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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20.11.17 01:33

차이와 반복, 그리고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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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의 예술 칼럼 (265) 
차이와 반복, 그리고 예술

우리는 아침을 먹고, 점심을 먹고, 저녁을 먹는 반복적인 일상을 살고 있지만,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다. 반복이란 같은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복을 통해 다름이 지속적으로 생성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공허하게 지금을 지나쳐 사라지고 있는 무엇이 아니고 끊임없는 생성이다. 우리는 매번 다른 시간을 살고 있고, 매번 다른 생활을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차이 그 자체다. 

우리의 존재, 우리의 삶의 고유한 가치가 이 그 반복속에서 차이로 드러난다. 그리고 차이는 어떤 깊이고, 그 깊이가 없다면 삶의 표면에서는 아무것도 반복될 수 없다.

1아니쉬 카푸어, Sky Mirror. 2006.jpg
아니쉬 카푸어, Sky Mirror, 2006

6미터에 달하는 아니쉬 카푸어의 오목한 접시는 윤이 나는 스탠리스 철로 만들어졌다. 약 10톤의 무게의 이 접시는 하늘을 향해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변화무쌍한 하늘과 그 주변을 우리들에게 비춰준다. 

그런데 그것은 거꾸로 보이는 세상이다. 위, 아래가 뒤집힌 세상이 반복적으로 차이를 만들어낸다. 나와, 각각의 다른 사람들, 그리고 이 거꾸로 뒤집힌 세상이 따로 따로 또 같이 하나의 세상을 이룬다. 

그래서 이 접시는 본성적으로 차이를 지니는 질 들뢰즈의 잠재성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 잠재성이란 지속의 시간성 속에 존재하는 주관적 실재이며, 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다양체들이다.  

들뢰즈는 지속은 내 안의 흐름뿐만 아니라 타자의 흐름을 둘러싸고 포함하는 또 다른 하나의 흐름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존재 각각의 차이가 개체들의 고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를 포함하는 비개인적 역량때문에 지속은 다수이며 또한 하나가 된다고 했다.  

1966년의 어느 날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1932-)는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어떤 목표도, 어떤 체계도, 어떤 경향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강령도, 어떤 양식도, 어떤 방향도 갖고 있지 않다 …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관성이 없고, 충성심도 없고, 수동적이다. 나는 무규정적인 것을, 무제약적인 것을 좋아한다. 나는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2Gerhard Richter, Firenze (City Life), 2000.jpg
Gerhard Richter, Firenze (City Life), 2000

들뢰즈는 예술의 힘은 존재의 고유한 시간과 지속의 보존에 있다고 했다. 즉, 예술의 힘은 잠재성의 보존에 있다는 것이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도 하나의 시간 속에서 공존하고 공명하며 자신의 끝없는 불확실성, 즉 잠재성을 담고 있다. 
삶에서도 공명은 일어나지만 그것은 한정적 조건들 속에서 비자발적 기억에 의해 우연적으로 일어난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 육화된 잠재적인 차이들은 규정적 조건들을 넘어 스스로 공명 자체를 생산한다. 그래서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매번 많은 다른 감정들을 유발한다. 

들뢰즈는 예술은 다양한 관점들의 본성적 차이 그리고 그 파편들 간의 간격을 긍정하면서도, 그들을 단일한 통일로 묶지 않고 횡단성이라는 고유한 형식을 통해 그 안에서 파편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다. 

3Gerhard Richter, 941-4 Abstraktes Blid, 2015.jpg
Gerhard Richter, 941-4 Abstraktes Blid, 2015

그리고 예술에서 생산되는 공명 속에서 횡단 역시 생산된다고 했다. 횡단 속에서 생산된 새로운 관계가 바로 아상블라주(assemblage)다. 즉, 예술에서 나타난 차이들의 관계 맺기인 아상블라주는 잠재성의 현재화를 통해 생성-변화하는 삶, 특이화하는 삶을 형성한다. 

이렇게 권력에서 지속적으로 탈주하는 삶을 생성하는 예술의 힘은 강력하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을 접할 때 강력한 충격과 그 어떤 희로애락과 같이 일시적으로 급격히 일어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환희를 느끼기고 하고, 울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정동을 느낀다. 

예술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권력으로부터 탈주하는 자유로운 길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4Gerhard Richter, Abdallah (917-48), 2010.jpg
Gerhard Richter, Abdallah (917-48), 2010

스타일이 폭력이라고 말하는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림의 매체를 재해석하고 그 영역을 확장시켜 회화에 자유를 부여했다.  

들뢰즈는 “예술은 결코 목적이 아니다. 예술은 삶의 선들을 그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예술은 예술을 탈기표작용적인 것, 탈주체적인 것, 얼굴-없음의 영역 쪽으로 데려갈, 그리고 긍정적인 탈영토화 자체인 삶의 선들을 그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5게르하르트 리히터, Strip, 2011.jpg
게르하르트 리히터, Strip, 2011

삶을 드러내는 예술은 반복한다. 그래서 모방하지 않는다. 이 때 반복은 서로 다른 수준이나 정도들에서 공존하는 어떤 총체성들의 반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내면적 역량을 통해 모든 반복들을 반복한다. 
그 반복들 사이에서 차이가 생성된다. 존재를 규명하는 것은 바로 이 차이이다. 이런 차이의 개방성은 일의성에 본질적으로 귀속된다. 천 갈래로 길이 나 있는 모든 다양체들이 단 하나의 똑같은 목소리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즉, 모든 물방울들에 대해 단 하나의 똑같은 바다가 있고, 모든 존재자들에 대해 존재의 단일한 아우성이 있다. 

6바넷 뉴먼, 서약, 1949.jpg
바넷 뉴먼, 서약, 1949

바넷 뉴먼은 자신의 작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zip’(선) 앞에 서게 되는 관객들이 ‘숭고함’을 느끼게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인지, 수직으로 그려져 있는 선 앞에서 수직으로 선 사람들은 인간의 보통 이해력으로는 도통 알 수 없는 경이로움이나 위대함에 맞닥뜨리게 된다.   

7바넷 뉴먼, Cathedra, 1951.jpg
바넷 뉴먼, Cathedra, 1951

작품 속 서로 다른 수준이나 정도들에서 공존하는 어떤 총체성들이 선과 색으로 나타나 수많은 갈래로 나 있는 길로 우리들을 인도한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단일한 아우성을 가진 존엄함이라는 하나의 끝에 도달하게 된다. 


(다음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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