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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20.09.28 22:58
한 발자국 뒤에서 나를 바라보게 하는 예술가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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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의 예술 칼럼 (260) 한 발자국 뒤에서 나를 바라보게 하는 예술가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arina Abramovic 큰 차, 큰 집, 명품 옷, 가방 등이 있으면 충분히 행복할까? 물질적인 것에 집중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을 자주 잊는다. 우리는 내면의 풍요를 통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어떻게 그것을 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른다. 인간의 영적 발전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그것이 몸이라고 생각하는 마리나는 캔버스나 물감과 같은 전통적인 예술의 물체를 버리고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퍼포먼스를 행한다. 우선 몸에 집중을 하게 되면, 다음으로 우리는 내면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우리는 무의식을 만나게 되고 우리의 영혼을 접하게 된다. 영혼과 만나야 우리 영혼의 발전도 이루어 질 수 있다. Marina Abramovic, The House with the ocean view, 2002 마리나는 2002년 11월 15일 부터 12일간 갤러리에서 생활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바닥에서 180cm 높이의 세 부스 안에서 그녀의 생활을 관객들은 볼 수 있었다. 씻고, 자고, 물을 마시는 것 이외에 그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사실 계단은 식칼날로 되어 있었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 그녀는 자신이 벽에 걸린 그림처럼 보이기를 바랬다. 자신 역시 관람객들을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그림을 포기하고 퍼포먼스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관객과의 거리를 없애 버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녀의 퍼포먼스는 이렇게 늘 관객들과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이 때 거리는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두 개의 물건이나 장소가 공간적으로 떨어진 것을 일컫는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관객과의 거리는 마음 간의 간격이었다. 극한 상황에 자신을 던져 놓음으로써 정신에 집중하는 상황을 만들어 예민함을 일깨우는 작업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만나고, 또 그것을 멀찌감치서 지켜보는 관객들도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된다. "예술가는 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당신이 정말로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Marina Abramovic, Imponderabilia, 1977 그녀는 우리가 진정으로 알고 있는 것은 외부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이라고 생각했다. 즉, 나 자신을 만나는 것만이 우리가 진심으로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어!" "이 상황이 나를 화나게 한 거야!" "저것 때문에 내가 돈을 많이 못 버는 거야"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물건 또는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탓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우리 자신을 변호하는 변명이다. 원해서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그 사람을 만난 것도, 그 물건을 사거나 가지게 된 것도, 또 그런 상황들을 만든 것도 모두 나의 선택에 의해서기 때문이다. "선택의 고난"은 볼로냐의 한 페스티벌에서 이루어진 퍼포먼스다. 꼭 이곳을 통과해야 다음 전시실로 넘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에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그녀의 연인이었던 울라이가 나체의 상태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관객은 무조건 이들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은 울라이 쪽으로 또 어떤 사람은 마리나 쪽으로 몸을 돌려 지나갔다. 그것은 모두 관객의 선택이었다. 그 반응들은 바로 다음 모니터를 통해 관객들에게 그대로 비춰졌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만든 선택으로 이루어진 삶 속에서 외부적으로 보이는 결과물에만 치중한 체,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내 무의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과정은 그저 간과하고 있다. 모니터를 통해 자신의 선택을 들여다 보게 된 관객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을 통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 과정을 보게 될 때,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을 만나게 된다. 마리나의 작품들은 인간의 본능적인 것을 주로 다룬다. 대부분 고통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성적인 주제들을 단도직입적이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런데, 이것은 마치 신화 속 의식을 치르는 장면들과 닮아 있다. Marina Abramovic, Back to simplicity, 2010 그녀의 할아버지는 그리스도 정교회 대주교로 왕에게 살해당한 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도 군인은 아니었지만 무장한 전사로서 제2차세계대전 때 파르티잔으로 활동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종교나 공산주의에 대한 희생이 전부였다. 이것이 내 속에 각인되었다. 이것 때문에 나에게 비정상적인 의지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신체적인 위험을 감수하는 극한 상황을 퍼포먼스로 많이 보여주었다.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 예술가는 아름다워야 한다. (1975)"는 코펜하겐과 덴마크 샤를로텐 부르크 아트 페스티벌에서 보여준 퍼포먼스이다. 그녀는 이 제목을 만트라처럼 반복적으로 읊으면서 철로 만든 두개의 빗으로 머리를 빗었다. 빗질로 자신을 예쁘게 단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신체를 공격하며 일그러뜨렸다. 그녀는 수동적이고 자기파괴적인 공격성을 드러내면서, 초기 여성 퍼포먼스 예술가들이 여성을 소비하는 예술 제도 및 전형적 미 개념에 어떻게 스스로 몸을 이용하여 대항했는가를 보여주었다. Marina Abramovic,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 예술가는 아름다워야 한다, 1975 손가락이 종이에 스쳐서 아주 조그만 베여도 굉장히 따갑다. 그런데, 마리나는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을 학대하는 것처럼 아프고 힘들게 한다. 인간이라면 좀 더 편하고 좀 더 안전한 것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한계를 마주하는 것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며 두려워한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렇게 신체적으로 가학적이고 고통스러운 행위를 하는 것일까? 하루에 7시간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화장실조차 가지 않는 퍼포먼스처럼, 자신을 한계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을 통해 그녀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신체와 정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엿볼 수 있다. 즉, 그녀의 모든 도발적인 몸부림은 우리에겐 한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마리나를 통해, 우리도 자신이 믿고 있던 그 한계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한계가 없는 삶을 살아 보면 어떻까? Marina Abramovic 최지혜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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