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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2008.07.13 00:01
치열한 삶의 현장보고서를 쓰는 강유일 소설가
조회 수 4702 추천 수 0 댓글 0
한국문인협회에서 매년 주관하는 해외한국문학상은 해외에 거주하면서 모국어로 창작활동을 활발히 하는 동포문인들 중에서 우수한 작품을 발표한 문인을 찾아가 수여하는 상이다. 해외문인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해외한국문학상은 올해 독일 라이프찌히대학에서 문학과 창작을 강의하고 있는 강유일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의 수상작은 2005년 민음사에서 간행된 >피아노 소나타 1987<. 이 작품은 540 쪽에 달하는 장편소설로서 강유일 작가는 이 작품을 독일어로 공동번역, 독일유명작가 Uwe Kolbe 와 Katja Lange-Mueller의 감수를 거쳐 내년에 독일 출판사에서 출판할 예정이다. 뮌헨에서 열린 해외한국문학시상식에 참석한 강 작가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를 들어보았다. 유로저널: 안녕하세요? 먼저 해외한국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언제부터 어떤 동기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셨는지요? 강유일 : 제 어린시절, 고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독서광이셨어요. 1960년대, 가난한 시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서재에 소중한 장서들을 많이 가지고 계셨어요. 문자(文字)의 힘과 향기를 아시는 분이셨지요. 새벽이면 어린 자녀들을 위해 안방에 커다란 둥근 상을 펴놓고 그 위에 큰 석유등을 놓아주셨어요. 새벽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그 석유등 아래서 책을 읽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고 우리도 새벽에 일어나 석유등 아래로 모여들어 자발적으로 그 위에 준비된 책들을 읽었지요. 휴일이면 맏딸인 저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 손전등으로 나무뿌리 밑에 사는 곤충들의 우주를 보여주셨어요. 저수지 위에 깃든 안개와 식물들의 이름도 가르쳐 주셨지요.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갱지로 묶어만든 ‚독서일지’ 를 선물하셨는데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어요. 독서량이 많아지면 결국 그 사색을 토해내기 위해 글을 쓰게 된 것은 당연한 정신적 현상이었지요. 유로저널: 언제 소설가로 등단하셨습니까? 강유일 : 제가 22살때 경향신문 장편소설공모에 >배우수업<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이 작품은 당시 가장 진보적인 테마였던 ‚안락사’ 를 다룬 소설로 출판 직후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화되었지요. 그리고 TV드라마와 라디오극으로도 방송이 되어 제 문단생활의 탄탄한 기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 이후 계속되는 신문연재소설, 신문컬럼, TV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으면서 13년간 30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여러 권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몇 편의 소설이 영화화되었지요. 유로저널: 한창 작가로서 명성을 얻으셨을텐데 어떻게 독일에 오시게 되었는지요? 강유일 : 그렇게 작품활동을 하던 중에 갑자기 개인적인 고통이 닥쳐 1989년 정신적 휴식을 위해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으로 왔어요. 그러나 반년도 못 되어 서울에 두고 온 아들이 갑자기 대수술을 하게 되어 서울로 돌아갔지요. 아들의 투병생활 중 1994년, 주치의의 권유로 아들의 치유를 위해 다시 독일로 나왔어요. 그때 제 지도교수가 ‚철학전공으로는 당신이 독일에서 일자리를 얻기 어려우니, 라이프치히대학에 있는 저명한 독일문학연구소로 가시오.’ 라고 권유하여 라이프치히 대학에 가서 입학시험을 치르고 그 학교의 학생이 되었지요. 결국 가장 나이가 많은 데다 유일한 동양인으로 그곳에서 학업을 시작하였어요. 유로저널: 라이프찌히대학 독일문학연구소에 대해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강유일 : 라이프치히대학의 독일문학연구소(DLL)는 독문학, 산문, 시학, 희곡, 문학평론, 뉴미디어를 전공하는 학사, 석사과정의 대학입니다. 박사과정은 철학, 미학, 문예학 등을 택해 다른 대학에서 계속할 수 있습니다. 복수전공은 필수로서 저는 독문학과 산문, 희곡, 뉴미디어를 전공했어요. 이 학교는 이 전공분야중 독일어권인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중 유일한 대학으로 일년에 20명의 학생만을 선발해 정예수업을 하는 소위 엘리트연구소이지요. 매년 20명의 정원을 뽑는데 약 600명 내지 700명의 지원자들이 몰려듭니다. 이 학교 출신 중 Juli Zeh, Clemens Meyer, Anna Kaleri 등 독일 문단의 신성들이 등장하고 잉에보르크 바하만 문학상, MDR 신인문학상, 독일문학상 등의 각종 신인문학상들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책은 이미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지요. 세계적인 작가, 문예학자, 철학자, 미학자, 시학이론가들로 구성된 교수진이 이 학교의 명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유로저널: 언제부터 교수로 강의하고 계신지요? 강유일 : 졸업 후 곧 강사(Lehrbeauftragte)가 되어 두 학기동안 동아시아문학을 강의했고 일년 후에 객원교수가 되어 본격적으로 문학창작을 강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모교에서 일한다는 장점은 참 큽니다. 스승이었던 분들이 동료교수가 되고 학생들은 제자이면서 후배가 되는 셈이어서 제게는 정신적으로 이상적인 일터입니다. 학문적 친정인 셈이죠. 이번 학기가 끝나면 처음으로 두 학기동안 연구휴가를 받게되고 2009년 겨울학기부터는 정교수로 임명받아 일하게 됩니다. 유로저널: 어떠한 강의를 맡고 계십니까? 강유일 : 저는 주로 테마를 가지고 강의를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사랑의 해부<나 >권력의 해부<, >악의 적나라성<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강의를 했지요. 제 강의의 기본철학은 ‚천재성은 디테일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제 강의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치밀한 연구조사를 통해 작품을 완성해 제출합니다. 학생들은 학기의 테마에 따라 법의학연구소 검시실, 고등법원 재판정, 총기연구소, 중범죄자감옥, 독극물연구소 등을 함께 방문하며 생명공학자, 신화학자, 정치학자, 이집트학자, 폭탄전문가 등이 강의에 초대되어 학생들과 토론하지요. 제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복제인간, 안락사, 자폭혁명가 등이 있는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올바로 관찰하게 하는 데 있어요. 유로저널: 수상작품인 >피아노 소나타 1987< 는 어떤 주제를 다른 작품인가요? 강유일 : 학살을 통해 유토피아에 이르겠다는 혁명가들의 꿈은 플라톤, 까뮈, 하이너뮐러에 이르는 고전적 문학테마입니다. 내일 살인이 없는 이상향인 유토피아를 건설하기 위해, 오늘 여기서 타인을 살해해야만 한다는 끔찍한 모순, 그것이 많은 혁명가들에겐 재앙이고 악몽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유토피아란 피묻은 장화를 신고서야만 도착할 수 있는 것인가? 도살이 관계되지 않은 유토피아란 과연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 라는 제 안의 질문으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됐습니다. 옛 동독지역인 라이프치히에서 붉은 사원이라고 불리우며 1949년 동독건국이후 40년간 공산주의 이념가들을 길러온 메카인 칼막스대학이 통독후 라이프치히대학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는 과정, 옛 동독시민들이 통일독일 안에서 겪는 이념과 신념의 혼란 등을 저는 잘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제 부모님은 원산과 함흥출신으로 저는 분단의 직접 경험자입니다. 한국전쟁 후 태어나서 분단되지 않은 조국은 본 적이 없는 제게 조국분단이란 제 정신적 DNA가 된 셈입니다. 이 소설은 학살을 통해 내일의 유토피아에 도착하겠다는 한 지적인 혁명전사의 모순과 재앙을 그린 작품입니다. 유로저널: 지금까지 32권의 많은 책을 발간하셨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입니까? 강유일 : 2005년 발간한 >피아노 소나타 1987< 입니다. 이 작품은 제가 독일로 이주한 후 수년간 낯설고 불완전한 독일어능력과 모국어 사이에서 엄청난 정신적 공황을 겪은 후 쓴 작품이어서 제게는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언어가 연장인 소설가에게는 완전한 언어능력이 없을 때 느껴지는 정신적 공황은 엄청납니다. 저는 지금도 침대에서 잠들기 전에 최근에 발간된 뛰어난 독일 희곡작품 몇 쪽과 루터가 번역한 탁월한 산문인 성경 욥기 38장에서 41장을 반드시 읽고 잡니다. 그러면서 독일어가 제2의 모국어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지요. 모국어 외에 능숙한 외국어능력이 있다는 것은 곧 두 세계를 사는 것으로서 그 지적 확장의 가능성은 엄청나다고 봅니다. 유로저널: 작품 제목이 >피아노 소나타 1987 < 인데 혹시 피아노를 치시는지요? 강유일 : 이 소설의 여주인공인 피아니스트 안누항을 그리기 위해, 그리고 피아노 내부구조와 음(音)의 탄생관계를 알기 위해 새 그랜드피아노를 구입한 후 러시아출신의 피아니스트에게 직접 피아노교습을 받았습니다. 음악이론과 음악적 형용사들을 익히기 위해 독일 최고의 음악평론가 요하임 카이저의 모든 평론집과 아도르노의 음악에 대한 비망록들을 다 읽었지요. 유로저널: 이 작품을 쓰시는데 얼마동안이나 시간이 걸렸습니까? 강유일 : 소재수집과 리서치, 관계서류와 테마와 관계된 학술서적을 읽고 쓰는데 4년이 걸렸습니다. 물론 강의가 없는 방학에만 작업해야 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원고분량도 많았습니다. 제가 민음사에 보낸 원고는 총 2300매 정도 됐어요. 그 원고를 함께 조금 줄였습니다. 장편 한편을 완성하는데 꼼꼼한 작업을 할 경우, 적어도 평균 3년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유로저널: 앞으로 쓰시고 싶은 작품은 무엇입니까? 강유일 : ‚불멸’ 을 주제로 한 새 소설이 완성단계에 있습니다. 이 작품 완성 후에 '우리에게 동아시아, 즉 중국과 일본이란 과연 무엇인가? ' 를 묻는 한 역사학자의 운명과 사랑에 관한 장편소설 작업에 들어갑니다. 이 소설은 이미 중편으로 초고를 끝내둔 것을 다시 장편으로 확장하는 것인데 이미 영화계약이 끝난 상태입니다. 소설 출간 즉시 영화촬영에 들어갑니다. 유로저널: 외국에서 모국어로 글을 쓰는 동포문인들에게 주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강유일 : 외국에서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참 힘겨운 작업입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국내와는 전혀 다른 소재로 한국과 한국인의 존재를 탐험해 나갈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외국에 있는 동포들은 국내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소재를 사용해 국내문학과 차별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다양성과 세계화를 위해 엄청난 저력이라고 봅니다.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서 놀라운 언어의 확장이 일어나 표현에 힘과 역동성을 줄 수 있지요. 본격문학을 하려는 집념과 철저한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고독의 힘’ 이라고 봅니다. 자신을 세상과 분리시켜 글쓰기에 집중시키는 대담한 시간관리, 조국인 한국을 거리감을 가지고 인식해가는 세계시민(Weltbuerger)적 안목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문학의 세계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강유일 작가는 해외한국문학상 수상에 보답하기 위해 앞으로 치열한 삶의 보고서와 같은 작품을 쓰겠다고 수상소감을 말하였다. "주문과 처방에 따른 복제인간과 복제동물이 만들어지고 스위스와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가 법으로 제정되고 있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작가로서 어떠한 작품을 쓸 것인가 깊이 고민하며 작품을 만든다." 라고 말하는 강 작가는 오늘도 책상 위에서만 아닌 치열한 삶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온 몸과 영혼으로 작품을 쓰고 있다. (유로저널 독일지사) 유한나 기자 hanna21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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