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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지금으로부터 딱 20여 년 전 북한은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었다.

'김현희'란 이름이 더 기억에 또렷이 남는, KAL기 폭파 사건에 대한 미국의 조치 중 하나였다.

외국으로부터의 자금지원이나 수출입 자체가 모두 철저히 봉쇄되고 원해로 나가는 모든 선박은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

공산권 붕괴와 함께 경제적, 정치적 위기에 처한 북한의 마지막 카드가 바로 핵개발이었다.

테러지원국 지정 조치 5년 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그 다음 해 국제원자력기구마저

탈퇴함으로써 본격적힌 핵프로그램을 가동하였다.

급기야 1999년 미국은 북한을 공식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게 된다.

  자그마치 15년이나 동북아시아의 외교상황을 초토화시켰던 북핵 문제는 올해 들어와서야 비로소

조금씩 풀려나가는 단초를 보이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남북관계가 극단적인 경색국면에 접어들자 오히려 북미 간의 소통이 더 원활해진 셈이다.

그리고 12일 미국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하게 된다.

사실 이번 해제조치는 당초 핵 불능화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합의된 사항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강경 매파의 입김에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제동이 걸렸고, 이에 '마음상한' 북한이 다시

핵프로그램을 재가동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부랴부랴 해제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번 조치로 북한은 미국 정부가 규정한 '불량국가'(rogue states) 대열에서 빠지게 되었으며 이것은 양국

이 정상 외교 단계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번 조치로 북한에 대한 모든 규제가 풀린다거나, 북-미 관계과 완전 정상화로 접어드는 것도 아니다.

북한이 받고 있는 경제제재는 한국전쟁 이후 적용돼온 무기수출 통제법, 수출관리법, 국제금융기관법,

대외원조법 등 수많은 법규와 얽혀 있고, 인권침해에 관한 제재 등과도 복잡하게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조치가 가지는 의미는 바로 북핵문제와 관련한 각종 협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데 있다.

북한은 이번 조치에 대한 응답으로 비사찰 시설까지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미국에 부여했다.

서로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셈이다.

게다가 이달 초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의 방북과 같은 직접 협상은 한반도 정세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보여준다

.   문제는 이런 급박한 와중에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할 우리 정부다.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해서 미국은 일본에 전날 사전 통보한 반면, 우리는 아무런 통보를 받지 못했다.

외교부에서는 이달 초 이미 미국과 협의된 사항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전개된 정황상 그럴 것 같지도 않다.

미국을 방문하면서 외쳤던 '전략적 파트너십'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모습이다.

아니 오히려 미국의 행동에 그저 따라다니는 것도 벅찬 모양이다. 취임 초 외쳤던 '비핵,개방 3000'의 구체적인

행동은 경색된 남북관계에 그 존재가치마저 잃어버렸다.

게다가 계속되는 대북강경기조의 발언으로 향후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가능성마저도 스스로 닫아버렸다.

대북관계에 있어서 전혀 영향력이 없는 우리 정부에게 미국이 기댈 이유가 없는 셈이다.

  결국 향후 전개될 6자 회담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꼬이고 꼬인 남북 관계부터 개선해야 한다.

6.15정신이나 10.4 선언의 계승을 선언하는 정도의 립서비스로는 부족하다.

인도적 지원마저 상호주의를 주장하는 강경 보수파의 목소리부터 무시할 필요가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이미 구축된 통로를 적극활용하고 인도적 지원이나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적 소통을 적극적으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대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병세가 어떻든 중대한 권력변환기를 맞고 있는 것은 엄연해 보인다.

만일의 경우 지금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한다면 남한의 대북 영향력은 현재 상황으로선 지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맞기 전에 구체적인 행동을 보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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