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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혁 님은 현재 런던에서 세계적인 건축회사 Foster + Partners에서 근무 중인 몇 안 되는 한국인 중 한 명이다. Foster + Partners는 영국에서는 런던 시청(London City Hall), 밀레니엄 브리지(Millennium Bridge)를 건축했으며, 그 외에도 세계 각국의 유명 건축물을 담당하여 그야말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상혁 님의 이야기를 통해 일반 독자들에게는 건축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그리고 훗날 세계적인 건축가를 꿈꾸는 건축학도들에게는 유익한 동기부여를 드렸으면 한다.

유로저널: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 동안 인터뷰를 통해 수 많은 분들을 만나왔지만, 건축을 하시는 분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일단, 언제, 어떤 계기로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 부터 시작해 볼까요?

이상혁: 사실 저는 건축과가 무엇을 배우는 곳인지도 모르고 입학해서 대학교 때는 나름대로 작품을 한다고 밤을 새곤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만드는 것이 재미도 있었고, 시험이나 자격증에 관심을 두는 다른 학과들과는 달리 강의실에서 라면도 끊여먹고 술도 마셔가며 (웃음) 나름 자유롭게 보내는 생활도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건축에 진지한 친구들이 건축과 관련된 얘기를 꺼내면 저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게 부끄러워서 책과 건축잡지를 닥치는 대로 다독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대학원 논문을 진행하면서 30년이 넘은 작은 아파트 단지에 사례 조사 차 방문했는데, 그 전까지는 간접적으로 책으로 접하고 제도판에서 피상적으로 고민한 내용들이 주민들의 요구와 주변 환경과의 관계로 인해 주거공간들이 자연스럽게 변형되어왔던 모습을 보고서 한동안 그 아파트의 마당에서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처음으로 건축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던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 거의 한 달 동안이나 그곳을 들락거리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줌마 들과 얘기를 나누었으니까요.

유로저널: 건축가가 하는 주요 업무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이상혁: 이것은 건축의 간단한 진행과정을 보시면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주가 처음 건축가를 만나 그들의 요구조건을 제시하고, 건축가는 이를 바탕으로 부지의 맥락을 고려하여 디자인을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관련되는 부분에 있어서 다양한 디자이너들(도시, 인테리어, 그래픽 디자이너 등)과 엔지니어들(구조, 설비, 교통, 조경 엔지니어 등)과 협력작업을 통해 초기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합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건축가는 디자이너(designer)일뿐만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나가는데 있어서 조율자(coordinator)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특히, 요즘과 같이 초고층이나 대규모 건물들을 계획하는데 있어서 이 과정들은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기 때문에 한 명이 아닌 다수의 건축가 그룹이 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로저널: 한국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경험)들을 하셨는지요?

이상혁: 많은 분들이 비슷하겠지만 저도 대학원 졸업 후에 설계사무소에 입사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들에 참여하면서 건축의 기본적인 실무과정들을 익혔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실무를 하면서 설계사무소와 대학교, 정부(시청)과 대학교들 간 협력작업으로 이루어진 마스터플랜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면서 좀 더 폭넓고 다양한 시각에서 건축을 바라보게 되었고요. 그러다 참 흥미로운 경험을 하였는데, 우리나라 3대 사찰중의 하나인 양산 통도사의 장경각이라는 16만 도사기판 전시관을 포함하는 사찰들을 디자인할 기회가 있었는데, 전통건축에 문외한 이였던 저에게 이 프로젝트는 정말 힘든 과제였습니다. 많은 사찰과 전통가옥들을 둘러본 후 책상 앞에 앉았지만 무엇인가를 재해석해서 보여주어야 하는 저에게 들었던 생각은 그냥 좋았다, 아늑했다, 고즈넉했다 등등의 몇 마디였으니까요. ‘공간(space)’이라는 가장 단순한 질문을 던져준, 참 색다른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로저널: 영국에는 언제, 어떤 계기로 오게 되셨는지요? 특별히 영국을 택하신 이유가 있다면?

이상혁: 한 번쯤 건축을 전공하시는 분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영국으로 오기 전에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직감적이고 굉장히 초스피드로 진행되는 디자인 과정에 염증을 느꼈던 것 같고, 채우는 것 없이 쏟아 부어야 해서 고갈되던 제 에너지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유학으로 연결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국을 택한 이유는 참 단순한데, 건축의 특성 상 가장 도시적인 곳이 어디일까 생각했습니다. 뉴욕과 런던 두 곳이 떠오르더군요. 그런데, 런던을 택하게 된 것은 Oxford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런던 Heathrow 공항에 도착할 때쯤 비행기안에서 본 바깥의 풍경이 흥미로웠습니다. 아파트라는 근사한 선물이 나오도록 시발점을 제공한 나라이지만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더라고요. 한 편으로는 얄미웠지만 근/현대적인 것들이 어떻게 혼합되어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습니다.

유로저널: 영국에서 졸업하신 학교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이상혁: 다른 종합대학들과 달리 AA School은 건축과 관련된 학과들만 있는 아주 작은 사립건축학교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한국에서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공원을 디자인한 Zaha Hadid, Rem Koolhaas, Richard Rogers, 등 많은 세계적 건축가들이 그 학교를 나와 활동하고 있고, 이 학교의 진보적인 교육방식이 세계의 건축교육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부분들이 지면을 통해 소개된 학교라 간단히 제가 느낀 부분만 말씀 드릴까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 학교가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주제를 정하고 디자인을 진행하는 과정입니다. 물론 자기가 속한 프로그램에서 전체적인 주제가 주어지긴 하지만 학생들이 선택하는 디자인의 시발점은 분명한 이유를 가지는 한, 보편적으로 생각할 때 건축과 동떨어진 그 어떠한 것도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출발해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인 상호관계 등을 고려하면서 건축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결과물이 무엇이 될 지는 초반 디자인 단계에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습니다. 이 과정이 저에게는 건축디자인의 색다른 시도, 즉 건축이 아닌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건축으로 들어옴으로써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과정으로 보여졌습니다.

유로저널: 현재 근무 중이신 회사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이상혁: 현재 저는 Shanghai Bank Headquarters, Free University, Swiss Re HQ, London City Hall, Millennium Bridge, Crystal Island, Beijing Airport 등 세계적으로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을 많이 진행하고 있는 Foster + Partner에서 근무 중입니다. 40년의 전통을 가진 대규모 설계집단이지요. 무엇보다 이 회사에서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수 있는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 과정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도전(challenge)’이라는 동기가 부여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니까요. 그리고 다른 디자인 회사들과 달리 아이디어가 제안되면 그것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거의 모든 디자인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많은 회사들이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오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Sustainable Design’에 관한 관심은 이 회사가 아주 오래 전부터 추구해 온 디자인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유로저널: 해외에서 건축 공부를 하시고 해외 업체에서 근무도 하셨는데, 한국의 건축이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

이상혁: 외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학교 설계과정과 실무과정에서 보여지는 공통된 문제는 디자인 진행과정의 부족일 것 같습니다. 학교 설계스튜디오의 경우, 학생들이 초반 설계를 진행해나갈 주제를 정하는데 있어서, 현대에 유행하는 트렌드를 그대로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공공연하게 사회적 이슈화되는 주제를 따르는 등 내적인 문제의식이나 자기 성찰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로 인해 디자인 과정 중에 일어날 내적 호기심이 상쇄되어 결국은 자기 작품에 스스로 흥미를 잃어버리는 결과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무의 경우 설계 환경의 사회적 인식이 아직 미비합니다. 그로 인해 설계비가 외국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회사로서도 많은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하고,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인에 투여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들이 부족한 결과들로 이어집니다. 즉 디자인 과정에서 검토되고 수반되어야 할 많은 과정들이 생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점들이 개선된다면 한국의 건축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로저널: 현재 해외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한국 건축가가 있는지요? 또 해외 건축계에서 한국의 위치는?

이상혁: 다른 분야와 달리 해외 건축계에서 한국의 위치는 아직 미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해외 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고, 또 과거에 비해 학생들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는 시기도 젊어지고 있어서 곧 어떤 화두를 던질만한 건축가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요즈음 한국의 대규모 회사들도 서서히 외국시장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으니 점점 그 입지가 나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유로저널: 건축가로서 직면하게 되는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이상혁: 건축의 태생적 문제가 미학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디자인 과정에서 감성적인 부분과 분석적인 부분 양면의 칼날로 다른 영역들을 동시에 고려하고 사고해야 하는 면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분명히 건축가로써 업무를 진행해나가는데 있어서 누구나 호소하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러한 점이 다른 분야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유로저널: 건축, 건축가의 매력이 있다면?

이상혁: 건축가의 매력은 천재 건축가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건축가를 예술가라고도 부르지만 다른 예술분야처럼 재능을 보인다고 해서 천재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통상 젊은 건축가라고 부를 때도 보통 인상 깊은 작품을 보여준 4,50대의 건축가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런 것을 보면 열정을 가지고 상당량의 경험과 인내를 감수해야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야이지요. 일견 힘든 과정처럼 보일지 모르나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문화를 창조하는 직업이니 탐구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유로저널: 후배 건축가들에게 조언 부탁 드립니다. (이제 막 건축학과를 입학하는 이들부터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사회에 막 진출한 후배들까지)

이상혁: 영국에 오기 전 친한 후배와 함께한 송별회에서 형은 왜 건축을 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때 대답을 못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 번도 스스로에게 던져보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제가 ‘건축이 왜 흥미가 있을까’라고 질문해보니 많은 대답들이 생각나더군요. 문제는 열정을 유지시킬 수 있는 흥미거리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자기 분야에 대한 부단한 관심과 노력에 의해서만 유지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건축이 창작 활동이다 보니 건축공부를 1,2년만 하더라도 자기 디자인에 대한 욕심이 대단합니다. 이것이 동기부여와 열정을 배가 시킬 수는 있으나, 가끔은 자기 개발을 유도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실무 현장에서 이 욕심은 자칫 협력 작업의 분위기를 깨뜨리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반영되지 않았을 때에는 프로젝트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경험을 쌓아야 할 시기에 자기 디자인에 대한 과도한 욕심은 디자인에 대한 문제의식과 자기 성찰로 유도하고, 오히려 소통(Communication)을 디자인을 풀어나가는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여 자기 개발을 이끌었으면 합니다.

유로저널: 앞으로의 계획, 꿈이 있다면?

이상혁: 아주 소박하지만 건축가로써는 어려운 꿈이 있습니다. 아내는 제가 많은 경험을 하고 나면 저희 가족들을 위한 공간을 제게 의뢰한다고 하더군요. 아마 제가 가장 잘 알면서도 까다로운 건축주를 만날 것 같습니다. (웃음) 저도 물론 그 까다로운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되겠지요. 건축의 본질적인 문제, 즉 건축주의 요구사항 및 부지에 대한 이해가 어떻게 해석될 지 저도 궁금합니다. 언젠가 이루어질 그 보금자리가 제가 건축가로서 경험했던 그 모든 과정들을 집약하여 보여줄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의 열정을 계속 유지해야겠지요.

유로저널: 오늘 너무나 흥미롭고 유익한 얘기 들려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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