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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8년 영국에 부임한 뒤로 8년 동안 군세군 교회에서 사역해온 황선엽사관이 오는 15일 한국으로 전임하게 되었다.
이에 유로저널은 황선엽사관을 통해 영국의 삶의 모습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다.

박운택 유로저널 영국 지사장


유로저널: 4년 전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황사관께서 한인동포 언론에 정착민과 유목민에 대하여 쓰신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의 주제가 지금까지 영국 생활을 하면서 항상 화두로 남아있는데 황사관께서 영국을 떠나신다니 섭섭한 마음에 앞서 그 부분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우선 정주민과 유목민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황선엽: 미국과 영국의 이민정책에 대해 접근하는 게 한 방법이 될 것 입니다.  미국이 이주자들의 선택에 의한 정착이었다면 영국은 백인중심의 사회체제 유지를 근간으로 하는, 이 나라의 정책수요에 의해 선택된 이주자들이라는데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곧 미국은 이주자들의 문화가 유지되는 이주였지만 영국은 이주자들의 문화가 영국문화로 흡수되기를 요구하는 모노컬처(monoculture)를 유지하려고 해왔지요.
그러나 이러한 단일문화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변화될 것을 예측하고 영국은 꾸준히 준비를 해왔습니다.

이주민 혹은 정착민으로 불러지는 것과 대비된 개념으로 유목민 혹은 순례자라는 개념으로 나눌 때 유목민은 한국을 베이스로 한 외국에 일정 시간 동안 학업, 직업, 혹은 훈련 등의 목적으로 나와있는 사람들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 유목민 유형이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정착민으로 변해가는 것 또한 이민사회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가까운 독일의 이민은 유목민이 아닌 이민사회 유형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광부와 간호사가 중심이 된 독일의 이민사는 영국과 달리 독일사회 본류에 합류하는 기간이 영국에 비해 빨랐습니다. 이민 2세대들이 이주민 후손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빠르게 확립됐다고 봅니다.

유로저널: 우선 정주민 곧 정착 이주민관련 영국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황선엽: 98년 제가 영국에 처음 도착할 때만 하더라도 영국은 자국의 문화에 이주민의 문화가 흡수되기를 원했다고 봅니다.
당시 많은 영국 교회지도자들이 '왜 한국인은 영국교회로 들어오지 않고 한국 교회를 만드는가'라고 질문했을 때 저는 이민 1세대들의 언어장벽과 향수(鄕愁)로 대답했으나 이제 재영 한인사회도 영국사회 속의 한인공동체로 들어갈 때 입니다. 영국사회도 자문화로 흡수되기를 바라던 자세에서 이주민들의 독자적 문화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를 위한 가교역할이 절실히 필요할 때 입니다.
그 가교는 분야별 지도자들이 능동적 주체가 되어야만 하겠지요.

유로저널: 영국 한인사회는 유럽에서 유일한 한인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한인들이 영국사회로 들어가는 데 어떤 면에서는 역기능을 하지 않나 생각도 됩니다만…

황선엽: 미국에는 '이 나라에서 인정받는 민족이 되려면 이 나라를 위해 피를 흘려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LA폭동만 보더라도 한국인은 미국 이민사에서 무임승차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노예 신분으로 미국의 밑바닥을 다져놓았던 흑인들과 달리 흑인지역에서 돈을 벌어 백인지역에서 살려는 일부 한인들의 모습이 분노를 자아낸 것이지요. 그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아니면 인정받을 수 없듯이 공존, 공영이 없이는 미래가 없다고 할 것 입니다.
영국의 한인사회 또한 배타적 지역이 되지 않도록 정착민으로서의 역할을 주체적으로 찾아야 할 것 입니다.

유로저널: 정착민으로서의 역할이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로 볼 수 있겠습니까?

황선엽: C.E.C(유럽교회 협의회)에서는 유럽 땅에 들어오는 이주민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교회의 당면과제로 심각히 토론되고 있습니다.
한인촌을 형성하고 있는 재영 한인사회의 상황은 결집과 편의성은 증대될 수 있지만, 단일문화의 폐쇄적 상태를 고수한다면,  문화상호교류(Cross-culture)가 되지 못할 위험에 빠집니다.
원주민의 땅에 이주정착민으로 살고 있는데, 서로 잘 모르면 결국 갈등이 생기고, 서로 공통되고 합의된 공감대가 없으면 문제를 풀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결국 위기가 다가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이 땅에 사는 한인으로서의 분명한 철학이 필요로 한 시점입니다.
현재 우리 한인사회에 이민철학이 부재한데, <나는 누구로서 이 땅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주체(정체)선언이 필요한 때 입니다.
미국이나 호주의 이민자 중심의 사회와 달리 지금까지 유목민 사고가 지배되어온 이 영국의 한인사회는 그래서 정착민 중심으로 리더쉽을 가지고 유목민 유형의 한인을 포용해 가면서, 영국사회의 일원으로서 건강한 한인공동체가 되도록 자리잡아 가야 합니다.
<건강한 한국계 영국시민>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정체성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기독교적인 입장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건강한 한국계 크리스찬 영국시민>, 한인회의 입장에서는 <건강한 한국계 영국시민 공동체>의 모습으로 표현 할 수도 있겠지요.
또 영주권자는 가능한 빨리 시민권으로 변환해야만 합니다. 선거권을 가져야만 힘을 가질 수 있게 되니까요.
영국의 이민사회가 기간 면에서는 충분히 이민 정착단계로 들어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민초기단계 개척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람 숫자와도 관련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호주의 시드니를 예로 들 때 5만이 넘는 숫자가 모여 자체 재생산 구조가 가능하지만 영국은 비유럽계(비백인계)의 이민 문호가 극도로 좁아지는 현실이어서 재영 한인사회의 양적 성장 가능성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고 하겠습니다.
또 한인촌은 한인대상 비즈니스일수록 작은 파이를 두고 더 경쟁해야 할 경우가 높아지고 있으니까요.

유로저널: 한국인의 폐쇄성은 언어의 장벽이 가장 커다란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황선엽: 세계화 속에서 가장 필요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수많은 학생들이 영국으로 유학을 오고 있습니다. 한인사회 또한 가장 많은 비율이 이들 유학생 곧 유목민유형이라 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유학의 목적에 적합한 유학생활 실천이 뒷받침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많은 어학연수생들이 여러 가지 어려움에 어학자체보다는 견문을 넓힌 것을 위안으로 삼고 돌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학향상이 목적이었는데 어학향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그건 어학연수 실패입니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적어도 연중 1회 이상 영어자격시험과 그 점수를 들고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실현 가능한 목표가 설정되면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학습효과가 있더군요. 그리고 1년 이상 유학을 했다면 평생 연결될 영어권 친구 한 명 정도는 사귀라는 도전을 던지고 싶습니다.

유로저널: 어느 책인가 21세기는 유목민의 행동양식이 생존 수단이 된다고 읽은 기억이 납니다만 유목민의 정체성에 대해 들었으면 합니다.

황선엽 : 급변하는 21세기에 세계화 시대는 고정 고착된 지역개념을 넘어서서 세계 어느 지역이나 일일 생활권 한 지붕 한 가족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고정 고착된 사고보다는 다양성과 기동성 실효성이 있는 유목민적 사고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동과 실효성이 강한 반면 머문 자리에 대한 책임감이나 연대감 지속성이 부족한 것 또한 사실 입니다.
이 후유증은 결국 정착민의 담당해야 할 몫이 되겠지요.
우리 한국 유학생들이 이런 세계화를 향한 도전적 마인드가 더욱 필요합니다. 다른 국가에서 온 유학생들보다 이런 다양성 기동성 실효성들이 적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세계를 다니며 움직이려면 세계화된 의식이 필요하고 이 세계화 의식은 한국인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서양문화가 법, 곧 계약 아니면 칼, 곧 전쟁으로 대변되듯 동양문화는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다스려 왔다고도 볼 수 있지요.
세계화를 하려면 서양인을 흉내 내는 동양인이 아닌 '동양인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세계가 공감하는 바를 내어놓는 개념이 필요합니다.
이걸 다른 말로 “다양성속의 일치”(unity in diversity) 라고도 표현합니다.
서양에서는 한국의 가족관계를 높이 보고 이를 배우려고도 했는데, 오히려 우리 한국에서 급속히 가족해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서양인들이 더 놀라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인사회 경우 유목민유형의 숫자가 정착민보다 훨씬 많기에 아직 유목민유형의 장단점이 한인사회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그 장단점의 모든 달고 쓴 열매는 결국 정착민이 안고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장단점의 열매가 자라난 다음결과에 희로애락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건강한 이민사회 건설을 위한 씨 뿌리고 가꾸는 잡초를 뽑고 자라나게 하는 일에 주도적으로 정착민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천수답 농사수준이 아니라 농지개발과 계획영농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개개인들이 시도하던 일들도 조금씩 운동성을 가지고 영속적인 동력을 가졌으면 합니다.
다양한 이민사회의 정착과 건설에 필요로 한 분야, 예를 들면 법률, 교육, 이민취업비자, 개인고충, 가정불화, 결혼, 의료 등에 전문성과 특성화가 필요한 시점이고, 여기에 또 한인교회나 다양한 공익단체가 <건강한 한인사회 건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이를 정착민이 주도가 되어 유목민들을 포용해서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되기까지 나가는 단계가 영국 한인사회의 다음단계 과제라고 봅니다.

이민사회의 건강한 성장은 우리 모두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유목민적 특성이 평생소속감이 없고 개별성이 강조된다고 해서 여기에 따른 책임의식마저 없다면 90년대 '내가 버린 쓰레기 내 식탁으로 돌아온다.'라는 한국에서의 공익광고처럼 될 겁니다. 다른 의미로 제가 영국에서 두 번의 월드컵을 보았는데 뉴몰든 한인사회의 응원이 영국과 한국 등에 아주 크게 부각됐다고 봅니다.
이 두 번의 시기를 통해서 때 영국전국에 뉴몰든이라는 곳에 한국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지역 영국 주민 중에는 뉴몰든=한인촌이라는 표현을 매우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말이지요. 조상부터 살아온 자기 고장이 갑자기 한인촌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을 쉽게 받아드릴 수 없을 겁니다. 마치 내가 살던 우리 한국 마을 동네가 갑자기 “000외국인노동자촌”이라고 불리면 우리도 불편할 겁니다. 이런 식의 갈등이 내재되는 것이 이민사회입니다. 이 월드컵 기간에 한국인의 눈이 아닌 영국인의 눈으로 볼 때 한국인의 장. 단점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봐야지요.
얼마 전 제가 만난 영국인 지역구리더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은 고무적이었습니다. “와우! 뉴몰든 파운틴 팝에서 놀랐어. 영국 사람보다 더 축구 좋아하는 사람이 한국 사람 이더라구.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끝나니깐 쓰레기를 다 치우고 가던데. impressive..”  긍정적 모델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보여집니다.

유로저널: 단일문화에서 다문화로 변화하는 게 비단 영국뿐 아니라 한국사회도 당면한 과제로 많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황선엽: 서로 상반되는 입장이지요. 세계화 현상의 하나이고요. 특별히 우리나라안에서는 잘몰랐는데 외국에 살며 바라보니 배타적인 면이 강한 나라이더군요. 이에 따른 교육시스템, 곧 [다문화학과]같은 특성학과가 대학에 개설될 필요도 있고요.
또 국제결혼에 관한 인식도 변화되어야지요. 한국남성과 백인여성, 또는 한인여성과 백인남성 커플을 보는 관점이 동등하지 않습니다. 같은 경우로 한인남성과 타 아시아여성 커플을 보는 시각도 다릅니다. 백인우월 저변의식과 남성우월주의가 합성되어 사회저변에 깔려있다고 봐야겠지요.
국제결혼은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넘기 힘든 단일문화 행위가 아닌 복합문화, 다문화의 결합이라고 설명될 것 입니다. 한.미 여성연합회처럼 영국사회에서도 한영 여성회 운동이 시작되어서 결혼,가정,자녀,이혼, 등 이민적응 상호 정보 교류 등이 공개적으로 토론되어져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유로저널: 재영 한인사회의 당면과제를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황선엽: 한국인의 일반적 특징은 모이면 조직부터 만들려고 한다는 것 입니다. 이는 수평, 평등 사회가 아닌 수직, 서열중심의 사회에서 습성화된 한국 사람의 특성이라고 봅니다.
조직을 구성한 후 사업화 하려는 시도는 자발성을 떨어뜨리는 약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인사회는 조직보다 먼저 <운동성>(movement화)을 가지라고 추천합니다.
조직은 자리가 주어지지 않으면 잘 일하지 않지만, 시간이 걸려도 동기가 부여되어 관심 있는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운동은, 자연적으로 임상실험을 거치게 되고 이에 따른 최소한의 조직이 써포트 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더 효과적으로 이루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성보다는 운동성, 곧 운동력을 가진 창조적 소수들에 의해서 영국 한인사회는 건강하게 성장할 것 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영 한인사회에서 존경할 만한 대상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한국인들만이 아닌 영국인들도 존경하는 한국인이 등장할 때 건강한 운동성은 가속되게 될 것 입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영국 한인사회의 언론에 대해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황선엽: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다운받던 내용 중심에서 조금씩 자체기사로 지역뉴스가 활성화 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 현상 입니다.
또 문제제기 이전에 충분한 대안을 연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언론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단계에 왔습니다. 여론이란 반드시 피드백이라는 단계적 절차를 거쳐 전달되고 조정되고 대화되어야 합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개인의 발언'이 마치 한인사회 전체의 일같이 노출되거나 전달되어서도 안되고 또 한인사회 여러 단체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또한 언론이 극복하고 필터링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각 분야에 대한 전문 집필진을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고 지금까지 신문에 실린 자체 기사나 집필된 글을 모아 출판을 하는 것도 영국에서 언론의 활성화와 책임을 배가시키는 한 방법이 될 듯 합니다.

유로저널:  영국을 떠나시게 되더라도 끊임없는 관심 바랍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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