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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금융권 구직자들, 냉정하게 판단할 때

월요일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의 파산을 시작으로 연일 들려오는 금융권 위기 소식에 런던 금융권 The City 지역을 거니는 이들의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 수천 명이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고, 신규 인력 채용은 3분의 1 수준으로 줄고, 그나마도 최고 경력자 외에는 채용이 되기 어렵고,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어두워질 것이라는 소식에 이들의 표정이 밝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런던 금융권이 잘 나가던 시절부터 경력을 쌓아 이미 안정적인 부를 축적하고, 업계에서 최고 경력자 수준의 위치에 오른 이들은 그나마 그 불안감이 덜 하겠지만, 문제는 이제 겨우 런던 금융권에 입성한 신입들과, 그리고 런던 금융권 입성을 목표로 달려왔던 수 많은 젊은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런던 금융권 구직을 희망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다.

한 때,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각광 받으면서 투자은행들이 말 그대로 잘 나가던 시기에는 Investment Banker, 즉 투자 은행가들의 삶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일반 근로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액의 연봉과 보너스, 신규 금융권으로 떠오른 카나리 와프 지역의 멋진 현대식 아파트들에 거주 하면서, 밤에는 최고급 클럽과 식당을 누비는 이들의 삶은 수 많은 이들에게 런던 금융권 취업의 달콤한 꿈을 선사했다. 그리고, 한국의 젊은이들, 런던에서 대학 과정을 밟는 한국 유학생들도 이 달콤한 꿈을 따라 도전장을 던졌다.

그 결과로 정확한 통계 수치는 작성된 바는 없지만, 한국인 전문 채용 전문 회사의 자체적인 파악에 따르면 런던에서 학업을 이수한 한국 유학생들 가운데 10명 중 6명은 금융권 취업을, 그 중에서도 투자은행 취업을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대학 과정을 시작할 무렵, 또 지난 해 정도만 해도 금융권이 승승장구 하던 시기였고, 또 이들이 장차 세계 금융권의 중심이기도 한 런던 금융권에서 활약한다면 이는 대한민국 국가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기에 이들의 선택은 일단 긍정적인 것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 서브프라임(제 2 금융권) 모기지 붕괴 사태와 함께 전세계적으로 드리워진 신용 경색과 경기 침체의 그림자는 화려했던 런던 금융가에도 상당한 흡집을 내기 시작했다. 사실, 투자은행 자체가 미국에서 전파된, 일종의 도박과 같은 전형적인 자본주의성 금융업이다. 단기간에 몸집을 부풀려 돈잔치를 벌이는 과정 뒤에는 요즘과 같은 위기가 닥칠 경우, 이에 대처할만한 견고한 밑바탕이 절대적으로 빈약하다. 현재와 같은 상황은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지속되고나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당연히 이에 따라 해당 업계 종사자들의 안정성도 위협을 받고 있다. 이 상황에서 아직 입성조차 하지 못한 금융권 취업 희망자들은 상당한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타 국가 출신 학생들에 비해 학업 기간 동안 실무 경험이 부족해서 외국 고용주들로부터 선택받기가 어려운 한국 유학생들이었는데,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는 이미 일하고 있는 인력도 감원을 고려하는 런던 금융권이 이들 한국 유학생들을 신규 채용할 확률은 안타깝게도 거의 제로에 가깝다. 고급 경력직을 운용해서 위기 극복에 전념하려는 금융권이 신입직을 채용해 트레이닝 후 실전에 투입하는 과정을 거칠만한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금융직 외 일자리는 고려 자체를 하지 않아, 한국에서는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장기 취업 준비생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영국 채용 시장이 경색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른 부동산 업계, 건축 업계와 함께, 가장 극심한 채용 둔화를 보이는 업계가 바로 이 런던 금융업계이다. 이미 금융직 전문 채용 업체들은 신규 채용이 급감한 데 따른 채용 업계의 위기를 겪고 있고, 그나마 최고 경력자들을 다루는 헤드 헌터들은 아직 최고 경력자들을 찾는 고용주들로 인해 그나마 연명하고 있다.

한국 유학생의 입장에서는 비싼 학비와 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런던에서 학업을 마친 만큼, 쉽사리 목표했던 바를, 꿈꿔왔던 길을 수정하는 게 어려운 점은 이해한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여전히 금융권 입성만을 고대하고 있는 것은 당사자들로서도, 또 대한민국 국가적으로도 안타까운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유의했으면 좋겠다. 물론, 기회가 되어서 뜻하는 진로를 성취한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며, 우리 모두는 큰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혹시 그 진로가 계획했던 것 보다 좁고 어려운 길로 변했다면, 다른 방향도 고려해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졌으면 좋겠다.

이들은 영국에 주재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과 또 영국에서 설립된 한국 업체들에게도 훌륭한 자산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가서 본인들이 원하는 진로를 개척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어찌 되었든, 이들 대한민국의 젊은 두뇌들이 런던 금융권에 대한 부푼 꿈에 사로잡혀 졸업 후에도 영국에서 장기간 취업 준비생으로 지내거나, 이들과 같은 인력이 필요한 한국 고용주들이 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쪼록 큰 뜻을 품고 영국에서 학업을 이수한 우리 젊은이들이 이번 금융권 위기와 관련,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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