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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의 회생과 FTA재협상

  지난 1일 하이닉스 이천공장에 현수막이 걸렸다.

D램 단일라인 최초로 월 10만장을 생산했다는 축하 내용이었다.

한때 애물단지였던 하이닉스는 이제 알토란 같은 효자기업으로 살아나 우리를 계속 놀라게 하고 있다.
2001~2002년만 해도 하이닉스가 죽어야 반도체 경기가 산다느니, 하이닉스는 구제 불능이라 무조건
파는 것이 최선이라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그런 하이닉스가 빠른 속도로 살아나, 2003년 하반기부턴 지속적인 흑자행진을 해오고 있다.

신용등급 역시 수년 전 C등급으로까지 추락했었지만, 지난달 A등급으로 다시 상향조정됐다.

하이닉스의 고난은 정부가 야심차게 주도했던 '빅딜'에서 잉태됐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의 책임을 재벌에게 물었고, 재벌개혁의 표본으로 빅딜을 시도했다.

삼성자동차는 대우차에, 대우전자는 삼성전자에 넘기고, LG반도체는 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에
넘기는 것이 빅딜의 골자다.

물론 대우의 침몰로 LG반도체만 현대전자에 넘어가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LG반도체를

흡수하느라 그렇지 않아도 부채비율이 높았던 현대 전자가 무려 4조원이 넘는 부채를 추가로 떠안게

됐다는 점이다. 이후 반도체 불황이 겹쳤고 반도체 이외의 모든 사업부문을 팔면서 구조조정에 나섰지

만 결국 이자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다.

사실 하이닉스라는 현대전자의 새 이름도 이런 환경의 타개책으로 채권금융기관이 공동관리에
들어가던 2001년 3월쯤 만들어졌다.

그리곤 6월 국제금융시장에서 추가로 조 단위의 자금조달을 해보지만, 반도체 경기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다시 자금상황이 어려워졌고, 2001년 10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하이닉스의 매각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즈음 기다렸다는 듯이 같은 업계 경쟁자인 마이크론이 매수 대상자로 등장한다.

빅딜당시 현대전자에 실질적 자문을 줘 그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던 살로몬스미스바니의 모회사,
시티그룹은 아예 내놓고 정부에 하이닉스의 마이크론 매각을 종용했다.

이 당시 정부와 채권단은 터무니 없는 매각 조건에도 불구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마이크론에 하이닉스 매각을
부추겼고, 소위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많은 이들도 시장 원칙을 이유로 이 분위기에 동참했다.
다행히 하이닉스는 이사회의 부결로 매각은 무산됐다.

그럼에도 2002년 5월 정부는 하이닉스의 주거래은행이던 외환은행의 행장으로 '하이닉스를 꼭 매각시키겠다'는 인물을 다시 내세웠고, 하이닉스 이사진은 매각 결렬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게 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매각 결렬은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공으로 포상을 해줘도 부족한 일이었다.
한편 전문가랍시고 언론 방송을 넘나들며 하이닉스의 매각을 주장했던 많은 이들은 정말 자숙할 필요가 있다.

이들 주장에 부화뇌동한 언론 방송의 책임도 작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부채비율이 높은 회사는 불황기에 더 어렵고 호황기엔 더 잘나간다.

그런데 미래를 예측하는 일엔 전문가가 따로 없다는 것이 이번 경험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됐다고 본다.

또한 매각이 당시 결렬됐기에 망정이지, 매각이 됐다면 정부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이상의 논란에 휩

싸일 뻔했다. 물론 사전적인 결정을 사후적 결과로 평가하긴 힘들다.

그러나 정부가 치적인 양 내세우며 무리하게 강행했던 빅딜을,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그것도 외국 경쟁회사에
졸속으로 매각하려 했던, 적어도 그런 분위기를 방조한 책임을 면키는 어려울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부가 나서 추진한 많은 일들이 결과적으론 그냥 두었을 때보다 더 악화된 경우가 많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선진국에선 '작은 정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부는 뻔뻔하게도 다시 우뚝 선 하이닉스의 공장증설과 관련해 또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한미 FTA 재협상을 수용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부는 자신만의 체면과 실적주의에만 사로잡혀 또 다시 잘나가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하이닉스는 정부의 의도를 거스르며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믿음직한 회사다.

척박한 시절부터 변함없이 하이닉스의 가능성을 믿고 일해온 소수자들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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