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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전체
2010.07.28 00:01
[문화] ‘8월의 읽을 만한 책’ 10 선정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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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읽을 만한 책’ 10 선정 추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2010년도‘8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민화에 홀리다' 등 분야별 도서 10종을 선정해 추천했다.
2010년 ‘8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는 당대에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민화에 대한 치열한 기록이 현대의 옷을 입은 민화 그림과 함께 선보이는 ‘민화에 홀리다’를 비롯해, 구한말 망국의 위험에서 대한제국을 구하려 했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의 혼을 되살리려 애썼던 한 미국인의 분투기인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지난해 타계한 재미작가 김은국의 대표작 ‘순교자’, 비무장지대의 생태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함께 그려낸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등이 선정되었다.
위원회는 문학, 역사, 아동 등 10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좋은책선정위원회를 두고, 독서 문화의 저변 확대와 양서권장을 위해 매달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선정하고 있다. 2010년‘8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된 도서는 다음과 같으며, 자세한 내용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홈페이지(http://www.kpec.or.kr)의 웹진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 8월의 읽을 만한 책 추천사 】
순교자 김은국/ 도정일 / 문학동네 - 추천자 : 신경숙(작가)
김은국의 ‘순교자’는 46년 전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던 책이다. 영어로 먼저 쓰여졌다는 얘기다. 출판당시 순교자는 언론과 서평자들로부터 ‘도스토옙프스키’, ‘카뮈’의 위대한 전통위에 있다는 평가와 더불어 ‘20세기 작품군에 포함될 만한 눈부시고 강력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사이 작가는 타계했고 1964년에 첫 한국어판이 나온 후 지금 다시 세계문학선집에 섞여 재출간됨으로써 ‘순교자’의 명성을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독자들에게 확인 혹은 재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순교자’는 6.25라는 특수한 우리의 민족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적 보편적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한 작품이다. 남북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문제를 넘어 신이 사라진 시대에, 신이 침묵하고 있는 시대에 인간의 구원가능성을 묻고 있는 ‘순교자’는 그 묵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 읽는 속도감이 매우 빠르다. 마치 무대 위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할 뿐 아니라 서사의 속도가 거칠 것 없이 빨라서 한 권의 책을 읽는 시간이 단숨으로 느껴질 정도다. ‘인간이 당하는 고통에 과연 의미가 있는지’의 질문을 끝까지 천착해가지만 ‘순교자’의 진실들은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밝혀질 듯이 그러나 밝혀지지 않는 ‘난처한 진실’들 속으로 읽는 이조차 공범자가 되어 빠져드는 순간들을 통과해 나고 난 뒤에 찾아 드는 허무. 그러나 그 허무를 뚫어내는 인간을 향한 이해와 존중, 우리가 진리라 믿는 것들의 낯선 미스터리들과의 조우를 통한 생의 이면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십자가 초승달 동맹 이언 아몬드/ 최파일 / 미지북스 - 추천자 :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현재 지구상에서 신앙 때문에 가장 많은 억압을 받는 사람들이 ‘무슬림’일 것이다. 2001년의 9·11테러로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이 일종의 상식처럼 되면서 이런 현상은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 인구의 25%, 즉 24억 명에 달하는 무슬림 중 실제 테러리스트가 몇 명인지는 따지지 않는다. 단지 무슬림이란 이유 하나로 전 세계, 특히 서방 세계로부터 잠재 테러리스트로 취급받는다. 이런 점에서 이언 아몬드가 “미디어들이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갈등에만 몰두하고 있는 시대에, 나는 그 구도를 거꾸로 뒤집어 갈등과 차이보다는 단결과 협력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고 쓴 ‘십자가 초승달 동맹’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만든 거대한 이미지에 도취되어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한다. 저자는 ‘유럽(Europe)’이라는 어원이 ‘아랍(Arab)’처럼 서쪽이나 암흑, 뒤처짐을 뜻하는 고대 셈어 ‘에레브(ereb)’에서 왔다는 사실처럼 유럽과 이슬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 11세기 에스파냐에서부터 19세기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동맹을 맺고 공동의 적과 싸웠던 사례를 5장에 걸쳐 전해주고 있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는 요즘말로 혈맹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공동 전쟁을 치렀다. 저자는 기독교-이슬람 동맹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는데 첫 번째는 ‘정치적 동맹’이고, 두 번째는 우정에 바탕을 둔 ‘따뜻한 동맹’, 세 번째는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문화적 동맹’이다. 저자는 유럽사회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잊고 싶은 것은 망각하면서 이슬람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이런 의미에서 역사가는 시대를 읽어내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런 양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무슬림도 우리의 일부가 된다.
나를 찾아온 철학 씨 마리에타 맥카티/ 한상석 / 타임북스 - 추천자 : 김형철(연세대 철학과 교수)
“내 친구들에게 좋은 삶을 살다가 간다고 전해 주오”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가 마지막 죽음 앞에서 제자에게 남긴 말이다. 어떻게 살면 좋은 삶을 살았다고 남에게 말할 수 있을까? 에피쿠르스 학파 사람들은 쾌락적인 삶을 살아야한다고 한다. 쾌락적인 삶은 육체적 본능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 정신적 안정을 취할 때 가능하다. 공자는 인이 극기복례라고 정의한다. 자신을 극복하고 예를 되찾는 것이 바로 인(사랑)이다. 본능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이성적 관찰과 판단을 내리면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진정한 바람이다. 차 한 잔 마시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바로 성찰하는 삶이고, 좋은 삶이다.
저자 마리에타 맥카티는 철학 클럽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정답 없는 질문을 자신과 남들에게 던지면서 살아간다. 왜 정답 없는 질문을 철학자는 던질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창조적 사고를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헬스 클럽에서 몸을 단련하듯이, 철학은 우리의 정신을 단련시킨다. 정신의 단련은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마치 근육이 성장하는 것은 파열의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맥카티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함, 의사소통, 시각, 유연함, 공감, 개성, 소속, 평온함, 가능성, 기쁨과 같이 지극히 평범하고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주제들이다. 현대 문명의 기술들은 우리 육체의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정신적 건강함에 대한 배려를 상실한다. 정신적 건강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대화와 토론을 이 책을 통해서 할 수 있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다. 사색을 하고 나면 뜻이 맞는 사람과 그 생각에 대하여 검증 작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에 나오는 주제는 인류 역사상 뛰어난 철학자들이 이미 탁월하게 분석을 해 두었던 것이라는 사실도 맥카티의 안내를 통해서 알게 된다. 시와 음악, 그리고 연극이 어우러지는 철학의 향연을 이 책과 함께 즐겨보기를 바란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 박찬승 / 돌베개 - 추천자 : 강정인(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 책은 마을에서 벌어진 갈등과 상호 학살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분석한 한국전쟁의 미시사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전라남도와 충청남도에 소재한 다섯 마을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10여 년간 해당 지역을 현장 답사하며 관련자 구술을 채록하고 희생자 씨족 가문의 족보까지 꼼꼼히 조사하여 얻은 연구 성과물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반도 전체에서 마을공동체라는 구체적 공간으로 좁힘으로써, 그동안 거시사 연구가 놓쳐왔던 마을 주민들 간의 신분·이념·종교·토지소유 등의 갈등까지 세밀하게 짚어낸다. 이를 통해 저자는 한국전쟁기 마을에서의 갈등 원인을 주로 이념과 계급 갈등으로 한정지어왔던 기성 학계의 통념에 도전한다. 저자는 민간 차원의 갈등과 학살의 주된 원인을 지주-소작인 간의 계급 갈등에 더하여 친족 내부의 갈등, 마을 간의 갈등, 기독교도와 사회주의자 간의 종교·이념 갈등과 같은 복합적 갈등구조에서 찾는다. 이 연구를 통해 저자는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남부 지방에서 일어난 지방 봉기의 원인을 지주-소작인 간의 계급 갈등으로 기술하고 있는 논점이 정확한 현실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마을에 잠복해 있던 민간차원의 갈등이 남북한 국가권력의 침투와 맞물려 비극적인 충돌과 학살로 귀결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남북관계나 한국 사회에서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능력이 과연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되묻는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한 해에 출간된 이 책은 한국전쟁에 관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블루 이코노미 군터 파울리/ 이은주 외 / 가교출판 - 추천자 : 이준구(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 책의 저자 군터 파울리(Gunter Pauli)는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전 세계 지식인들의 모임인 로마클럽의 초창기 회원으로 활약했다. 로마클럽은 더 이상의 성장이 환경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올 것임을 경고한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라는 책을 출판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의 성장을 자제해야 한다는 결론은 사람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태도를 180도 바꿔 성장과 환경 보호가 양립가능한 명제라고 말한다.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녹색경제(green economy)를 대체할 ‘청색경제(blue economy)’를 주창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녹색경제는 환경 보호라는 목표의 달성을 위해 기업과 소비자에게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문제점을 갖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청색경제에서는 환경을 보호하면서 더 큰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청색경제의 핵심이 생태계의 지혜를 활용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생태계는 우리의 파괴적인 생산과 소비 모형을 좀 더 생산적인 것으로 바꿔나가는 데 필요한 영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흰개미로부터 냉난방 없이 건물 안의 공기를 끊임없이 신선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얼룩말의 줄무늬에서 기계적 통풍장치 없이 표면온도를 낮추는 원리를 알아낼 수 있다. 생태계에서 지속가능성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사례로 저자가 들고 있는 예는 이것 말고도 수없이 많다. 10년 안에 100가지의 혁신기술로 1억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과장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와 같은 비전이 제시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뿌듯함을 느낀다. 지구온난화니 생물다양성의 파괴니 하는 우울한 뉴스만 접해 오던 우리로서 이런 희망적인 비전은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서 성장과 환경 보호의 양립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종교는 적인가 동지인가 로널드 L. 넘버스/ 김정은 / 뜨인돌 - 추천자 : 최영주(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인터넷에 ‘최초의 여성수학자’를 검색하면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히파티아(370?-415)’로 소개되고 있다. 히파티아는 학식과 덕으로 대중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젊고 아리따운 나이에 대주교의 사주를 받은 그리스도 광신교들이 그녀를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불태워 사형시켰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유는 그리스도교에 반하는 내용의 과학을 옹호했다는 것이었으며 이 이야기는 이후 반기독교 논쟁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게 되며, 어떤 이는 히파티아의 살육이 고대 과학과 철학의 발전에 ‘치명적 타격’을 가했다고도 말한다. 이런 이야기에서처럼 과연 종교는 과학의 발전에 해를 가하였을까? 이 책은 이러한 과학사의 전통적 통념이, 즉 과학과 종교가 끊임없이 대립하였다는 통념이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과학적 관점 때문에 목숨을 잃은 과학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지동설의 갈릴레오나 진화론의 다윈의 신앙 이야기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통해 과학과 종교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사실 1970년까지는 종교와 과학이 오랜 싸움을 벌였고 과학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식의 서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40십여 년간에는 이런 통념들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 출판부에서 기획하고, 25명의 교수들의 글을 모아 엮은 이 책은 역사를 보는 편협한 시각과 관성적인 사고를 탈피하여 과학과 종교에 대한 균형적인 안목을 이루어내고자 했다. 이 책에 기고한 25명의 학자들의 구성은 무신론자, 정통 개신교도, 불교, 무슬림교 등 과학과 종교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은 자들로 다양하고도 대중적인 주제로 객관적인 사실을 기존의 통념을 넘어 재해석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민화에 홀리다 이기영 글, 서공임 그림 / 효형출판 - 추천자 : 김춘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외교학과를 나와 발전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어느 날 도자기에 빠져 도예가가 된 필자가 그동안 사랑했던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거기에 현대적 미감으로 민화를 다시 창조해내고 있는 작가 서공임의 작품 80여 점이 함께 우리를 매료시키는 책, ‘민화에 홀리다’는 단연 이 달에 추천할만한 맛깔스러운 책이다. 필자 이기영의 글을 읽는 동안 그의 글이 매우 ‘민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생동감과 풍부한 휴머니즘이 배어나온다. 이 책 53페이지, ‘새로운 종의 출현’이라는 장에 있는 서공임의 그림 도판을 보면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도판에는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는 소나무가 있고, 겸재 정선이 그린 소나무, 궁중양식의 소나무가 있다. 그리고 민화에 등장하는 소나무들이 그려져 있다.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미적 유형의 다양함이 참으로 흥미롭게 한 작품에 나열되었다. 이 책은 민화가 비록 당대의 기층문화로 홀대를 받아온 역사를 가졌지만 예술이라는 그릇 안에서 결코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배우지 못해 자유로울 수 있었던 화풍, 데생이나 스케치의 격식과 화법은 못 배웠지만 재능이 그려내는 풍부한 일상의 색감이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민화의 탄생과 19세기 우리네 삶에 깊이 들어와 있던 민화의 현장을 드러내기 위해 필자는 당대의 판소리 사설, 조선의 직업 화가들의 기록들이 담겨있는 문헌들, 그리고 소설 등의 텍스트를 다양하게 인용, 도입했다. 소설과 판소리 사설들이 민화의 현장이라는 측면에서 조망된 것이 흥미롭다. 17세기 이래 대대로 내려오던 화원 가문들과 19세기 말 그림공장을 차렸던 인물들, 18세기 강희언의 집 안에 차린 그림공방에서 밀려드는 주문을 맞추기 위해 김홍도와 신윤복의 아버지 신한평 등이 그림을 그린 이야기 등도 이 책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 중에 하나다. 이 책은 누구나 한 권 가지고 있으면 아주 좋을 책이다.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김동진 / 참좋은친구 - 추천자 : 이한우(조선일보 기자)
이승만에 관한 평전을 쓴 바 있는 필자도 헐버트(1863~1949)는 이름은 알아도 더 이상은 잘 모르는 미지의 미국인일 뿐이었다. 물론 독립운동 과정에서 우리 민족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고 특히 이승만대통령에게 직간접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정도는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헐버트가 사랑한 조선, 한국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기 쉬우면서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국 이름은 흘법(訖法) 혹은 할보(轄甫)였던 헐버트가 1886년 5월21일 벙커, 길모어 부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조선에 도착한 것은 7월4일. 벙커나 길모어 부부 모두 청년 이승만의 개화정신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이 시절 이승만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곧 대한민국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이다. 이 때부터 20년간 한국에 살면서 헐버트가 보여준 활동의 범위는 말 그대로 눈부셨다. 교육자이자 한글학자, 역사학자이자 언론인,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친 그는 고종을 위해, 서재필을 위해 그리고 이승만을 위해 헌신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어찌 보면 어지간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헐버트. 우리는 그를 너무도 몰랐다. 다행히 국제 금융계에서 활동한 저자가 이 헐버트의 삶을 오롯이 복원했다. 이 작업을 통해 그나마 예전에 양화진 외국인 묘지를 찾았을 때 헐버트의 묘를 발견하고 죄송스러웠던 기억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헐버트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친구다.
내 뒷마당의 제국 매니 하워드/ 남명성 / 시작(웅진씽크빅) - 추천자 : 손수호(국민일보 논설위원)
이 진귀한 책을 읽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먼저 푸드마일(foodmile). 1991년 런던 시티대학의 팀 랭 교수가 만든 이 용어는 먹을거리가 생산자에서 소비자까지 이르는 이동거리를 뜻한다. 먹을거리는 사는 곳에서 키우고 만든 음식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생산한 것보다 낫다는 전제에서 이 개념이 나왔다. 유기농이라고 해도 160킬로미터 바깥이면 별로 좋지 않다. 다음은 로커보어(Locavore). 지역을 뜻하는 ‘Local’과 라틴어 ‘먹다’의 ‘vore’의 합성어다. 앞서 말한 푸드마일의 실천자 그룹으로, 자신이 사는 주변 지역에서 난 먹을거리를 섭취하려 애쓰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마지막으로 웬델 베리(Wendell Berry). 미국의 시인이자 농부, 문명비평가이다. ‘삶은 기적이다’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 없다’ 등의 저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땅이 제대로 쓰이려면 땅을 쓰는 사람이 땅을 잘 알아야 하고, 땅을 잘 쓰겠다는 마음이 커야 하고, 땅을 잘 쓸 시간이 충분해야 하고, 땅을 잘 쓸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명문을 남겼다. 이 정도면 책의 성격을 짐작하는 데 어렵지 않겠다. 뉴욕에서 요리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던 저자가 로커보어를 자처하면서 푸드마일 실험에 도전했다. 직업으로 미뤄 음식에 일가견이 있고, 도심에 살면서 가장 가까운 곳의 식재료를 추구하니 자연스럽게 자신의 집 뒷마당에 눈길이 꽂혔다. 마당을 갈아엎어 농사를 짓고, 축사(畜舍)를 손수 지어 가금(家禽)을 기르면서 진행한 농장 6개월 프로젝트의 결과는? 참담한 실패다. 교본을 따라 해도 이상하게 작물은 자라지 않았고 가축은 쉽게 배반했다. 토네이도가 농장을 때려 쑥대밭을 만들었다. 그런 곡절 끝에 첫 만찬에 올라온 찬거리는 구운 닭 반 마리와 콜라도 그린(Collard green, 배추 비슷하게 생겼다), 토마토 세 조각. 땅의 정직함, 계란 하나와 가지 한 조각의 소중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책 중간 중간에 배치된 사진이 실험의 치열함을 말해준다. 배수로를 확보하기 위해 가슴팍까지 구덩이를 파는 모습, 닭을 잡아 털을 뽑아 요리하는 장면 등이 서바이벌 게임의 치열함을 말해준다. 가장 극적인 후일담은 아내에 대한 감사의 글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음에도 히스와 제이크를 품에 안고 떠나지 않은 아내가 고맙다”. 마당에서 뛰노는 닭을 보기는커녕 고구마 하나 제 손으로 캐보지 않았으면서 식탐에 젖은 사람이 읽으면 쿵∼ 감동이 내려앉을 책이다.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 이억배 글, 그림 / 사계절 - 추천자 : 서정숙, 이금이(그림책 평론가, 아동문학가)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3년간의 한국 전쟁! 1953년에 휴전을 표시하는 군사분계선이 그어졌고, 그 선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 각각 2km 뒤로 물러난 자리에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 세워졌다. 두 철책선 사이 4km 구간인 ‘비무장지대’가 생긴지 57년 만에 이를 담은 그림책이 나왔다. 이 그림책은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작가와 출판사가 함께 기획한 ‘평화그림책’ 중 한 권인데, 작가 이억배는 따뜻하고 정겨운 그림에 통일에 대한 희망을 담았다. 그림책은 계절별 동식물의 모습, 군인들의 모습,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반복해서 병치시킨다. 이런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뚜렷하게 구분된 세 가지 정서를 다면적으로 느끼게 하여 작가의 통일 염원에 공감하게 한다. 봄의 경우를 예로 들면, 파릇파릇한 새싹이나 백령도 앞바다에서 헤엄치는 점박이물범은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반면, 비무장지대의 철조망 바로 너머에서 허물어진 진지를 다시 쌓고 녹슨 철조망을 수리하는 군인들은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와 동시에,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한 채 층계 저 멀리 보이는 전망대를 막 오르려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슬픔의 정서를 끌어올린다. 비무장지대 동식물들의 자유로움, 끝나지 않은 전쟁에 대한 군인들의 경계심, 할아버지의 고향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 이 세 가지의 모티브가 계절 변화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므로 안타까움은 점점 더 커져간다. 그러다 이런 장면 구성이 크게 바뀌면서 대반전이 일어난다. 자물통으로 굳게 닫혀있던 철문은 책장이 양쪽으로 펼쳐지면서 활짝 열린다. 매 계절마다 층계를 힘겹게 올라 고향 땅을 눈으로만 보던 할아버지는 드디어 손자의 손을 잡고 그 땅을 밟는다. 그곳에서 손녀의 손을 잡은 또 다른 실향민 할아버지와 하나 되어 얼싸안는다. 이 그림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인 한국전쟁이나 비무장지대, 그리고 통일 문제에 대해 어린이들과 무릎을 맞대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그림책이다.
한국 유로저널 안하영 기자 eurojournal16@eknews.net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 유로저널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0-07-2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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