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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은 끝났고, 남은 공은 이제 한국과 북한, 미국 각자의 몫이 되었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의 목적이 결국은 ‘한미동맹강화’를 확인함으로써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경태도를 누그러뜨리려는 것이 실질적인 의도였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북핵 문제부터 따져 보자. 두 정상은 예상대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 불용 원칙 및 북핵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 원칙을 강조했다. 북한이 핵무기 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내리면 북한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도 재확인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4차 6자회담은 곧 열리게 될까. 북한은 미국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이후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서는 대화 상대를 모독하고 자극하지 않는 조건과 환경 마련을 요구해 왔다.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5월 27일 21세기의 기술 발전에 힘입어 무고한 백성 대신 그 뒤에 숨어 있는 테러리스트와 폭압자들만 골라 공격할 수 있게 됐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의미심장한 연설에 대한 북한의 소극적 반응이다. 반면 부시 대통령이 5월 31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에 '미스터'를 붙이고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했던 발언을 평가했다. 그리고 이 발언이 6자회담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게 될 것이며 향후 발언을 지켜보겠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정상회담에서 반복된 부시 대통령의 조심스러운 발언은 6자회담의 조기 재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4차 6자회담이 열리면 지난해 6월 3차회담에서 제안했던 미국 안에 대한 북한의 대답을 들을 차례라고 말함으로써 새 제안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북한은 2월 핵무기 보유 선언 이후 6자회담의 성격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의 핵심은 북.미의 적대 관계를 평화공존 관계로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핵위협' 청산과 '제도 전복'포기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6자회담은 북한 핵과 동시에 미국 핵 폐기를 논의하는 군축회담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해결의 전망은 어둡다.
한.미 두 정상은 북한이 핵 포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하는 경우에 다자 안전 보장, 에너지를 포함한 실질적 지원, 북.미 간의 정상적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북한의 대답은 간단하다. '미국이 우리 공화국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진심이라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조.미 평화공존 정책으로 바꾸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북한은 말이 아닌 구체적 행동의 첫 단계로서 미국의 핵위협 청산과 제도 전복 포기를 들고 있고, 마지막 단계로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군사동맹 해체를 얘기하고 있다. 어려운 일이다.
정상회담은 한.미 동맹관계를 재확인하고 향후 발전방향을 논의했다. 최근 시끄러웠던 전략적 유연성, 균형자론, 북한 급변사태 작전계획 등을 일단 수면 아래 잠재우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문제의 뿌리는 깊다. 미국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강조하고 있는 자유동맹의 세 동심원 그리기를 동아시아에서도 충실하게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19일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 회담, 6월 7일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 크리스토퍼 힐의 중국의 부상에 관한 상원 외교위원회 증언, 라이스 장관의 "폭정의 전초기지" 연설을 합쳐 보면 21세기 신동맹론의 동아시아판 구도는 이미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동시에 미 국방부는 새롭게 그려지고 있는 신동맹질서에 맞는 동아시아의 군사 변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부시 행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을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편 우리 정부는 탈냉전 시각에서 협력적 자주를 추진하기 위해 한.미 동맹관계를 조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근대적 동맹 사고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협력적 자주의 시각만으로는 21세기 동아시아의 중심에 서기는 불가능하다.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신동아시아 동맹 구상과 중국의 부상이라는 변화를 제대로 읽고 새로운 전략적 사고와 상상력의 도움으로 활용해야 한다. 정상회담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
다행히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여러 모습들은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낙관론을 펼칠 시기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믿어봐야 하지 않을까?
The euro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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