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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예술칼럼
2022.03.10 16:19
내 작품은 내 삶의 성장이다. (최욱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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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은 내 삶의 성장이다. (최욱경1)
1. 태양과 함께 활활 “각각의 작품은 내 삶의 성장이고, 내 감정을 시각 언어로 풀어놓은 것이다.” – 최욱경
최욱경, 그림자놀이, 1983 (사진출처:서울대학교 미술관)
마치 장작불이 이글거리는 역동적인 느낌을 주는 이 그림은 작가 최욱경(1940~1985)의 1983년 작품이다. 색감만으로도 그녀의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림 중앙에 그어진 선들은 뭔가 단절되고 끊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들게 한다. 그 선에 걸쳐 있는 파란 형상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여자같다. 마흔 다섯살에 일찍 세상을 등진 그녀가 마침내 모든 것을 훌훌 벗어 던지고 비상하는 같기도 하다. 그림 위쪽에 있는 태양의 아우라속으로 뛰어들면서 자유를 향한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태양과 함께 활활 불태우는 것 같다.
2. 나는 딸기 아이스크림이 좋다
최욱경, I only like strawberry ice cream c. 1960s (국제갤러리 소장)
“여자이자 화가로서의 나의 경험은 내 창의력의 원천이 되었다.” – 최욱경 “나는 오직 딸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제목의 이 작품에서는 윌렘 드 쿠닝의 자유분방한 면과 로버트 마더웰의 추상적인 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196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크랜부룩미술아카데미(Cranbrook Academy of Art)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조각과 도자기를 배웠다. 그리고 뉴욕의 브루클린미술관(Brooklyn Museum) 미술학교, 메인(Maine) 주(州)의 스코히건미술학교(Skowhegan School of Art) 등에서도 계속 공부했다. 1968년부터는 뉴햄프셔(New Hampshire)의 프랭클린피어스대학교(Franklin Pierce University)에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1년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 첫번 째 미국 유학 시절동안 그는 무엇보다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마크 로스코(Mark Rothko),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등 추상표현주의 대가들의 작품들을 많이 연구했다. 특히 크랜부룩에서는 윌렘 드 쿠닝의 인체 드로잉을 집중적으로 학습하여 많은 누드 드로잉 작품을 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마크 로스코의 색채의 아름다움과 숭고의 미학에 대해서 존경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로버트 마더웰의 작품에 보이는 표현적이고 서예적인 격렬한 터치를 많이 따라서 연습했다.
3. 나는 빛나는 바다를 사랑한다 "내 작품에는 과거와 현재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 최욱경 부산에 있는 친구 박숙자와 허만하 필자 등 그림을 좋아하는 시인들이 그를 늘 반겼주었기에 그는 부산을 자주 방문했다. 또 그들과 함께 툭하면 거제도에도 갔다. 그들은 학동의 양지 바른 언덕배기에 있는 유자 밭 농막에서 자연과 일체가 되어 밤을 지새우곤 했다. 최욱경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기였던 오경환 작가에 따르면, 그가 아름다운 거제도 풍경에 반해 몽돌해수욕장으로 잘 알려진 학동에 거주하기 위해 땅까지 샀었다고 한다. 남해의 빛나는 바다와 뜨거운 햇살, 그리고 푸른 숲, 이것은 그의 여러 작품의 모티브가 되어 나타난다.
최욱경, 학동마을, 1984
경상도 지방의 산들과 그 능선, 거제도 학동 앞바다의 물빛 등은 그에게 살아있다는 생명의 본질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산에서 느낀 충동과 감동을 그림 안에 살아 움직이게 할려고 노력했다. 푸른 물결대신 뜨거운 붉은 색이 넘실거리는 이 ‘학동마을’은 2011년 국세청장 간의 그림 뇌물수수 여부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4. 나는 멈추지 않는다 “내 작품들이 나의 삶에 대한 것이기는 하나, 이를 통해 단지 이야기만 들려주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순간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 최욱경
최욱경, Letting Go, 1977 (사진출처:MutualArt)
최욱경은 젊은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과 한국 두 나라 중 어디에서도 편하게 느낄 수 없던 채로 그 두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며 성장했다. 당시 공공연히 인종차별이 발생하고 있었던 미국 사회에서 외국인으로서 여성으로서 또한 작가로서 그는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었다. 1974년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76년에 로스웰미술관(Roswell Museum and Art Center)의 연구비 수상자로 선정되어 뉴멕시코(New Mexico)에서 일 년간 지원을 받으며 안정적인 작품활동을 했다. 이때 제작된 작품들로 1977년 로스웰미술관과 1978년 서울의 미국문화원에서 전시를 했고, 이어 부산과 대구에서 순회전을 가졌다. 1960년대부터 서구 미술계는 물질문명의 풍요로움과 그것이 파생시킨 여러 현상을 팝아트라는 이름의 시각적인 언어로 재빠르게 탈바꿈시키고 있었다. 한편, 1960-70년대의 한국 미술계는 아방가르드적 앵포르멜과 단색화라는 두 가지에 치중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주제의 다양성을 탐구하고 작업을 통해 본연을 파악하는 일에 집중했다. ‘2차 유학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 그는 뉴멕시코에서 사막, 소뼈 등의 자연 형태들을 탐구했다. 특히 당시에 뉴멕시코에 거주했던 여성 작가 조지아 오키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시기에 추상적인 그의 그림에서 형상이 복원되었고, 강렬하고 파괴적인 추상적 터치가 점점 줄어들었다. 화면 내에 공간감을 남기며 형태를 구성하는 등 그전보다는 차분한 화면으로 바뀌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때 그는 내면의 자신의 여성성을 처음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곡선이 강조되고 색채도 부드러운 파스텔톤의 작품이 나타난다.
최욱경, Unfinished Story, 1977 (사진출처:Goodle Arts & Culture)
1977년부터는 위스콘신주립대학교(Wisconsin State University)의 교수로 있다가 1979년 한국으로 다시 귀국하여 영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게 되었다.
5. 소통하고 싶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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