 그렸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 성실히 일상을 살고 그 안에서 보호와 축복을 누리는 인생이 하이든이 그려낸 사계절인 것이다. 천사, 예언자 등이 등장하는 일반적인 오라토리오와는 달리 농부 시몬, 시골 청년 루카스, 그리고 시골 아가씨 한네가 주인공이다. 하이든의 <사계> 중 가을은 농부의 춤, 사냥의 기쁨, 새로 담근 와인을 마시며 벌이는 잔치, 젊은 연인의 사랑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열매가 시들고, 세월이 흘러도, 나의 사랑만은 영원하다'는 루카스의 노래가 가을의 정취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프란츠 슈베르트의 <가을> Franz Schubert <Herbst> D.945 높고 푸른 하늘, 따듯한 햇살, 기분 좋은 바람. 누군가에게 '가을'은 풍요로움으로 기억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쓸쓸함과 고독으로 기억될 수 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전혜린 작가는 '하늘은 회색이었고 불투명하게 두꺼웠다. 공기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힐 물기에 가득 차 있었고 무겁고 칙칙했다.' 라고 본인이 겪은 독일의 '깊은 가을'을 묘사했다. 회색 안개로 가득 차 울고 싶게 막막한 어두운 가을... 슈베르트가 살아간 가을날도 그러했나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828년에 쓴 가곡인 '가을'은 지독히 서글프고 고독하다. 싸늘한 바람 불어오고 / 그렇게 가을은 차갑구나 / 초원은 황량하고 / 숲은 벌거벗었네 그대 화려했던 들판! / 푸르름을 벗어던졌네! / 그렇게 시들었으니 / 더불어 인생도 시드는구나 구름은 떠돌고 / 그렇게 쓸쓸하고 정처 없이 / 별들이 사라져가네 / 푸른 하늘에서! 아, 별들이 / 하늘에서 멀어질 때 / 그렇게 사라지리 / 삶의 희망도! 봄의 나날들아 / 장미로 장식한 / 내 사랑하는 이에게 / 사랑한다 말했을 때! 언덕 너머로 / 차갑게 바람은 불었지! / 그렇게 시드는구나 / 사랑의 장미도 시인 루트비히 렐슈타프의 시를 가사로 해 쓴 곡 <가을>에는 Mässig (절제하며) 라는 빠르기 말이 붙어있다. 고독하고 쓸쓸한 마음이 가을바람에 동요하듯 오른손은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트레몰로를 연주한다. 불안한 마음처럼 일렁이는 트레몰로 아래, 왼손 베이스는 한음 한음 차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며 걸음을 서성댄다. 스치는 바람 향기에 생각이 깊어지는 가을이다. 가을은 열매를 맺고, 결실을 보는 계절이라 하건만, 왜 자꾸만 마음 한켠이 헛헛하고 공허해지는 것인지... 코로나 사태와 태풍 등으로 유난히도 힘겨운 시간을 살아내고 가을을 맞이했다. 비발디가 연주한 반짝이는 가을 햇살, 하이든이 노래한 감사한 가을의 삶, 슈베르트가 가슴에 품은 지독한 가을의 쓸쓸함. 수천수만 가지의 사연과 감정을 담고 살아가는 각자의 가을. 때로 그 가을날의 한가운데 서 있는 내 모습이 빛바래 나뒹구는 낙엽 같아 보여도, 그 낙엽은 어느 날 싱그러움 가득한 푸르름이었고, 어느 날 잔뜩 움츠린 채 한겨울 눈보라를 견뎌낸 강인함이었다. 가을바람과 가을향기로 기억될 9월의 한 가운데에서 음악 칼럼니스트 여명진 크리스티나 mchristinay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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